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나스닥, 서학개미 겨냥 "24시간 거래 서류 제출"
107년만 '세계 1등 거래소' 뒤 해외 투자 더 유치
NYSE·CBOE·英도 내년 하반기 '종일 거래' 가세
韓 낮 시간에도 '미장' 거래 가능···자금 쏠림 우려
환율 ↑, 외인 이탈 촉진···李 '코스피 5000'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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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닥을 필두로 뉴욕증권거래소(NYSE),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등 미국 증권거래소들이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사실상의 24시간 거래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나서고 있어 국내 증시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최근 한국 개인(서학개미) 등 해외 투자자 비중이 빠르게 늘다 보니 이들의 자금을 더 강하게 끌어오겠다는 복안이다. 미국이 이미 글로벌 자본시장 자금의 60~70%가량을 흡수하는 상황에서 투자 쏠림 현상이 더 가속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대외 환경에 취약한 한국의 경우 자칫 주식시장 유동성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과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만큼 24시간 거래 체제의 편의를 최대로 누릴 수 있는 나라인 까닭이다. 뉴욕 증시와 코스피·코스닥시장의 거래 시간이 겹칠 경우 양국 시장은 지금보다 더 뚜렷한 경쟁 관계에 놓일 수 있다. 다만 미국 주가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증시의 변동성이 다소 줄어들 가능성은 있다. 미국 증시가 24시간 체계에 돌입하면 이미 하루 종일 거래가 되는 가상자산 시장과도 자본 유치 경쟁을 더 치열하게 벌일 것으로 보인다.
나스닥 “24시간 거래 위한 서류 SEC에 제출”…‘240조원 보유’ 서학개미 정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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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통신은 지난 15일(현지 시간) 나스닥이 해외 투자자 수요 급증을 이유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24시간 주식 거래 도입을 위한 서류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나스닥의 서류 제출이 주 5일 하루 24시간 거래 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첫 공식 행보라고 설명했다.
나스닥과 뉴욕증권거래소는 현재 월~금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정규장을 연다. 정규장 앞뒤로는 개장 전 거래(오전 4시~9시 30분)와 시간외 거래(오후 4시~8시)를 각각 운영한다. 이를 모두 더하면 총 16시간이다. 만약 나스닥이 주 5일 24시간 거래 체제로 전환하면 주간 거래(오전 4시~오후 8시)와 야간 거래(오후 9시~다음날 오전 4시)라는 두 개 체제가 도입된다. 오후 8~9시에는 거래가 중단되기에 정확하게 말하면 23시간 거래 체제다.
주간 거래에서 오전 9시 30분 개장과 오후 4시 폐장 체제는 그대로 유지된다. 야간 거래에서 오후 9시부터 밤 12시 사이에 체결된 거래는 다음 거래일의 매매 건으로 간주한다.
로이터는 24시간 거래 체제의 성공적인 도입은 증권정보 처리 시스템 개선에 달렸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국 증권예탁결제기관(DTCC)이 내년 말까지 상시 주식 청산 체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척 맥 나스닥 북미시장 수석부사장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연장 거래 시간대 매매량은 정규장보다 훨씬 적지만 야간시간대 거래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나스닥은 지난 3월 이번 계획을 이미 예고한 바 있다. 당시 탈 코헨 나스닥 사장은 “규제 당국과 논의를 시작했다”며 “내년 하반기에 주 5일 24시간 거래를 개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언급했다.
나스닥은 심지어 6월에 한국까지 찾아와 투자자들에게 이 계획을 상세히 소개했다. 개릭 스태브로비치 나스닥 데이터프로덕트 헤드 등은 6월 1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국내 증권사의 해외 주식 담당자들을 만나 아시아의 주 5일 24시간 거래 수요, 야간 주식 거래 과제와 필수 요건, 지수 공급자의 역할 변화 등을 설명했다. 24시간 거래 체제 전환의 주요 표적이 한국 등 아시아 투자자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미국 양대 거래소인 나스닥과 뉴욕증권거래소는 전 세계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약 3분의 2를 차지한다. 외국인의 미국 주식 보유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만 약 17조 달러(약 2경 5066조 원)에 달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15일 기준으로 한국 개인투자자들이 보유한 미국 주식 규모도 1626억 7229만 달러(약 239조 8600억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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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년 만에 ‘세계 1등 거래소’ 지위 넘겨받은 나스닥···NYSE, CBOE도 ‘종일 거래’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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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닥이 거래 시간대를 확 늘리고 나선 것은 더 많은 해외 자금을 유치해 시장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다. 서울경제신문이 세계거래소연맹(WFE) 통계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나스닥의 시총은 올 6월 말 31조 9635억 5975만 달러(약 4경 7130조 원)를 기록해 30조 8384억 849만 달러(약 4경 5471조 원) 규모의 뉴욕증권거래소를 처음으로 제쳤다. 나스닥의 시총은 10월 말 35조 6731억 8469만 달러(약 5경 2600조 원)까지 불어 뉴욕증권거래소(32조 3129억 9526만 달러)와의 격차를 점점 벌렸다. 나스닥이 이달까지 7개월째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거래소로 군림하는 셈이다.
