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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1 (일)

    목 졸려 죽을 뻔했던 '동물농장 백설이'는 12년 뒤 어떤 어른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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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싶어, 너와 너의 멍냥이]
    멍냥 뒷조사 전담팀


    편집자주

    시민들이 안타까워하며 무사 구조를 기원하던 TV 속 사연 깊은 멍냥이들.
    구조 과정이 공개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면 어떤 반려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호자와 어떤 만남을 갖게 됐는지, 혹시 아픈 곳은 없는지..
    입양을 가지 못하고 아직 보호소에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새 가족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 줄 수는 없을지..
    동물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당연히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궁금한 마음을 품었지만 직접 알아볼 수는 없었던 그 궁금증, 동그람이가 직접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한국일보

    지난 2013년, 경기 화성시에서 작은 목줄로 인해 외상을 입은 채 구조됐던 개 '백설이'가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 보호소 '온센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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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사 문이 보이자마자 뒷조사 전담팀은 흠칫했습니다. 중형견으로 보이는 개 세 마리가 좁은 견사 앞에서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앞다리를 들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곧바로 저 앞발로 반갑게 인사를 해주리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직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쉴 새 없이 달려든 세 마리의 애교 공세에 도무지 카메라를 제대로 들 수조차 없었습니다. 개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친해지기 위해 항상 준비하는 간식이었습니다. 몸을 가누기 어려운 와중에 세 마리 중 흰색 털이 돋보이는 백구 '백설이'(13)를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를 꼭 잡아야 했습니다.

    한국일보

    지난 10일, 경기 남양주시 동물자유연대 보호소 '온센터'에서 만난 개 '백설이'가 활동가를 향해 간식을 달라며 애교를 부리고 있다. 동그람이 정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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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백설이와 비슷한 과거를 가진 다른 개들은 과거의 트라우마 탓인지 모두 낯선 이들의 접근을 피해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촬영에도 비슷한 상황이 예상돼서 두려움이 많은 개들을 대처하는 법을 연구하며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백설이와 그가 낳은 '여은'(12), '나은'(12)이는 그런 개들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스스럼없이 다가서며 코인사를 건네다가 간식을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혀를 날름거리며 뽀뽀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처음엔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13년 전, 백설이의 목을 조르던 그 과거는 완전히 옛이야기가 된 듯해서였습니다.

    "끝내고 말겠다"… 숨통 조인 목줄 달고 6개월간 이어진 달음박질



    한국일보

    지난 2013년 경기 화성시에서 발견된 목줄 외상견 백구의 모습. 생후 6개월령에 차고 있는 목줄을 6개월이 지나 성견이 되도록 풀지 못해 목에 상처가 발생하는 전형적인 '목줄 외상견' 발생 양상이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지난 2013년 경기 화성시의 한 마을. 당시 이 마을에서는 6개월째 주민들의 걱정을 유발하는 백구 한 마리가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붉게 물들고 잔뜩 부풀어 오른 얼굴. 한눈에 봐도 풀리지 않는 목줄이 목을 옥죄고 있어서 생기는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백구는 보호자도 있었습니다. 당시 보호자는 이 백구가 새끼일 때부터 쇠사슬로 된 목줄을 묶어 마당에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짧은 목줄이 답답해서인지, 첫 발정기가 온 탓인지 백구는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보호자가 잠시 목줄을 풀어준 사이 백구는 집을 나섰습니다.

