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 저평가, 언제 해소될까
김영익 전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70원 안팎의 높은 수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다. 정책 당국은 외환 건전성 부담금 한시적 면제, 금융기관 외화예금 초과지급준비금에 한시적 이자 지급,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연장 등 동원 가능한 정책 수단을 내고 있지만, 환율 수준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환율은 글로벌 자본 이동, 교역 상대국의 경제 및 통화 정책, 위험 선호도의 변화 속에서 상대적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환율의 방향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환율을 결정하는 기본 여건(fundamentals)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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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 1480원까지 터치
11월 기준 원화값 13% 저평가
환율 방향 가르는 미 달러 가치
‘3A 성장’ 한계로 하락 전망 속
한미 금리차 줄고 경상수지 흑자
원화 강세에 우호적 작용할 전망
원-달러 환율을 설명하는 핵심 변수는 5가지로 요약된다. 달러 인덱스, 엔-달러 환율, 위안-달러 환율,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 경상수지다. 이 변수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환율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한다.
이들 변수를 이용해 회귀분석을 해보면 지난달 말 기준 원화 가치는 13.4% 저평가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현재 환율 수준이 과도하게 높은 수준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저평가 상태가 곧바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시기에 따라서 환율은 저평가 상태로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김경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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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향후 환율 변동의 동력이 무엇인가다. 2009년 1월~2025년 10월 데이터를 대상으로 동일한 변수를 활용해 벡터자기회귀(VAR) 모형을 구성하고 분산 분해를 해보면, 1~12개월 이후 원-달러 환율 변동의 기여율은 달러 인덱스가 58.2%로 압도적으로 높다. 엔-달러 환율은 2.2%, 위안-달러 환율은 2.8%, 한·미 금리 차는 1.9%, 경상수지는 2.8%에 불과하다. 나머지 32.2%는 원-달러 환율 자체의 결정 요인, 즉 단기 수급과 시장 심리 등이다.
이 결과는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단기적으로는 외환시장의 수급이나 심리가 환율을 좌우할 수 있지만, 중기적인 방향은 결국 달러의 방향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원화 가치 저평가가 언제 해소될지를 판단하려면, 달러 약세가 구조적으로 가능한 환경인지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미국, AI 투자가 성장·자산 시장 견인
2026년 미국 경제 전망을 고려하면 달러 가치가 하락할 확률이 높다. 2025년 미국 경제는 ‘인공지능(AI) 투자→자산가격(Asset Prices) 상승→부유층(Affluent)의 소비’로 이어지는 이른바 ‘3A 성장’ 구조에 의해 지탱됐다. 성장의 출발점은 단연 AI 투자였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를 중심으로 한 AI 생태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경쟁과 초대형 데이터센터 건설 붐을 촉발하며 전례 없는 규모의 설비 투자를 유도했다.
실제로 미국의 설비 투자 비중은 세계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10.5%까지 하락했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15.3%로 급등했다. 이는 2000년 정보통신(IT) 거품 정점 당시의 11.5%를 크게 웃돌 뿐만 아니라 사상 최고치다.
문제는 이번 투자 사이클의 성격이다. 과거 제조업이나 IT 투자 확대는 생산성 향상과 고용 증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번 AI 투자의 상당 부분은 서비스 상용화 이전 단계에서 인프라를 선점하는 데 집중돼 있다. 단기간에 현금 흐름을 창출하기보다는 미래 성장 기대에 기반한 선행 투자 성격이 강하다. 이는 기술 혁신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투자 성과가 지연될 경우 기업 재무 구조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AI 투자 확대는 곧바로 자산시장으로 전이됐다. 지난 10월 S&P500 지수는 6920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가계는 금융자산의 절반 이상을 주식 형태로 보유하고 있어, 주가 상승은 강력한 자산 효과를 만들어냈다. 지난 6월 기준 미국 가계의 금융자산은 134조5000억 달러, 부동산 자산은 53조2000억 달러로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자산 가격 상승은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통해 소비를 자극했다. 특히 전체 소비의 약 40%를 차지하는 소득 상위 10% 계층의 소비 증가가 두드러졌다. 소비가 GDP의 69%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 구조에서 자산 시장 호황은 경기의 핵심 방어막 역할을 했다.
Fed 금리 인하, 달러 약세 이어질 듯
그러나 이 구조는 동시에 취약점도 내포하고 있다. 최근 소비 기반이 임금 상승이나 고용 개선보다는 자산 가격 변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 가격, 특히 주가가 고평가 영역에 있다. 2025년 2분기 기준 미국 전체 주식 시가총액은 GDP 대비 32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광의통화(M2) 대비 시가총액 비중도 454%로 IT 거품(2000년 1분기 443%) 당시를 상회했다.
