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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이재명식 업무보고' 확실한 신상필벌…"국민은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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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중계 논쟁에 "국민 주권 내실화" 강조…앞으로도 공개 방침

    외화 밀반출·기술탈취·댓글조작·원전 갈등 등 민감 현안 직격

    과거 논란이 된 사안 짚고, 책임자 강하게 질타

    모범 실무자엔 '박수'로 당근

    지난주부터 나흘 동안 진행한 부처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외화 밀반출' '기술 탈취 제재' '댓글·여론조작' '원자력 정책 갈등' 등 민감 현안을 정면으로 파고들며 부처 수장은 물론 담당 실무자에게 송곳 질문을 이어갔다. 대통령은 현안과 관련된 수치·절차를 즉석에서 따져 묻고, 답변이 미흡하다고 판단하면 즉시 질타하는 장면이 생중계로 그대로 노출되면서 투명한 국정운영 의지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준비가 돋보인 실무자에겐 '모범 사례'로 치켜세우는 방식으로 당근과 채찍도 병행했다.

    업무보고 생중계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잇따르자 대통령실은 지엽적 부분이 과도하게 부풀려질 수 있다는 단점을 인정하면서도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계획을 국민에게 직접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더 크다며 남은 공개 원칙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국정이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며 "그래야 국민주권도 내실화된다"고 언급했다. 17일 산업통상부 업무보고에서도 "국민은 집단지성을 통해 다 보고 있다. 업무보고 자리를 공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며 "국민들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공개행정의 원칙이 법에 있으나 당연히 공개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했다.
    아시아경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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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논란이 된 사안 짚고, 책임자 강하게 질타

    이 대통령은 나흘간 과거 논란이 됐거나, 국민들이 궁금해할 만한 민생·경제 사안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산업부 업무보고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인 '대왕고래'의 수익성 검토를 두고 대통령의 집중 질의가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석유공사 측에 배럴당 생산원가 추산 등을 캐물으며 "수익성 검토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라며 질타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최문규 석유공사 사장 직무대행이 "변수가 많아 (수익성을) 별도로 계산해보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답변을 하자 "변수가 많으면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꼬집기도 했다.

    국가유산청 업무보고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재임 기간 국가유산청 전승공예품은행에서 장인 공예품 63점을 빌려 간 점을 짚고 "모든 행정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아야 한다. 장관이든 대통령이든 특권층이 아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은 공예품 63점 중 찻잔 1개를 파손해 300만원을 변상하기도 했다. 결국 허 청장은 "지난 3년의 잘못을 시인하고 국민께 사죄드리고 있다"며 "이번에 관련 제도를 다 바꿨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업무보고에선 외화 불법 반출 문제를 두고 질의응답이 오가다 대통령이 강하게 질타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학재 사장이 동문서답을 하거나 즉답하지 않자 이 대통령은 "지금 딴 데 가서 노시냐" "질문에 정확히 답을 하라"라고 지적했고 "3년씩이나 됐는데 업무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계신 것 같은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3선 의원 출신인 이 사장이 업무보고 이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대통령의 지시에 반박하는 글을 올리고, 별도의 기자회견을 자처해 같은 주장을 반복한 행위를 두고서는 "업무보고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라"라면서 "권한을 행사하면서 책임을 다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천하의 도둑놈 심보"라고 비판했다.

    원자력 발전 정책을 둘러싼 진영 간 해묵은 논쟁에 대해서는 "효율성·타당성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없고 편 가르기 싸움만 벌어진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과학적 논쟁에 내 편·네 편을 왜 가르냐"라면서 정당·진영에 따라 같은 사안도 결론이 달라지고, 거짓이 진실처럼 유통되는 경우가 많은 현실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당적 없는 사람이 말해 달라"라는 농담을 섞으며 실무자들에게 명확한 근거에 기초한 답변을 요구했다. 특히 원전 건설 기간,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실익 등 쟁점은 사실과 데이터로 공개 검증하고, 과학적 토론을 거쳐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생·경제 사안은 업무보고 중 '즉석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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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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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통령은 같은 날 중소벤처기업부 업무보고에서 기술탈취 제재와 관련해 "(과징금이) 최대 20억원이라고 했는데 너무 싸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기술탈취로 1000억원을 벌었는데 20억원 해봐야 (얼마 안 된다). 나 같으면 막 훔칠 것 같다"면서 매출 대비 또는 탈취로 얻은 이익의 '몇 배' 같은 방식으로 과징금 체계를 재검토하라고 주문했다. 형사처벌은 실효성이 없으니 경제제재를 강화해 제재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취지다.

