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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3 (화)

    [서경호의 시시각각] 내후년까지도 확장재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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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서경호 논설위원


    생중계된 정부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에 찬반이 엇갈렸다. 정책 투명성이 높아지고 관가를 긴장하게 하며 국민의 국정 이해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된 건 좋았다. 반면에 ‘환단고기’를 굳이 언급한 대통령의 말실수나 공기업 기관장을 윽박지르는 태도는 너무 나갔다는 평가가 많았다. 탈모 건강보험 적용 등 논쟁적인 이슈에 대한 대통령의 선호와 취향이 드러나도 과연 나중에 정부 안에서 충분한 숙의 토론이 이어질지도 걱정이다. 공개된 대통령의 선호를 외면하고 더 합리적인 대안을 부처가 내는 게 쉽지는 않겠다. 넷플릭스보다 재미있다는 평가나 지지자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더 나은 국정을 위한 이벤트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생중계된 대통령의 ‘큰 정부’ 편향

    적자재정 원상회복 노력 안 하나

    재정준칙·사전예산제도 도입을

    개인적으로 확장재정과 큰 정부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흔들림 없는 선호를 재확인한 게 의미 있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기획재정부 등을 대상으로 첫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당분간은 확장재정 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며 “내후년 예산 역시 확장 정책을 기반으로 편성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미 확정된 정부의 내년 예산은 728조원, 올해 본예산보다 8.1% 증가한 수퍼예산이다. 여기에다 내후년인 2027년도 예산도 확장재정으로 편성하겠다는 방침을 공개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금 경제 상황이 계속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바닥을 찍고 우상향 커브를 그리도록 하려면 국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내년 경제는 올해보다 나아지고 2%대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에 대해선 “성장률이 회복되면 조세 수입으로 (건전성 악화 부분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채 발행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잘해서 선순환이 이뤄지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지만 희망과 낙관에 기대서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재정은 길이가 짧은 이불 같다는 말이 있다. 턱밑까지 덮으면 발이 삐죽 나오고, 발을 덮자니 가슴께가 춥다. 재정이 필요한 곳 모두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우선순위에 따른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야당 땐 그렇다 치더라도 대통령 취임 후에는 ‘주인’ 입장에서 예산 편성을 지휘하고 지켜봤으니 좀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역시 사람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국세청 산하 국세체납관리단 인력을 대폭 늘리라고 지시하는 등 공공부문 인력 증원에 대한 대통령의 주문이 여러 차례 반복된 것도 눈여겨봤다. 인력이 없어서 일을 못 한다는 말은 하지 말고 필요하면 증원을 요청하라는 지시가 거듭됐다. 일을 되게 하라는 ‘일잘러 대통령’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공공부문이 한번 비대해지면 과거로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문재인 정부의 반면교사를 애써 외면하는 것일까.

    2027년 확장재정 소식은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같은 날 기획재정부가 보고한 한국형 국부펀드 도입이 더 신선해서인지, 아니면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론은 이미 상수(常數)일 뿐이고 더 이상 뉴스가 아니라고 판단해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요즘엔 무조건 재정을 아끼라고 주문하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경기가 나빠서 필요하면 쓸 때는 쓰고 적자를 보더라도 경제가 한숨 돌리면 균형재정으로 돌아오는 원칙이 필요하다는 게 재정학자들의 대체적인 공감대다.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중기재정계획을 제대로 심의하자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한데 재정준칙 도입은 하세월이고, 중기재정계획은 구속력이 없다. 우리 정부도 중기재정계획인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하지만 그뿐이다. 제대로 심의하지도, 승인받지도 않는다. 그러니 재정 규율이 서지 않고 나랏빚만 급속도로 늘고 있는 거다. 중기재정계획을 예산안보다 몇 개월 전에 국회에 미리 제출해 재정 총량(전체 예산 규모)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게 하는 사전예산제도를 이제 도입할 때가 됐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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