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누군가 들려준 이야기다. 파푸아섬의 거대한 숲에 사는 어느 부족 사람들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 복잡한 마천루 사이에서 그들은 단 한 번도 길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를 물었더니 부족 사람들은 빌딩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심어진 나무의 종을 알아보고 길을 찾아오는 거라 답했다고 한다. 습지에서 숲을 이룬 나무의 얼굴을 우리는 알아볼 수 있을까. 감정원 감독이 연출한 장편 ‘별과 모래’와 단편 ‘언제나 같은 꿈을 꾼다’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1월27일에서 12월5일 사이 열린 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되어 대상을 받은 ‘별과 모래’는 매일 밤 대구 금호강의 팔현 습지를 찾는 세연(안수현)과 재우(홍상표) 두 사람과 그곳에서 사는 모든 사람, 모든 것들의 이야기다. 한 장면, 한 장면이 공들여 찍은 사진 같은 ‘별과 모래’에는 팔현 습지의 원경이 주로 담겨 있다. 이보다 앞서 촬영한 단편 ‘언제나 같은 꿈을 꾼다’는 습지에 군락을 이뤄 살고 있는 왕버들나무가 주인공이다. 금호강 곁을, 습지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소원하는 왕버들은 숲에 살아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이 내는 소리와 더불어 속삭인다. 전반은 흑백으로, 후반은 컬러로 촬영된 ‘언제나 같은 꿈을 꾼다’의 카메라는 한 그루마다 새겨진 결과 옹이의 특징을 기억하려는 듯 느린 클로즈업으로 나무의 얼굴을 담아낸다.
하천 환경정비 사업으로 인한 공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들의 모임인 ‘팔현 습지를 지키는 예술 행동’ 작업 일환이기도 한 ‘별과 모래’는 열 명 남짓한 영화의 스태프 중 6인이 비영화인으로 구성되었다. 밤마다 습지를 찾아와 강을 그리는 세연 역의 안수현 배우는 전문 배우가 아니라 본래 그림 작가다. 작중 그가 그리는 강의 모습은 물기 어린 눈으로 바라봐 빛이 번진 듯하게 종이를 채운다. 실제 공사 현장을 담은 장, 있는 그대로의 강을 사랑하는 세연과 강의 모래를 파는 일을 하는 재우의 이야기 때문에 현실과 여러 겹으로 중첩된 이 영화는 그렇기에 때로 에세이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별과 모래’가 가장 픽션임을 드러내는 때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있다.
익스트림 롱 쇼트로 촬영된 이 장면에는 초록이 무성한 버드나무 숲 사이로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족으로 보이는 한 아이와 한 쌍의 남녀는 나무 사이를 정겹게 거닌다. 세연의 내레이션이 강과 도시에서 사라져 간 것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갈무리한다. 원경의 숲 앞을 흐르는 금호강을 절대 건너가지 않는 카메라는 그 가족의 얼굴을 가까이서 비추지 않는다. 다가갈 수 없이 흘러가는 세 사람의 시간은 마냥 꿈결 같아서 그 장면만큼은 금호강이 처한 현실에서 멀리 밀려 나와 모두의 과거와 미래를 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유선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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