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로비 수사, 만만히 볼 수 없어
기회일지 위기일지, 결과로 보여야
가평=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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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15일 통일교의 정치권 로비 의혹 수사를 위해 전방위 압수수색에 나섰다. 통일교 총본부인 경기도 가평의 '천정궁'은 물론이고 돈을 받은 것으로 의심받는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정치인들 자택과 사무실까지, 의혹에 연루된 장소와 인사들을 소위 '탈탈 털었다'.
당연히 예상했지만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김건희 특별검사팀으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지 겨우 6일 지난 대대적 강제수사였다. 생각보다 빨랐고, 그래서 23명이나 되는 특별전담수사팀을 꾸린 경찰이 이번 사건에 정말 진심이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한학자 총재 이름이 눈에 띄었다. 경찰은 그를 일찌감치 뇌물 공여 피의자로 입건한 상태였다. 한 총재가 누구인가. 남편인 문선명 총재가 세상을 떠나자 '하나님과 직접 통하는 재림 메시아'라는 '독생녀'론으로 교단을 장악한 제2대 교주다. "(총재) 그림자처럼 살았다"는 로비 주도자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은 물론, 의혹과 관련한 교단의 움직임은 단연코 그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경찰은 최정점을 겨누고, 벼르는 듯하다.
사실 수사가 이렇게 될 건 아니었다. 경찰이 전담팀을 꾸릴 일도, 특검에 파견돼 있던 경력들이 황급히 복귀할 일도 아니었다. 윤 전 본부장이 입을 열었을 때 특검은 고작 내사 번호가 아니라 바로 수사에 들어갔어야 했다. 윤 전 본부장 진술이 흐리멍덩하거나 믿기 힘들었다면 다른 통일교 관련자들이라도 적극 파고들었어야 했다. 특검법 2조, 수사 대상을 '수사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범죄 행위'로 정한 규정을 폭넓게 해석했어야 했다. 이유가 어찌 됐던 특검은 윤 전 본부장 진술 이후 사건을 4개월이나 뭉갠 셈이 됐다. '민주당이라 손놓은 것'이라는 편파 수사 논란, 늑장 대처였고 오판이었다는 지적. 모두 자업자득이다.
부담은 고스란히 경찰 몫이 됐다. 경찰 내부에선 특검의 '성의 없는' 사건 이첩에 부글부글하는 낌새가 엿보인다. "퉁칠 거면, 제대로 (기록) 정리라도 하고 주던가"라는 불만도 있다 한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맡게 된 일이지만 "경찰 입장에서도 기회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시절, 출입기자로 들락거리며 만난 경찰들은 스스로를 '와룡 선생'인 양 "우리가 검찰만큼 능력이 없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곤 했다. 특검이 제대로 하지 않은, 혹은 하지 못한 사건을 마무리 잘 한다면 중수청 설립 등 예정된 수사기관 개편에 좋은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분명하다.
문제는 '수사라는 게 능력만 있다고 잘 하는 게 아니다'라는 데 있다. 시험 범위도 없고, 변별력도 없는 '불수능'과 같은 게 특히 여당 정치인 로비 수사다. 은근한 눈치, 헷갈리는 외압, 흐릿한 돈의 흐름. 게다가 의욕 넘치는 현장 인력들의 바람막이가 돼 줘야 할 경찰청장은 공백이 된 지 오래다. 언제 채워질지 기약도 없다.
경찰에겐 참고할 교과서가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특검이 망설이고 주저한 이유, 그 결과를 따져볼 일이다. 정치권은 "특검을 특검하자"와 "경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말로 매일 싸운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경찰에 대한 믿음은 없다. "우물쭈물하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소리 듣기 딱 좋을 상황. 그러고 보니 이 말, 누군가의 묘비에 쓰인 문장 아니던가.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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