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작금의 유치 논의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치적 구호에 매몰되어 가는 현실은 경제인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우려스럽다. 특히 최근 거론되는 전북의 유치 계획을 뜯어보면, 수영, 테니스, 배구 등 8개 주요 종목을 서울에 배치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냉정하게 말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도,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실리도 모두 잃어버린 자충수다.
이승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
첫째, 8개 종목을 서울에 빌려 쓰겠다는 것은 지방 인프라의 한계를 자인하는 꼴이다. 올림픽을 독자적으로 치를 역량이 부족해 핵심 경기를 서울에 의존하면서, 간판만 ‘지방 개최’로 내거는 것이 과연 진정한 균형발전인가? 이는 억지 춘향식 논리다. 기업 경영으로 치면, 본사 건물을 짓겠다면서 핵심 부서는 남의 건물에 입주시키는 격이다. 이런 기형적인 분산 개최안은 ‘지속 가능성’과 ‘콤팩트한 대회’를 요구하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심사 기준을 통과하기 어렵다. 명분은 그럴싸할지 몰라도, 현실성 없는 계획은 국제무대에서 비웃음만 살 뿐이다.
둘째, ‘실리’ 측면에서도 낙제점이다. 8개 주요 종목이 서울에서 열린다면, 선수단과 관람객, 미디어의 상당수는 서울에 머물게 된다. 결국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는”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없다. 지방에서 개최한다면서 정작 알짜배기 소비는 서울에서 일어나게 하는 이 구조가 과연 피폐해진 지방 경제에 어떤 실질적 도움이 되겠는가. 막대한 세금으로 경기장을 짓고도 정작 경제적 파급 효과는 누리지 못하는,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공산이 크다.
셋째, 올림픽은 ‘도시 마케팅’의 정수(精髓)다. 무역협회가 운영하는 코엑스를 비롯해 서울의 잠실 MICE 단지는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프라다. 해외 바이어와 관광객들은 최고급 호텔, 편리한 교통, 풍부한 문화 콘텐츠가 결합한 ‘메가 시티 서울’을 원한다. 파리 올림픽이 에펠탑과 베르사유를 내세워 도시 가치를 극대화했듯, 우리도 이미 검증된 서울의 브랜드 파워를 100% 활용해야 한다.
진정한 균형발전은 이벤트가 아닌 산업으로 풀어야 한다. 지방 소멸은 기업 유치와 정주 여건 개선이라는 펀더멘털 강화로 해결할 문제지, 2주짜리 이벤트의 곁다리 개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서울이 확실한 경쟁력으로 흑자 올림픽을 달성하고, 그 수익을 지방 산업 육성에 재투자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인들이 생각하는 가장 확실한 ‘낙수 효과’다.
2036년 올림픽 유치전은 총성 없는 경제 전쟁이다. 경쟁 도시인 인도, 튀르키예 등은 국가 역량을 총결집해 덤벼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내부적으로 명분도 실리도 없는 ‘나눠먹기식’ 논쟁으로 전력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
‘누구에게 배려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이길 수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 답은 명확하다. 인프라와 브랜드, 그리고 경제성까지 모두 갖춘 서울이 대한민국 대표 선수로 나서도록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것이 국익을 지키는 길이다.
이승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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