WFE에 따르면 나스닥의 시총은 6년 전인 2019년 7월까지만 하더라도 11조 달러대 규모로 24조 달러가 넘었던 뉴욕증권거래소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글로벌 유동 자금이 대거 풀리고 비대면 기술이 각광을 받던 2020~2021년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시기에도 뉴욕증권거래소 시총은 나스닥보다 3조~6조 달러 정도 더 많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기술주에 대한 미국과 해외 투자가 급증하면서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켰다.
나스닥은 1971년 2월 8일 뉴욕증권거래소와는 다른 자동 거래 시스템을 앞세워 출범한 시장이다. 출범 초기부터 벤처 기업이나 정보기술(IT) 회사들의 자금 조달을 돕는 역할을 맡았다. 나스닥은 뉴욕증권거래소와 다르게 물리적인 거래소도 보유하지 않는다. 투자자와 시장조성자들이 데이터센터 거래 시스템을 통해 주식을 직접 매매한다. 이는 시장조성자가 전통적인 경매 방식으로 주식 거래를 중개하는 뉴욕증권거래소와는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나스닥은 본래 월가 근처에 있던 본사도 2019년부터 맨해튼 타임스퀘어로 옮겼다.
상장 기업은 뉴욕증권거래소보다 많은 4000여 곳에 달한다. 주식 유동성, 수수료, 주주 수, 시총, 실적 등 상장 요건이 뉴욕증권거래소보다 낮기에 입성한 기업이 더 많다. 상장사 대다수가 당장의 현금 흐름은 좋지 않지만 미래 성장성은 높은 기업들이다. 한국 개인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유액 대부분도 뉴욕증권거래소가 아닌 나스닥에 쏠려 있다.
이르면 내년부터 24시간 거래 체제 전환을 노리는 거래소는 나스닥뿐이 아니다. 올해 나스닥에 글로벌 시총 1위 거래소 자리를 내준 뉴욕증권거래소도 내년 하반기 전환을 목표로 관련 준비에 나섰다. 뉴욕증권거래소는 1792년 24명의 거래 중개인들이 월가의 버튼우드 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 맺은 주식시장 규제·수수료율 합의 ‘버튼우드 협정’을 기원으로 삼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거래소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18년쯤부터 대영제국의 후광을 업은 영국의 런던증권거래소(LSE)를 제치고 세계 시총 1위 거래소로 도약했다. 이후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냉전, 베트남 전쟁, 오일 파동, 일본 도쿄증권거래소(TSE)의 성장 등 여러 위기 속에서도 세계 금융의 중심지라는 지위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 107년 만에 같은 나라의 나스닥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됐다.
뉴욕증권거래소는 미국 뉴욕 월가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상장 회사는 총 2400여 곳이다. 나스닥과 달리 주요 상장사 상당수가 연식이 오래되고 현금 흐름이 좋은 금융·제조·유통 우량 대기업이다.
시카고옵션거래소(CBOE)도 최근 24시간 거래 확대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시카고옵션거래소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대륙간거래소(ICE)와 더불어 북미 지역 최대 파생상품거래소다. 한국에도 변동성지수(VIX)로 유명한 거래소다. VIX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30일간 변동성에 대한 시장 기대를 반영한 지수로 ‘공포 지수’라고도 불린다. 이 밖에 금융 중심지 기능이 점점 뉴욕에 밀리고 있는 런던증권거래소도 최근 거래 시간 연장을 위한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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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개미·외국인 낮 시간 동반 이탈, 환율 급등 우려···李 ‘코스피 5000’ 구상도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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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시에 24시간 거래 체제가 도입되면 한국 등 해외 투자자들도 정규장 외 시간에 발생하는 변수에 보다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투자자들은 지금도 대체거래소(ATS)를 통해 24시간 내내 미국 주식을 거래하고 있다. 물론 월가 내에서는 유동성 저하, 변동성 확대, 수익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상시 거래 전환을 우려를 표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주식시장의 시간대 확대로 국내 코스피·코스닥은 자금 이탈을 겪을 수 있다. 가뜩이나 들쑥날쑥한 유동성이 항시적으로 분산될 수 있는 까닭이다. 지금까지는 글로벌 유동성이 지역별 시차를 활용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아시아로 24시간 순환하는 구조가 유지됐다. 한국거래소(KRX)와 국내 ATS인 넥스트레이드의 경우도 거래 시간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는 하다. 노동조합과 금융투자 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투자 규모도 늘어날 공산이 커졌다.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직전인 2019년만 해도 24억 567만 달러(약 3조 5471억 원) 수준이던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올 들어 이달 15일까지 320억 5261만 달러(47조 2615억 원)로 13배 이상 늘었다.
여기에 외국인투자가들까지 한국의 낮 시간 동안 미국 증시 거래에 몰두할 경우 국내 시장 유동성은 급격히 쪼그라들 수 있다. 외국인은 15일 코스피에서 9570억 원을 팔아치운 데 이어 16일에도 1조 344억 원을 순매도하며 10거래일 만에 지수를 4000선 아래로 끌어내렸다. 외국인 자금 이탈로 원·달러 환율은 어느덧 1480원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다.
미국과 한국 간 증시 거래 시간 격차는 이재명 정부의 ‘코스피 5000 달성’ 구상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미국 거래소들이 실제 시간을 연장하기까지 아직 1년 정도 시간이 남은 만큼 한국의 금융 당국도 자본 유출과 환율 방어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거래소 운영 시간 확대에는 일본·중국·홍콩 등 다른 아시아권 증시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시장도 만만찮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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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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