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와 비만 치료는 의학적 치료와 미용의 경계에 놓인 영역이다. 원형탈모나 고도비만처럼 의학적 필요성이 명확한 경우는 제한적으로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유전적 탈모나 약물 비만 치료까지 건강보험으로 포괄하자는 것은, 건강보험의 근간인 '필수 의료 보장' 원칙을 크게 흔드는 결정이다. 건보 재정 부담이 급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번 급여 문을 열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문제는 건보 재정이 이런 논의를 감당할 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데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건보 재정은 2026년 적자로 전환되고, 보험료 수입에서 지출을 빼고 적립한 누적 준비금도 2030년이면 소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령화로 인한 중증·만성질환 진료비 증가,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필수의료 지원, 소아·응급·분만 인프라 확충 등 건보재정이 투입돼야 할 시급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탈모·비만약 급여 확대를 논의하는 것은 정책 우선순위를 망각한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날 업무보고에서는 "청년들이 보험료만 내고 혜택을 못 받아 억울해한다" "소외감이 커지고 있다"는 발언이 강조됐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2030을 의식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보험이 특정 연령층의 불만을 달래는 수단이 돼서는 곤란하다. 건강보험은 한 번의 정책 판단이 수십 년간 영향을 미치는 만큼 포퓰리즘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 탈모약 급여화 논의에 앞서 건강보험제도 자체의 지속가능성부터 점검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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