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 지난해 말 휴전선 일대에 철책을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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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휴전선 대응 기준 지침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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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책과 경계선 양보는 별개
합동참모본부가 지난 9월 우리 군의 군사지도상 군사분계선(MDL)과 유엔군사령부의 MDL이 다를 경우 더 남쪽 선을 기준으로 대응하라는 경계작전 지침서를 전방부대에 전파한 것으로 파악됐다. MDL은 1953년 유엔군과 북한·중국이 정전협정을 체결하며 획정한 휴전선이다. 당시 ‘군사분계선’이라고 표시한 1292개 말뚝을 설치하고 이를 연결한 가상의 선을 남북의 경계로 삼았다. 현재 1000여 개 말뚝이 훼손됐고, 홍수 등으로 지형이 변하면서 정전협정 당시 정했던 MDL이 불분명해진 곳이 일부 있다.
합참은 어제(22일) “표지판이 식별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우리 군의) 군사지도상 MDL과 유엔사 MDL의 연결선을 종합 판단해 조치 중”이라고 밝혔다. 말은 ‘종합 판단’이라고 했지만 우리 군이 2015년 작성한 군사지도와 유엔사의 MDL이 일치하지 않는 곳은 둘 중 더 남쪽에 그어진 선을 기준으로 대응하라는 게 새로운 지침이다. 한국군 지도의 MDL이 유엔군 지도보다 남쪽에 있으면 한국군 지도를, 반대의 경우 유엔군 지도의 MDL을 휴전선으로 간주하는 식이다. 일부 지역은 수십m 차이가 있다고 한다. 경계가 불명확한 지역에서 혼선을 막고 남북의 우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한 차원이라는 게 군의 설명이다.
새로운 MDL 판정 지침은 우리 군이 휴전선을 양보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렵다. 이뿐 아니라 군 당국은 얼마전 북한군이 MDL을 침범해 올 경우 위해 의도가 있는 때에 한해 경고사격으로 대응하라는 취지의 주문도 했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위해 여부에 대한 평가를 우선하다 보면 대응 시기를 놓칠 수 있다. MDL을 넘어온 북한군을 직접 조사하기 전엔 위해 의도가 있는지 판단하기조차 어렵다. 우발적 충돌로 확대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이처럼 신중함만 강조하다 보면 경계태세가 무너질 수 있다.
남북이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 당면 과제다. 그렇다고 엄연히 MDL 침범 사례가 일어나고 있는 전방 일선에서 경계를 늦추거나 무장을 약화하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대화를 준비할수록 오히려 군의 경계 태세는 더욱 강화해야 한다. 동해에 금강산 관광 유람선이 운항하는 가운데 서해에선 남북 해군이 교전했던 사례도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더구나 대화 분위기를 위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것과 경계선을 양보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군 당국은 유엔사와 우리 군 지도 사이에 차이가 있는 부분을 우선 조정하고, 이를 토대로 작전의 지침으로 삼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 빼앗기면 찾을 수 있지만, 내어준 것은 되찾지 못한다는 격언을 군 당국은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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