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 새 이사장에 임명되면서 연금 운용 방식과 역할에 관한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제공) |
김성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 새 이사장에 임명되며 연금 운용 방식과 역할에 관한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정부·정치권에선 코스피 5000 달성과 원·달러 환율 안정을 위한 국민연금 역할론을 강조하며 연일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사실상 ‘연금 사회주의’ 군불 때기에 나선 가운데 김 이사장도 이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잇따라 내놓았다. 정부·여당이 상당수 소유분산 기업에서 대주주로 있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를 지렛대 삼아 노골적인 경영 간섭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팽배하다.
자질 논란 속 임명된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지난 12월 15일 기금운용위원회, 16일 대통령 업무보고에 이어 17일 취임식까지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2017년 1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제16대 이사장을 지낸 그는 두 번째로 국민연금을 이끌게 됐다.
시장에선 김 이사장 임명을 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각이 많다. 국민연금 이사장은 2200만 가입자 노후를 책임지는 자리다. 지난 8월 말 기준 국민연금 적립금은 1322조원에 달한다. 이사장에게 고도의 전문성과 책임감이 요구되는 이유다.
그러나 그는 2016년 총선에서 떨어지자 2017년 말 ‘낙하산’ 논란 속 국민연금 이사장에 임명됐다. 그런데 2020년 임기 10개월을 남기고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중도 사퇴했다. 그의 지역구는 국민연금본부가 있는 전주병이다. 당시 지역에서도 ‘이사장 자리를 본인 정치에 쓰려 한다’는 뒷말이 나왔다. 2020년에 이어 지난해 총선에도 출마했지만 당내 경선에 져 탈락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5년 만에 복귀했다. 운용 업계 관계자는 “지난 임기 때도 기금운용본부를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런 인물을 또다시 이사장에 임명한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이 취임식 때 한 발언도 논란이 됐다. 그는 지난 12월 17일 취임식에서 “국민연금이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며 한국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 한푼도 투자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며 “공공주택 투자를 통해 결혼과 출산을 촉진해 인구 절벽을 극복하고 연금 가입자를 확대하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이런 발언을 두고 연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사장이 재정으로 할 일과 공적 연금의 역할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연금 이사장은 기금 투자 결정 권한이 없다. 이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한 기금운용위원회 소관이다.
국내 주식부터 환율 방어까지
정부·여당, 국민연금 압박
우려스러운 대목은 국민연금을 향한 각종 역할론이 노골적으로 요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크게 ▲국내주식 비중 확대 ▲환율 방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 수탁자 책임 원칙) 개편을 통한 의결권 적극 행사 등이다. 정부·여당이 외곽에서 연일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는 가운데 기금운용위 의사결정 자율성이 훼손될 수 있단 지적이 들끓는다.
김 이사장은 최근 업무보고에서 국민연금 국내주식 투자 비중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 중인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연금 운용을 고민해달라는 당부에 따른 조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보건복지부 업무보고를 받고 국민연금 국내 주식 비중 확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주식 시장이 저평가됐던 것은 명백하다. ‘대한민국 주식은 못 믿겠다’ ‘정상 거래가 안 된다’고들 하는데 이걸 정상화시키면 될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주식 시장에 대해 말하기 조심스럽고 위험하기는 하지만 국민연금도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 이사장은 “내년에도 이렇게 국내 증시가 좋을지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투자지침 기준들을 변경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기금 운용 전략에도 변화가 일 전망이다. 올 들어 코스피가 급등해 국민연금 국내주식 비중은 지난 3분기 말 기준 15.6%까지 올라갔다. 올해 말 목표치 14.9%를 웃돈다.
국민연금은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 중기 전망을 고려해 매년 5월 5년 단위 중기 전략을 세운다. 5년 후 목표수익률과 위험 한도를 설정하고 자산군별 목표 비중도 정한다. 올해 국내주식 목표치는 ‘2025~2029년 5개년 중기 자산배분 전략’에 따라 14.9%로 설정돼 있다. 전략적자산배분(SAA) 허용 범위(±3%포인트)인 17.9%를 넘어설 경우 국민연금이 ‘기계적 매도’에 나설 수 있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재량권인 전술적자산배분(TAA·허용범위±2%포인트)을 활용해 국내주식 비중을 조절할 가능성을 점친다.
이경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대통령이 국민연금 국내주식 비중 확대 검토를 지시했고, 김성주 연금공단 이사장이 내년 기금위원회에서 투자지침을 변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며 “변동성 대응을 위한 유연한 운영 방침이 시사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기 시황을 의식한 투자전략 조정이 국민연금 중장기 수익성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시각이 많다. 국민연금 내부에서는 국내주식 축소 기조가 계속돼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미래 기금 축소기 때 국내주식에 미치는 파급을 최소화하려면 지금부터 전략적으로 비중을 조절해야 한다. 수익률 측면에서도 해외·대체자산을 늘리는 게 유리하다.
국민연금은 환율 시장 역할론도 요구받는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돌파하며 외환당국은 대외적으로 국민연금을 압박하고 있다. 해외투자 규모 축소와 상시적 환헤지까지, 국민연금을 향한 압박이 거세다. 지난 11월 말에는 ‘외환 시장 안정을 위한 4자 협의체’를 가동했다. 외환당국인 기획재정부, 한국은행을 비롯 국민연금과 소관 부처인 보건복지부로 구성됐다.
연금 사회주의 우려도 ‘뜨거운 감자’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여권·정부는 국민연금을 매개로 의결권 행사에 직간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 개편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 사외이사 추천 경로 다양화를 언급하며 ‘국민이 추천한 기관’이라는 표현을 쓰자 금융권에서는 ‘국민연금 추천 사외이사를 쓰라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오갔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매개로 금융지주에 대한 간접 지배력을 강화하려 한다는 우려가 제기된 이유다.
재계와 시장에서는 스튜어드십코드 개편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국민의 주식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이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며 의결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코드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김 이사장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주도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예사롭지 않게 보는 시각이 많다.
현정환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외환 정책 등으로 국민연금을 수단화하면 수익성과 안정성이 동반 훼손돼 자칫 고갈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0호 (2025.12.24~12.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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