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제주시 연동의 한 도로 길가에 있는 박진경 대령의 추모비 옆에 제주4·3의 진실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졌다. 제주도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임재성 | 4·3 희생자 재심 변호인
4·3 학살의 시작점에 1948년 5월에서 6월까지 제주에 주둔한 조선경비대 연대장 고 박진경 대령이 있다. 그는 제주도민을 향해 무자비한 공격을 명령했고, 이를 거부한 부하들에 의해 부임 40여일 만에 암살당했다. 그가 죽고 난 1950년 12월 그에게 을지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1920년 출생으로 해방 이후 창설된 조선경비대에 들어간 박진경은 복무한 지 채 3년이 지나지 않은 만 28살에 죽었다. 훈장이 수여된 이유는 오직 ‘제주도 토벌 작전 지휘’였을 수밖에 없다.
그로부터 75년이 지난 올해 10월, 그의 유족은 갑작스레 훈장을 근거로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고, 이재명 정부는 규정을 이유로 유공자 지위를 인정했다. 비판이 거셀 수밖에 없었다. 이후 대통령실은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 방안을 모색하라 지시했다. 훈장이 박탈되면 유공자 지위는 당연 취소이기에, 국방부는 훈장 자체의 취소를 검토하고 있다. 마땅한 일이다.
현행 제도로도 가능하다. 법은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에 서훈을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해두었는데, 법원은 이 조항을 넓게 해석한다. 거짓뿐만 아니라 친일 행적과 같이 공적에 반하는 다른 행적이 사후에 밝혀질 때도 취소할 수 있다고 본다. 필요한 입법을 할 수도 있다. 5·18민주화운동법은 ‘상훈 박탈’ 조항을 두고 있다. ‘오로지 5·18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것이 공로로 인정되어 받은 상훈’은 취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4·3특별법에는 이런 조항이 없다. 신설하는 게 필요할 뿐만 아니라 뒤늦은 일이다. 박 대령뿐만 아니라 4·3 학살이 공로가 되어 수여된 훈장들 모두 취소되어야 한다.
왜 하필 지금 박 대령에 대한 유공자 신청이 이루어졌을까? 윤석열을 등에 업고 홍범도를 지운 뉴라이트들이 이제는 박진경을 부활시키려고 하고 있다. ‘4·3은 남로당 폭동’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작년 박진경 대령을 제목으로 한 단행본을 출간했다. 이승만을 찬양하며 대박이 난 뉴라이트 영화 ‘건국전쟁’의 후속작 ‘건국전쟁2’가 올해 개봉했는데 주인공이 박진경 대령이다. ‘건국전쟁’ 감독 인터뷰다. “이승만 대통령에 이어 미 군정을 악마화하려 만들어낸 희생양이 박 대령이다.”
박진경 대령이 ‘희생양’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논거는 이렇다. ①박 대령이 민간인에 대한 강경 진압을 지시했다는 증언은 그를 암살한 자들에 의한 것이기에 믿을 수 없다. ②박 대령 재임 기간 중 무장대 사살은 30명도 채 안 된다. ③40여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수천명을 체포한 것은 맞지만 이는 입산한 주민들을 하산시키기 위한 민간인 보호 작전이었다. 하나하나 보자.
박 대령이 연대장이었던 6주간 적게는 3천, 많게는 6천명을 체포한 작전이 민간인 보호를 위한 작전이었다는 주장의 근거는 오직 당시 박 대령 밑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채명신의 진술밖에는 없다. 그 진술을 믿기에는 반대 정황이 뚜렷하다. 박 대령은 연대장에 취임하며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라고 강경 진압을 공언했다는 것은 복수의 증언으로 확인된다. 박진경이 지시한 대규모 체포 작전에 대해 미 군정은 ‘제주도의 서쪽으로부터 동쪽 땅까지 모조리 휩쓸어버리는 작전’이라 명명했다. 민간인 보호가 아니라 민간인 학살의 전 단계였다.
박진경 암살에 관한 형사재판에서 박 대령의 참모였던 임부택 대위는 ①박 대령이 부락을 수색해 피하는 자가 있으면 세번 정지 명령을 하고 불응하면 총살하라 명령했고, ②위 명령에 따라 본인이 본 총살된 이들만 20~30명이 넘는다고 증언했다(1948년 8월18일치 조선일보). 두번째 내용(20명 이상 총살)은 정부 공식 보고서 등 기존 문헌에는 없는 부분으로 본 칼럼을 준비하며 새롭게 확인한 것이다. 비무장 민간인이라도 ‘도망가면 발포하라’ 명령하는 것이 학살이다. 위와 같이 증언한 임부택 대위는 박 대령을 암살한 자가 아니다. 한국전쟁 시기 상당한 전과를 올려 최고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그가 근무했던 육군 11사단에는 2018년 ‘임부택 장군실’이라는 회의실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한국전쟁 영웅’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학살자에게 훈장을 주는 나라는 없다. 제주도민들을 죽였던 나라는 간난고초 속에서 반성과 사과를 했다. 흔들리면서도 지켜오고 있었다. 그 나라가 갑자기 학살자를 유공자라 칭할 수는 없다. 그건 나라가 아니다.
내란 종식 그날까지, 다시 빛의 혁명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