    경찰청 업무보고에선 "순위 조작이나 매크로를 활용한 여론조작도 매우 나쁜 범죄행위"라며 "한번 체크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특정 포털의 특정 기사 2~3개만 집중적으로 공감 댓글이 올라오는 등 여러 정황을 거론하며 수사 가능 여부를 묻기도 했다. 포털 순위 조작 목적의 기술 활용은 명예훼손이 아니라 "업무방해"라고 지적하면서 "포털 회사들이 영업상 이유로 일부러 방치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연명치료(의료) 중단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즉석 지시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도덕적 논란이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연명치료를 안 하겠다고 하면 그 비용이 엄청 절감되는데, 여기에 혜택을 주는 방법 중 하나가 보험료를 깎아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며 "치료 비용이 절감되는 게 어느 정도 확인되면 보험료를 깎아주거나 하는 정책이 가능하냐"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완전히 무시할 수 없으니 고민해달라"라고 주문했다.

    연명치료 사안과 함께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검토하라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탈모도 병의 일부 아니냐"라며 "옛날에는 미용 문제로 봤는데 요즘은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주문에는 보험료와 관련한 젊은 층의 불만이 있기 때문이라며 "'보험료는 내는데 혜택이 없다. 절실한데 왜 안 해 주냐'라는 청년들의 소외감이 너무 커져서 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위고비, 마운자로 등 비만치료제에 대한 건보 적용도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모범 사례'는 업무보고 현장서 직접 언급하며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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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통령은 '모범 사례'를 현장에서 직접 호명해 당근도 제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업무보고에선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때 별도 시스템을 만들어 민원 처리를 했다던데, 담당자가 누구냐"라고 물었고, 오유경 식약처장이 김익상 정보화담당관을 소개하자 "아주 훌륭하게 잘 처리했다. 박수 쳐달라"라고 했다.

    같은 날 앞서 진행된 국무회의에서는 신안군 재생에너지 모델을 소개하며 "사업을 하려면 주민 몫으로 30%가량 의무 할당한다는데 아주 모범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지나가다 우연히 (인터뷰를) 봤는데 신안군 담당 국장이 엄청 똑똑한 것 같다"며 "관련 부처에서 데려다 쓰든지 하는 것도 검토해 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업무보고에서는 유전자변형식품(GMO) 콩 수입 관련 정보를 구체적으로 답변한 변상문 식량국장을 모범사례로 꼽으며 칭찬하기도 했다. 변 국장은 '콩GPT'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채유용 콩으로 두부를 만들지 않느냐"라는 이 대통령의 물음에 "식용은 비유전자변형식품"이라고 답했고, GMO 콩의 수입 규모와 국내 생산량이 얼마가 되느냐는 질문에는 "100만t" "8만3000t"이라며 객관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산업부 업무보고에서는 김정관 장관이 '가짜일 30% 줄이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민간에서 모셔온 보람이 있다"고 극찬했다. 김 장관은 새로운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조직을 혁신하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가짜일 줄이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정말 재미있는 아이템 같다. 모범적으로 잘 만들어보시라"라며 "산업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다른 부처들도 동시에 진행하라고 하라"라고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한편 이번 업무보고는 18일 국방부·병무청·방위사업청·국가보훈부, 19일 외교부·재외동포청·통일부·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법무부·검찰청·성평등가족부 순으로 이어진다. 이 대통령은 오는 23일까지 해양수산부 등 남은 부처 보고도 이어갈 계획이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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