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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직설]쿠팡에서 유출되어야 할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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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책임을 지고 박대준 대표가 사임했다. 그러나 국민이 아는 쿠팡 최고책임자는 쿠팡Inc 김범석 의장이다. 김 의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지 않고 있고 국회 청문회도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김범석은 2015년에도 농구를 하다 아킬레스건을 다쳤다는 이유로 청문회 출석을 거부했다. 2021년 6월17일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로 소방관이 사망하자 김범석은 곧바로 쿠팡 한국 법인의 의장직과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당일배송보다 빠른 당일도망이었다.

    김범석의 무책임한 태도는 이번에도 반복됐고 분노한 소비자들이 쿠팡을 탈퇴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한국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해 한국인들이 쿠팡을 계속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337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에서 보듯 대부분의 국민들이 쿠팡에 의존해 살고 있고 수많은 노동자가 쿠팡에서 일하고 있다. 쿠팡이 창출한 서비스와 부는 김범석이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와 이용자가 만들었다. 김범석으로부터 도망칠 것이 아니라 김범석에게 빼앗긴 쿠팡을 시민과 노동자들이 되찾아야 한다. ‘쿠팡을 계속 쓸 것인가’라는 질문은 ‘쿠팡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로 바꿀 필요가 있다. 기업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필요하지만 쿠팡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막아왔다.

    최근 뉴스타파, 한겨레, MBC 공동취재로 쿠팡이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방법이 적힌 비밀문건이 확인됐다. ‘위기관리 대응지침’이라는 제목의 엑셀파일로, 중대재해 발생 시 쿠팡 임직원들의 행동지침이 담겨 있다. 유족을 쿠팡 편으로 만들기 위해 조의금 100만원을 내고, 장례식장에 2명 이상 대기하며 신발 정리, 서빙 등 장례를 도와야 한다. 그러나 사건 내역 및 영상 등은 유족에게 보여주지 말고, 가족들이 너무 큰 지원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산재 승인 전 병원비와 비급여 의료용품 지원 정도로 피해가족의 기대치를 낮춘다. 가족을 포섭한 다음엔 중대재해가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노조의 접근을 차단하고, 언론에 관련 내용이 보도되지 않도록 관리한다. 경찰에 연락해 노조의 집회·시위 계획이 있는지 파악하고, 고용노동부가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지 않도록 네트워킹을 활용하라고도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국회의원실에 방문해 이슈 확산을 조기 방어한다.

    쿠팡은 노동자가 사망하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대신 사건을 은폐하고자 모든 자원을 동원했다. 쿠팡은 이를 위해 2020년 이후 4급 이상 공무원 44명, 국회 보좌진 23명을 영입했다. 2020년 이후 무려 29명의 노동자가 쿠팡에서 일하다 죽은 이유, 29명의 노동자가 죽어도 어떠한 처벌도 제재도 받지 않은 이유다. 비밀문건은 쿠팡을 비판하는 노조의 주장을 ‘오염된 정보’라 하고 이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으라고 했다. 쿠팡이 지저분하다고 한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정보야말로 쿠팡을 바로잡을 수 있는 비밀번호다. 노동자의 죽음을 책임지지 않는 쿠팡을 바꾸지 못하면 개인정보 유출을 책임지지 않는 쿠팡을 바꿀 수 없다. 쿠팡의 탄압을 뚫고 노동 현장의 진실을 계속해서 유출하는 노동조합을 지키고 연대하는 것이 쿠팡 탈퇴보다 중요한 과제다.

    경향신문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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