    집을 나선 뒤로는 도망의 연속이었습니다. 보호자는 백구를 찾아 집으로 데려오고자 했지만, 어설픈 구조 시도는 도리어 백구의 두려운 심리만 자극했고, 결국 백구는 더욱 사람을 피해 숲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지나며 백구의 몸은 자랐고, 목줄은 점점 더 숨통을 조여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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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당시 구조대는 열흘간 백구를 추적해 나섰지만, 백구는 계속 사람을 피해 도망쳤다. SBS 'TV동물농장'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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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 요청을 받고 현장에 나선 동물자유연대 구조팀은 사람을 피하는 백구를 찾아 장장 열흘간의 추적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당시 구조팀에 따르면 낯선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눈치챈 건지, 평소 잠을 자던 공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구조에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대로 내버려두면 결국 백구는 목숨을 잃는 결말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이 ‘죽음의 달음박질’을 끝내겠다는 마음이 마을에 퍼져 결국 소방서 구조대원까지 합류했습니다. 민-관 합동 구조팀은 백구의 예상 이동경로 곳곳에 숨었고, 끝내 마취총(블로우건)을 사용한 뒤에야 포획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목을 조르는 게 백구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당시 백구를 직접 뜰채로 포획한 조영연 동물자유연대 동물보호국장(당시 구조팀장)은 "조금만 가까이 가도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라며 "이미 괴사가 진행된 만큼 병원부터 빨리 가야 할 것 같았다"라고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동물병원에서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즉시 백구를 수술대에 올렸습니다. 괴사된 피부들을 절제하고 봉합하는 5시간의 대수술 끝에 백구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당시 보호자는 백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며, 새로운 가족을 만나 잘 살기를 바라며 백구를 동물자유연대에 맡겼습니다.

    새끼 낳고 12년 머문 보호소에서
    더는 아프지 않길 바랐지만



    

    한국일보

    지난 2013년 구조 직후 백설이가 낳은 새끼 '나은이', '여은이'(왼쪽부터)의 새끼 무렵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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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구는 그때부터 '백설이'라는 이름을 받고 온센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새 가족을 찾아주는 일만 남았다 싶은 활동가들에게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백설이가 새끼를 품고 있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구조한 지 불과 2달도 되지 않아 새로운 생명들을 다시 맞이한 활동가들은 고통 속에서도 백설이가 새끼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매우 대견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백설이의 새끼로 태어난 여은이와 나은이도 건강 문제없이 쑥쑥 자랐습니다. 특히 어미 백설이가 애착을 가지고 키우는 덕분에 유대관계도 매우 좋은 편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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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은이 여은이 탄생 이후 12년이 지나도록 백설이는 새끼들과 함께 지내며 유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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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유대감이 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백설이만 혼자 산책을 나가면 새끼들이 불안해하고 낑낑거려요. 그래서 나은이 여은이 태어난 뒤로 지금까지 같은 견사에서 생활해 왔어요.
    이민주,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선임활동가

    혹시 가족을 못 찾더라도 그렇게 새끼들과 평생을 행복하게 보내기라도 하면 다행이겠지만, 나이 든 백설이에게는 지금 한 번의 고비가 더 찾아왔습니다. 지난해 항문 주위에 발병해 수술까지 받은 악성 종양이 재발한 겁니다. 심지어는 종양의 크기도 더 커져서 이제는 직장 주변까지 넓어졌다고 하네요. 이제 추가 치료보다는 백설이가 남은 삶을 더 편안하게 보내도록 하는 선택이 최선이라는 수의학적 결론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결정을 내린 속마음을 백설이는 모르고 있을 겁니다. 그만큼 백설이는 보호소에서 활동가들을 만나 애교를 부리고, 간식을 받아먹으며 활발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새끼들과 안전하게 지내는 온센터를 제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집에서 편안하게 눈 감는 게 활동가들의 마지막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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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설이는 지난해 발생한 항문 부위 악성 종양이 최근 재발했다. 보호소 관계자들은 추가 치료보다는 백설이의 여생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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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소에서 남은 삶을 보내야 하는 게 아쉽긴 해요. 그런데 정말 되돌릴 수 없는 삶이라면 남은 삶을 정말 백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갔으면 좋겠어요. 나은이와 여은이라도 가족을 찾았으면 좋겠지만, 그전까지는 셋이서 좀 행복하게 더 지냈으면 좋겠어요. 백설이의 남은 삶이 더 아프지 않기를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민주,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선임활동가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leonard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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