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된 제품 기술 결함 등 부실 심의 논란
"승하강 안되는데 차라리 전봇대가 나아"
감사요청서 접수에도 군 당국 "심의 공정"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이가리 바닷가에 설치된 군부대의 열상감시장비(TOD) 거치대 철제 기둥과 레일에 잔뜩 녹이 슬어 있고, 기어 일부는 파손돼 있다. A사의 랙기어 방식인 이 거치대는 2021년 포항시 기부채납으로 설치됐다. 독자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해병대 핵심 장비 군납 심의 과정에서 기술력이 떨어지는 제품이 선정돼 부실 심의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제품의 기술력을 검증해야 한다는 요구가 담긴 감사요청서가 국방시설본부와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됐지만 심의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종결됐다.
18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19일 대구에 있는 국방시설본부 경상시설단에서 진행된 해병 1사단 승하강식 열상감시장비(TOD) 거치대 선정 심의위원회에서 A사의 랙기어(Rack & Pinion) 방식 거치대가 최종 선정됐다. TOD 거치대는 해병대 전방 및 해상 경계작전의 핵심 장비 중 하나다. 승하강식 거치대를 이용해 수십㎞ 거리의 표적물을 관측한다. 군당국은 동해안 경비를 위해 9억 원을 들여 거치대 7개를 해병 1사단 예하부대에 설치할 계획으로 올해 초 공고를 내고 입찰을 진행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A사의 제품이 소음과 진동, 내구성 등 치명적 결함이 있다며 부실 심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A사 TOD 거치대의 랙기어 방식은 기둥 외부의 금속 기어와 레일이 맞물려 작동하는 구조적 특성상 승하강 시 소음이 발생해 은밀한 관측이 힘들다. 또 염분과 습기에 취약해 1, 2년 내 심각한 부식이 발생하고 겨울철에는 눈비가 얼어 미끄럼 현상도 발생한다는 지적이 많다.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이가리 바닷가에 설치된 군부대의 열상감시장비(TOD) 거치대의 철제 기둥이 잔뜩 녹이 슬어 있다. A사의 랙기어 방식인 이 거치대는 2021년 포항시 기부채납으로 설치됐다. 독자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실제 국방시설본부는 지난 4월 입찰에 참가한 A사와 B사의 제조능력을 확인했다. 당시 평가에서 A사는 자체 공장이 없어 TOD 거치대를 외주 제작하는 방식이고, B사는 자체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정작 최종 심의에서는 제조능력을 평가하지 않았다. 거치대 작동 속도도 높이 20m 승하강 시 A사의 제품은 10분, B사의 제품은 2분으로 5배 차이가 나지만 국방시설본부 측은 이를 심사에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존에 설치된 A사의 TOD 거치대가 제대로 이용되지 못하고 있는 사실도 확인됐다. A사의 TOD 거치대는 2023년 해병 2사단의 인천 강화지역 등과 2021년 경북 포항 동해안에 지자체 기부채납 방식으로 설치돼 있다. 실제 포항시 북구에 설치된 A사의 TOD 거치대 기둥은 현재 군데군데 벌겋게 녹이 슬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워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설치된 A사의 TOD 거치대 상당수가 잦은 고장과 소음 문제로 승하강 기능을 포기하고 고정식으로만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고정식으로 하려면 아예 전봇대를 세우는 게 국방 예산 절감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앞서 육군에 TOD 거치대를 납품한 B사 측은 "와이어 방식의 우리 제품이 소음과 진동, 내구성 모든 방면에서 A사 제품보다 뛰어나고, 가격도 20% 정도 저렴하다"며 "두 회사 거치대 모두 군에서 운용 중이기 때문에 현장조사만 하면 어느 제품이 뛰어난지 쉽게 판명할 수 있다"며 재심의를 요구했다.
반면 국방시설본부 측은 "승하강 시간은 작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사용부대 요구조건에 반영되어 있지 않고, TOD 거치대 부적격 문제는 사용부대인 해병 사단에 물어보라"고 답변했다. A사 대표도 "우리가 군납한 제품은 모두 정상 작동하고 있다"며 "심의위원이 7명이나 되는데 잘못 선정했겠느냐"고 부실 심의 의혹을 일축했다.
대구= 전준호 기자 jhjun@hankookilbo.com
포항=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