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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1 (일)

    핵무기 퍼터를 들고 나왔다고? [정현권의 감성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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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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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반자가 스파이더맨 마스크처럼 생긴 헤드가 달린 검정색 퍼터를 들고 등장했다.

    두툼한 그립도 반원으로 잘린 평면이어서 다들 뭔가 싶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지 마지막 퍼트를 끝내고는 나보고 가지라며 불쑥 내밀었다.

    그 날 처음 사용한 신상품이었다. 적응할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느냐며 거듭 사양했지만 그는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았다.

    집에 와서 검색하니 제로 토크 기술이 적용된 고가 말렛 퍼터였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블레이드(일자형) 퍼터로 무장하고 나타났다.

    “핵무기를 들고 오면 어떻게 하느냐”며 동반자들이 도발했다. 굴곡 심하고 빠른 그린에서 그는 전보다 만족하는 눈치였다.

    18홀(72타)에서 모두 파(par)를 잡으면 평균 퍼트 타수는 36타 정도로 50%에 이른다. 올 보기를 하더라도 평균 퍼트 수는 40%를 넘는다.

    드라이버로 250m 날려도 1타이고 1m 퍼트도 같은 1타이다. 정규 라운드에서 11번 정도 휘두르는 드라이버보다 퍼터를 훨씬 많이 잡는다.

    골퍼들은 퍼터에 예민하다. 공을 쏙쏙 집어넣는 동반자 퍼터를 보고 그대로 구입하기도 한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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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기심 강한 필자 친구는 10개 넘는 퍼트를 소장하고 있다. 모양도 일자형 반달형에서 긴 원통형 헤드가 장착된 기묘한 퍼터도 있다.

    퍼터는 헤드 모양에 따라 크게 블레이드형와 말렛형으로 나뉜다. 블레이드 형은 칼날(Blade)처럼 얇고 길쭉한 일자형 전통 디자인이다.

    직선에 가까운 헤드 무게가 끝부분(토∙Toe)에 집중돼 볼을 컨트롤하고 감각으로 터치하기에 좋다. 퍼트 스윙이 직선-아크형 골퍼에게 잘 맞는다고 한다.

    탁월한 터치감과 거리감, 그리고 정교한 컨트롤이 장점이다. 경사면에서 다양한 스트로크를 구사하며 상대적으로 롱 퍼트에 유리하다. 세밀한 감각을 즐기는 골퍼들이 빠른 그린에서 주로 사용한다.

    단점으론 좁은 스팟(Spot) 면적으로 인해 미세한 손목 흔들림에도 방향이 크게 벗어나 초보자에겐 권하기 어렵다. 정타를 못해도 비거리와 방향성을 보정해 주는 관용성(Forgiveness)이 낮아 스트로크가 안정된 중상급자에게 적합하다.

    말렛 퍼터는 나무망치(Mallet) 모양에서 유래했다. 넒은 헤드에 뒤쪽이 두툼한 망치 형태라서 붙은 이름인데 수십년 동안 지배해온 블레이드형을 제치고 현재 가장 널리 애용된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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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PGA 선수 1위부터 9위까지 이 제품을 사용하고 KLPGA 통계로도 사용률이 70%를 넘는다. 헤드 뒷부분이 넓고 무거운데 반달형, 스파이더형 등 다양한 형태로 나온다.

    퍼터 앞쪽과 뒤쪽에 무게가 균등하게 배분돼 페이스가 돌아가지 않도록 잡아줘 관용성이 뛰어나다. 직선형(일자 스윙) 스트로크를 가진 골퍼와 퍼트 감각이 부족한 초보에게 권장된다.

    방향성이 좋아 짧은 거리에서 안정적으로 퍼트하는 데에 유리하다. 중심을 조금 벗어나도 거리와 방향 손실이 상대적으로 적다.

    단점으론 손맛이 둔하고 빠른 그린에서는 블레이드 퍼터보다 덜 예민하다. 경사면에서 스트로크를 구사하기 어렵고 헤드 무게 때문에 거리 조절이 어렵다.

    블레이드는 감각형, 말렛형은 계산형 골퍼에게 어울린다. 박영민 한국체대 골프부 지도교수는 “체형, 그립 자세, 스윙 형태에 따라 본인에 맞게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근에는 제로(Zero) 토크 퍼터가 프로 선수들 사이에 인기다. 제로 토크는 말렛과 블레이드형 퍼터 모두에 적용되며 토크를 억제하는 기술이다.

    토크(Torke)는 퍼터 헤드가 회전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려는 힘이다. 다른 말로 임팩트 때 샤프트의 비틀림 정도를 나타낸다.

    토크를 가진 기존 퍼터는 스트로크를 할 때 헤드가 미세하게 열리거나 닫힌다. 반면 제로 토크 퍼터의 경우 헤드 페이스가 회전하지 않고 스트로크 내내 목표를 향하고 있어 안정성과 직진성이 뛰어나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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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LPGA 투어 개막전에서 김아림이 나흘간 퍼펙트 게임으로 우승한 데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인기 상승에 불을 지폈다.

    “골프백에서 가장 중요한 클럽은 퍼터, 드라이버, 웨지 순이다.” 전설적인 골프 교습가 하비 페닉의 말이다. 퍼트는 컨시드(concede)를 제외해도 23~25번에 이른다.

    미국 여자 프로선수 넬리 코르다는 올해 초 말렛(반달형) 퍼터를 쓰다가 블레이드로 바꾸는가 싶더니 4월 쉐브론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말렛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다 8월 CPKC 여자오픈에선 다시 블레이드 퍼터로 돌아섰다.

    퍼트에 따라 골프 순위가 요동친다. 투어 프로, 하위 PGA, 핸디 20 골퍼들의 3m 성공 가능성은 각각 40%, 20%, 10% 정도라는 통계가 있다.

    이 거리에서 홀에 공을 넣으려면 ±1도 이내에서 퍼트를 해야 한다니 얼마나 어려운지 드러난다. 완벽한 퍼트는 원리를 바탕으로 많은 연습과 심리적 안정감이 결합해 완성된다. 직경 108㎜ 홀 컵에 공을 넣으려면 백팔번뇌 그 자체다.

    언젠가 토와 힐이 거꾸로 된 역 헤드 퍼터를 들고 골프장에 나갔다. 이상한 장비로 계속 파를 잡으니 동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헷갈린다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오래 가지 않아 일자형으로 복귀했다. 지금도 퍼터만은 조강지처로 삼고 긴 세월 해로하는 중이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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