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예능 '불량 연애' 출연진 /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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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것은 이 프로그램이 한국 넷플릭스에서 인기 순위 3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여러 연애 예능을 빠지지 않고 챙겨보는 기자로서도 자극적인 인물 구성과 소재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가식적인 한국 연애 예능과 다른 점이 색다르다”는 반응이 젊은 세대에서 나오며 이런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출연자들은 시작부터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가정사와 깊은 상처를 꺼내놓는다. 이런 과거를 안 상태에서 서로에 대한 끌림만으로 직진하는 것이다. 그 솔직한 모습이 나이·학벌·직업·연봉 등 온갖 조건을 비교하며 간을 보는 우리 예능과 다르다.
예능을 통해 연애를 소비하는 시대다. 현실에서 관계의 유대가 약해지고 연애에서도 ‘가성비’를 따지게 되면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만남 대신 영상으로 대리 만족을 느끼는 이가 늘고 있다. 이 뜨거운 수요를 겨냥해 출연진의 면면은 점점 다양해지고, 자극적으로 변모한다. 연예인 못지않은 일반인이 화면에 등장하더니, 동성애·재혼·황혼 연애·무속인 등 특정 취향과 나이대의 시청자를 공략한 방송도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다.
다만 내용은 천편일률이다. 서로에 대해 모를 땐 호기심을 보이다가도, 자기소개 뒤 여러 조건을 저울질하면서 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자는 재력, 여자는 외모’ 같은 과거의 공식도 통하지 않는다. 가령 과거 만능으로 통하던 전문직 종사자들도 연애 예능에선 나이, 외모 같은 부수적 조건들로 외면당하기 일쑤다. 남녀 관계 없이 준수한 외모, 좋은 직업, 탄탄한 재산, 완벽한 노후 준비 등 조건을 고루 갖춘 ‘육각형 인간’이 대세인 탓이다. 이 조건 중 하나라도 누락된다면 낙오될 가능성이 있다. 이 세태에 편승해 결혼 정보 업체에서 사람들의 조건을 점수로 평가하는 콘텐츠도 수십만 조회 수를 얻고 있다. 영상 속 인물과 자신을 견주면서, “나 정도면 더 낫다”는 비교 우위의 쾌감에 빠져든다.
불량배들의 사랑 이야기에 열광하는 현실이 그래서 이해가 된다. 연애 시장에서조차 무한 조건 경쟁의 굴레에 갇힌 우리가, 감히 꿈꿀 수 없는 판타지를 불량배들의 사랑에서 찾아 즐기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던 조건 없는 끌림에 대한 판타지. 매년 겨울 거리를 비추는 밤 불빛이 환해지고, 연인들이 쏟아져 나올 때도 느꼈던 허기의 원인이 여기 있을 것이다. 육각형 인간과 불량배,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랑이 지닌 간극을 생각해 본다.
[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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