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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0 (토)

    [강인선의 문득] 세종시 공무원은 열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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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강인선 경제부 기자


    이번 주 유튜브 재생 목록 창이 정부 부처의 대통령실 업무보고 영상으로 가득 찼다. 직업 특성 때문에 관련 영상을 많이 보기 때문인가 싶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친구들, 부모님도 "어느 부처에서 일하는 누가 대통령 질문에 답을 이렇게 했다더라" 얘기하는 걸 보면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한 콘텐츠는 업무보고인 듯하다. 세종시 정부 부처를 출입하는 덕분에 업무보고를 직접 준비하는 공무원들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업무보고는 매우 이례적이다. 통상 연초, 늦게는 3~4월에 이뤄지기도 하던 보고가 1~2달가량 앞당겨진 것이다. 많은 부처가 업무보고 시점과 생중계 여부를 보름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알게 됐다고 한다. 그사이에 새로우면서도 말이 되고, 도전적이면서도 실현 가능한 정책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해하기 쉬운 발표 자료도 만들어 수없이 많은 보고와 수정을 거쳤다.

    처음으로 기획재정부가 업무보고를 한 지난 11일 이후 각 부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예상치도 못한 질문들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자 "지금 상태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참고자료를 보완하고 산하 기관들까지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간부들도 지난 일주일간은 자료를 집까지 들고 가 숫자를 달달 외우는 '시험 기간'을 가졌다. 모 부처 간부는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더니 배우자가 "행시 공부 다시 하느냐"며 웃었단다. 원래 정부세종청사는 밤 9~10시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업무보고를 한창 준비하던 지난주에는 유난히 많은 불이 켜져 있었던 것 같다.

    이벤트 당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혀 무관하지도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업무보고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빠르고 정확하게 맡은 업무에 대한 답변을 이어 가는 공무원들을 보면서 '나는 내 업무에 대해 어느 정도로 설명할 수 있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 것이다.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을 진심으로 하고 있는지는 생각보다 티가 잘 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속한 조직이 당면한 문제를 진심으로 풀어보겠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눈빛은 크게 달랐다. 답변을 명확하게 해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진심을 다하는 사람의 답변은 모순이 없고 간결했다.

    평소에도 공무원들의 직업의식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유튜브 쇼츠로 편집돼 알고리즘을 타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보고는 물론 평소 업무에 들이는 노력을 옆에서나마 보며 느끼고 있다. 업무보고를 무사히 끝냈다는 짧은 안도감을 누리고 있을 그들이 국민 한 사람에게 이런 영감까지 줬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물론 아쉬운 지점도 없지 않다. 대중은 전반적으로 업무보고 생중계라는 새로운 형식에 칭찬을 보내는 느낌이다. 하지만 화려한 장표와 장밋빛 전망 속 근본적인 질문은 던져지지 않았다는 생각도 맴돈다. 오르고 있는 집값과 물가 상승에 기여하고 있는 확장적 재정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이 있었으면 했다. 이 때문일까. 모 정부 부처 인사는 '국민들이 업무보고를 듣고 질문하는 내용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질문들은 대통령은 던지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계속해서 물어야 할 것들이다.

    [강인선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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