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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0 (토)

    [사설]스스로 채운 족쇄 주 52시간제, 언제까지 자해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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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제의 중추인 반도체 산업과 미래 먹거리에 매진하는 스타트업은 지금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중국 대만 기업들도 치열한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몰입과 속도전에 나서고 있지만 그들은 근로시간 규제가 없다. 함께 속도전을 벌이지만 한국 기업 현실은 이처럼 다르다. 집중해 연구하고 단기간에 일을 몰아서 하려 해도 모든 근로 현장에 일괄 적용되는 주 52시간 규제 때문에 안 된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대표하는 비영리 민관 협력단체인 스타트업 얼라이언스가 이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한 리포트를 내 다시 주목된다. 과학기술과 산업에서 무한 국제경쟁이 벌어지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발목을 잡는 주 52시간의 오류와 부당성에 대해서는 그간 너무도 많은 비판과 지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양대 노총 등 노동계의 관점과 주장에 경도된 채 수년간 제도의 정상화를 외면해 왔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지적은 이 단체가 12년 전 정부 주도로 결성된 곳인 데다 국내 스타트업의 실상을 가장 잘 아는 곳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국회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단체의 주장은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라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 산업 관련 벤처캐피털에서 일하는 고소득 전문직 근로자에 한해서라도 예외를 인정하자는 촉구다. 장기간 노동이 아니라 특정 기간에 집중적인 근로를 용인하라는 이 요구는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AI칩 설계 마감 때는 연구제작팀이 두 달 동안 밤새워도 모자라고, 기술 스타트업의 외부 평가나 발표 일정은 3~5일 전에 갑자기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주 52시간제에 묶여 필요한 시기를 놓친 제품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해당 기업들은 피가 마른다고 절규한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그제 한국공학한림원 반도체특위 포럼에서 나온 쓴소리를 돌아보면 한국의 대표산업인 반도체조차도 메모리 빼고는 존재감이 없다는 자성이 반복됐다. 이렇게 ‘AI 생태계 위기론’이 나오는데도 정부는 ‘비수도권 연구직에만 예외를 주겠다’는 식의 한가한 말만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중국 중관춘에서는 이 시각에도 수재들이 야전침대를 놓고 밤새워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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