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0 (토)

    두 개의 커피잔…정교한 매듭…김장날 찾아온 '죽음의 손님'[뉴스속오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6년째 미궁에 빠진 '대구 청테이프 살인사건'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머니투데이

    1999년 12월 20일 발생한 '대구 청테이프 살인사건' 피해자 홍씨의 모습. 이 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화면./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화면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99년 12월 20일. 대구 수성구의 한 주택가에서 50대 여성 홍모씨가 자신의 집 거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시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기괴했다. 마치 장례를 치르기 전 '염'을 한 것처럼 손과 발이 정교하게 묶여 있었고, 얼굴은 청테이프와 비닐로 감싸져 있었다.

    여전히 범인이 누군지 밝혀지지 않은 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은 '대구 청테이프 살인사건'이다. 2014년 12월 19일로 공소시효(25년)가 만료됐다.


    김장 김치를 담그던 날, 방문한 '귀한 손님'…수상한 매듭

    사건 현장은 강도가 침입한 듯 어지럽혀져 있었지만, 정작 사라진 귀중품은 없었다.

    범인은 증거 인멸을 위해 보일러를 최대로 올리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는 시신 부패를 촉진해 사망 시간을 혼동하게 하려는 치밀한 수법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정확한 사망 원인이나 시각도 추정이 어려웠다. 직접 적인 사망 원인은 결박으로 인한 질식사로 추정되는데, 머리를 둔기에 맞은 흔적도 있었다.

    경찰이 주목한 핵심 단서는 '커피잔 두 개'다. 홍씨의 집 싱크대엔 그가 귀한 손님에게만 꺼내 대접하던 커피잔 두 개가 물에 담겨 있었다. 당시 홍씨는 김장 김치를 담그고 있던 중 손님을 맞이했다. 수사팀은 바쁜 와중에도 귀한 손님을 맞이해 커피를 대접했다는 것은 범인이 아주 가까운 면식범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아쉽게도 범인의 지문 등 다른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머니투데이

    1999년 12월 20일 발생한 '대구 청테이프 살인사건'의 핵심 단서로 주목받은 커피잔 두개. 이 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화면./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화면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찰은 홍씨의 고교 동창이자 마지막 통화자인 보험설계사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봤다. 간호사 출신인 A씨가 결박에 능숙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매듭은 상당한 완력을 필요로 하는 특수한 형태였다. 전문 산악인이나 장의사조차 똑같이 재현하지 못한 이 정교한 매듭은, 범인이 단순한 일반인이 아님을 암시했다. A씨를 상대로 조사를 진행했지만 '매듭의 형태'가 달라 결국 용의선상에서 제외시켰다. A씨가 홍씨를 살해할 명분도 없었다.

    결국 직접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수사는 미궁에 빠졌다.


    9년 뒤 발생한 또 다른 '청테이프 살인' 사건…또 미궁속으로

    9년 뒤인 2008년 5월 부산에서 동일범으로 추정되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 사건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결박 방식과 시신 은폐 수법 등이 대구 사건과 매우 유사한 '부산 청테이프 살인사건'이다.

    무엇보다 시신의 상태가 비슷했다. 범행에 청테이프를 사용했으며, 보통 저항을 막기 위해 손을 등 뒤로 묶는 방식(뒷결박)을 사용하는 데 두 사건 모두 앞으로 손을 묶는 방식(앞결박)을 사용했다.

    또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기장판을 높은 온도로 올려둔 점(부산)과 보일러를 최대로 틀어 놓은 점(대구)이 비슷했다. 사라진 귀중품 없이 집안이 어질러져 있었다는 점도 유사했다.

    홍씨 유족들은 동일범 가능성을 제기하며 재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증거가 없었고, 부산 사건도 범인이 누군지 특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두 사건 모두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 미제 사건으로 남겨져 있다.

    머니투데이

    1999년 12월 20일 발생한 '대구 청테이프 살인사건' 피해자 홍씨의 모습. 이 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화면./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화면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구 청테이프 살인 사건은 살인사건 공소시효를 폐지한 이른바 '태완이법' 소급 적용 대상(2000년 8월 1일 이후)에서도 제외돼, 지금 범인이 검거되더라도 형사 처벌은 불가능하다. 부산 청테이프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는 태완이법 적용 대상이다.

    유족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대구 청테이프 살인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홍씨의 딸은 "(범인이)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이라도 말 해주면 안되는지(묻고 싶다)"며 "용서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지만 (알아야) 마음속에서 놔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6년 전 그날, 홍씨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신 '마지막 손님'은 지금 어디서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재윤 기자 mton@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