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금융감독원장이 출격해 기업을 압박하는 행태가 그렇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삼성, SK 등 7대 수출기업 최고재무책임자 등을 모은 자리에서 "작은 이익을 보려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기업들이 과하게 달러를 보유하고 있으면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당장 재계는 사소한 외환 관련 기업 활동도 정부 눈치를 봐야 한다고 받아들인다. 외환당국 관료들이 대놓고 수출기업을 부를 수 없으니 회색지대인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등판해 고환율 자정 대책을 주문한 기이한 행태였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같은 날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증권사들이 투자자 보호를 뒷전으로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금감원은 현재 진행하는 증권사 해외 투자 실태 점검 대상을 늘리고 위법 행위가 드러나면 해외 주식 영업 중단까지 요구하겠다는 태세다.
회의 후 금감원은 주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를 별도로 소집해 해외 증권 영업 실태를 점검했다. 이날 금감원의 행보는 '소비자 보호'를 외투로 쓰고 '고환율 대책'으로 증권사를 압박한 것이라는 평가다.
지금 불안한 원화값은 단기적인 달러 오버슈팅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저성장 현실이 만든 냉정한 성적표다. 대통령실과 금감원의 임시방편식 시장 개입으로 이런 구조적 불균형을 바꿀 순 없다. 기업인들을 불러 군기를 잡는 관치가 시장에 먹혔다면 고삐 풀린 환율도 진작에 꺾였을 것이다.
손 안 대고 코 풀기식 훈계보다 기업에 적극적인 국내 투자를 당부하고 규제 혁파 의지를 보여주는 게 환율 위기를 넘는 정공법이다. 정부부터 작은 이익을 탐하는 유혹을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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