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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4 (일)

    ‘남의 편’에 대처하는 깜짝 발랄한 상상 [북적book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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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 남편을 소재로 한 소설 ‘봇물’

    시대·현실 한계 불구 신선하게 풀어내

    행복을 위한 그들의 여정은 ‘진행 중’

    헤럴드경제

    [123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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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 한 남자가 있다. 상냥한 말투와 그윽한 눈빛, 그리고 살뜰히 챙겨주는 행동에 마음이 뺏긴다. ‘아, 이 사람이라면 평생 같이해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결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늘 내 편일 것 같았던 그 사람은 결혼 이후 세상 공정한 ‘심판자’가 돼 내 속을 긁는다. 스트레스 주는 직장 상사 얘기, 입이 가벼운 옆집 아줌마 얘기에도 시시비비를 따져가며 바로 잡는다. 바로 집집마다 있는 ‘남편’에 대한 얘기다.

    올 연말 남편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줄줄이 나왔다. 소설 속 남편들은 현실 남편과 다를 바 없이 마뜩찮고, ‘결혼’이라는 제도의 모순과 시대적·현실적 한계 역시 여전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아내들의 대처법은 놀랍다 못해 신박하다. 작가의 상상력이 응축된 소설 속 상황이기에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김봄의 연작소설 ‘인정빌라’ 중 한 작품인 ‘짝’에선 가장 현실적인 남편 찬호가 나온다. 결혼 전엔 수영밖에 몰랐던 찬호는 연화와 보라가 태어나자 딸바보로 거듭난다. 급기야 딸들에게 잘 보이려고 상의도 없이 수영이 그토록 싫어하는 햄스터를 집에 들인다. 남편과 딸들의 양공 작전에 수영은 어질어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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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박소해의 장편 ‘허즈번즈’에서는 골칫덩이 남편이 무려 셋이나 된다. 6·25 전쟁 당시 나가스 대저택에 남겨진 수향의 가족들은 수향을 쌀가게 노인의 외동아들 최영우에게 시집을 보낸다. 말이 시집이지 사실 쌀 몇 섬에 딸을 팔아넘긴 것이다. 한데 이상하다. 남편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 같다. 알고 보니 수향이 결혼한 사람은 최영우 한 사람이 아니라 일란성 쌍둥이인 영일·영진·영우 등 세 사람이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남편의 존재(?)에 소설 속 아내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고요한의 장편 ‘내 남편을 팝니다’에선 사기로 전 재산을 날리고 10년째 집에서 살림만 하는 남편을 팔아치우기로 결심한다. 해리는 백화점에 갔다가 우연히 입수한 ‘남 주기 아깝지만’ 비밀클럽 명함을 보고 망설임 없이 가입한다. 남편 마틴을 경매에 부쳐 팔기 위해서다. 지금 이혼해 봤자 위자료 한 푼 못 받을 게 뻔하니 남편이라도 팔아서 본전을 뽑겠다는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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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즈번즈’의 수향 역시 ‘남편 셋’이란 상황을 회피하기보다 오히려 이용한다. 영일·영진·영우 등과 모의해 이런 부당한 상황을 만든 자기 부모와 시아버지를 독살한다. 여기에 수향에게만 보이는 혼령인 교코의 오빠 마사키와 미군 대위 월터 콜린스까지 나가스 대저택에 들이면서 5명의 남성과 함께 살게 된다. 물론 후반부에서 마사키와 마음을 나누게 되지만, 일찍이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어머니를 보며 결혼에 대한 생각을 접었던 수향은 마사키의 청혼을 거절한다.

    쇼펜하우어는 ‘인생론’에서 인간의 삶에 열정이 없으면 지루하지만 열정에 집착하면 고통스럽다고 했다. 열정의 중심이었다가 이제는 생활이 되어버린 남편에 대해 그들의 발칙하고 용기 있는 선택은 과연 그들에게 행복을 선사했을까. 모두들 다른 선택을 했지만, 결론은 행복에 가까이 다가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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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는 천신만고 끝에 남편의 경매에 성공해 그 돈으로 구축 아파트에서 벗어나 늘 살고 싶었던 지하철역 앞 신축 아파트의 전세 계약을 한다. 또 그간 경제적 여유가 없어 하지 못했던 싱가포르 여행에 가서 마틴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낸다. 마틴이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른 채 말이다. 수영은 햄스터를 키우도록 허용하고, 햄스터 돌봄을 연화·보라에게 맡긴다. 이젠 네 식구가 살기엔 좁은 인정빌라 301호에서 넓은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 아르바이트 시간을 늘린다. 늘 그렇듯 남편과 아이들을 탓하기보다 자신이 한발 양보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은 것이다.

    ‘허즈번즈’의 수향은 독립적인 삶을 위해 모든 남성의 구애를 거절하고 미국행을 선택한다. 뱃속에 마사키의 아이가 있었지만, 말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롭지 않다.

    인정빌라/김봄/민음사

    내 남편을 팝니다/고요한/나무옆의자

    허즈번즈/박소해/TX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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