S&P500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5배 내외로 장기 평균인 16배를 크게 웃돌고 있고,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술주가 전체의 약 40%를 차지하는 극단적인 쏠림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자산 가격이 조정 국면에 들어서면 소비 위축이 빠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며, 이는 실물 경제 전반으로 부정적 파급 효과를 확산할 수 있다.
AI 투자 기대가 약화하거나 자산 가격이 조정 국면에 진입할 경우 ‘주가 하락→부유층 소비 위축→경기 둔화’로 이어지는 경로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 경우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경기 방어를 위해 금리 인하 폭을 확대할 수밖에 없으며, 2026년 기준금리가 3%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금리 인하는 장기 금리 하락과 달러 약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025년 12월 현재 4%를 웃돌고 있는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2026년에 3%대 중반까지 하락할 여지가 있다. 여기에 과도한 정부 부채와 누적된 대외 불균형은 달러화에 구조적인 약세 압력을 더할 것이다. 2024년 말 108.49였던 달러 인덱스가 2025년 9월에 97수준까지 하락한 데 이어, 2026년에는 90 이하로 내려갈 확률이 높다.
정근영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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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변수는 미·일 금리 차의 축소 가능성이다. 지난 몇 년간 엔화 약세의 가장 중요한 배경은 미국과 일본의 통화 정책 차별화였다. 미국 Fed가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기준금리를 5.5%까지 끌어올렸지만, 일본은행(BOJ)은 초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며 미·일 기준금리 차는 2015년 11월 0.25%포인트에서 2023년 7월에는 5.5%포인트까지 확대됐다. 이는 엔화를 차입해 고금리 통화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확산시키며 엔-달러 환율을 2024년 6월에는 160엔 이상으로 밀어 올렸다.
정근영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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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올리는 일본, 엔화 가치 상승 전망
그러나 이러한 환경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앞에서 본 것처럼 ‘3A 성장’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소비 둔화로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고, Fed는 금리를 더 내릴 전망이다. 반면 일본의 통화 정책 방향은 정반대다. 지난주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0.5%에서 1995년 이후 최고 수준인 0.75%로 인상했다.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고 내년 춘투(春鬪)에서 임금 인상률이 5% 안팎에 이를 전망인데, 이 경우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 미·일 기준금리와 더불어 시장금리 차이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뜻이다.
2010년 이후 미·일 10년 국채수익률 차이와 엔-달러 환율의 상관계수는 0.69에 달한다. 미·일 금리 차가 줄어들수록 엔화가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시장의 기대가 한쪽으로 기울 경우,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서 엔화 가치가 급격하게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 번째는 중국이다. 중국은 수출과 투자 중심의 성장 모델에서 소비 중심으로 구조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위안화의 과도한 약세를 용인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중장기적으로는 위안화가 점진적인 강세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네 번째는 한·미 금리 차다. 한국은행은 당분간 기준금리를 2.5% 수준에서 유지할 가능성이 크지만, Fed의 금리 인하로 한·미 금리 차는 자연스럽게 축소된다. 이는 원화 강세에 우호적인 요인이다.
다섯 번째는 경상수지다. 한국은행의 2025년 11월 ‘경제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올해 1150억 달러, 내년에는 1300억 달러로 연이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상수지 흑자만큼 직접투자와 증권투자 등 금융계정을 통해 달러가 해외로 나가고 있지만, 경상수지 흑자는 중장기적으로 환율 안정의 핵심 버팀목이다. 물론 한·미 관세 협상 결과에 따른 3500억 달러(연간 최대 2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는 외환시장 수급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내년 6월 원화값 달러당 1412원 예상
경제 변수, 특히 환율 전망은 매우 어렵고 틀리기 쉽다. 단기적으로는 지정학적 리스크나 시장 심리에 따라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달러 약세 및 엔화와 위안화 강세 가능성, 한·미 금리 차 축소, 대폭의 경상수지 흑자라는 근본적 요인을 종합하면, 원화의 저평가는 2026년 들어서면서 점진적으로 해소될 전망이다.
블룸버그 컨센서스(2025년12월19일, 국내외 28개 금융회사 전망치 중앙값)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 예상치는 내년 6월 1412원, 12월 1400원, 2027년 말 1350원이다. 원-달러 환율을 결정하는 앞의 5가지 요인으로 평가하면 2025년 11월 적정 환율은 1270원 안팎이다. 수년간 글로벌 통화 환경의 변화 속에서 흔들렸던 원-달러 환율은 천천히 이 수준으로 접근할 확률이 높다.
김영익 전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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