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오른쪽)이 23일 부산 해양수산부 임시청사에서 열린 해수부 업무보고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은 이날 김민석 총리에게 애국가 배경화면 교체를 지시했다. 전민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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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분류해놓은 거 어디 갔어? 비행기에서 따로 모아놨잖아. 그걸 왜 섞어놓냐고?" " 이재명 정부 첫해 부처별 업무보고 마지막 날인 어제(23일) 부산 해수부 청사에서 생중계로 진행된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모두 발언을 이미 마친 상태였다. "사상 최초라는 이번 생중계 업무보고를 통해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높아지고 국민 여러분의 주권 의식도 내실 있게 다져졌다고 생각됩니다. …국민 뜻을 국정 전반에 일상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시대정신이고 우리 국민 주권 정부가 나아갈 길입니다. …공직자는 주권자인 국민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모두 발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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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은 폭등, 부동산 가격은 불안
기업·가계 할 것 없이 곡소리 연말
바닥 민심 돌보며 큰 틀 제시해야
곧이어 김민석 총리가 "부처 보고를 시작하겠다"고 운을 떼자마자 이 대통령이 자료를 찾으며 "보고 전 할 말이 있다"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이토록 애타게 자료를 찾나 싶었는데, 그 전날(22일) 대한노인회 임원진과의 오찬 얘기였다. "참석자 한 분이 애국가 배경화면이 너무 오래됐으니 한국 발전상과 국제적 위상을 드러내도록 바꿨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저도 평소 그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부처 관할인가요. 총리가 논의해보시고요. " 자료가 온 뒤 이어진 내용도 비슷했다. 한국산 제품을 한국 정부가 인증하는 K 인증 제도 도입 제안이나 국민이 희망하는 미래 나라를 묻는 한국인 의식 가치관 조사 관련 수치 얘기였다.
의아했다. 어느 자리든 대통령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엄청난 무게를 지닌다. 특히 국무회의, 그것도 생중계로 전 국민이 보는 회의에서 대통령이 총리 말까지 끊어가며 하는 말이라면 더더욱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대다수 국민은 기대할 거다. 애국가 배경화면 교체 검토는 누가 보더라도 그렇게 긴박하고 중요한 사안은 아니다. 게다가 부산까지 가서 하는 해수부 업무 보고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아마 대통령과 총리의 짧은 대화 중에 애국가 관할 부처로 지목된 문화부나 행안부는 뜬금없는 대통령 주문 사항을 처리하거나 튕겨내느라 지금 한바탕 난리가 났을 거다.
이런 장면을 상상하자니 살짝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생중계 국무회의를 보기 전 훑어본 조간신문의 암울한 분위기와 대통령의 한가한 발언 사이의 간극이 커도 너무 컸던 탓이다. 이날 조간이 공통으로 다룰 수밖에 없었던 주요 경제 지표는 대략 이런 거였다. 이재명 대통령 본인이 지난 5일 "대책이 없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이 정부 출범 후 무섭게 치솟은 집값 탓에 올 3분기 신규 주택담보대출 평균액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한은 자료. 불경기가 이어지며 개인사업자 빚 연체율이 코로나 때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해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국가데이터처 자료….
지난 23일 서울 우리은행 본점 현황판에 표시된 원달러 환율. 계엄 때로 돌아간 수치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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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펀더멘털(기초 체력)의 척도인 환율은 더 심각하다. 달러당 원화가치는 이 대통령이 대선 직전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으로) 환율이 폭등해 모든 국민 재산이 7%씩 날아갔다"고 이전 정부와 당시 여당이던 국민의힘을 비난하던 계엄 국면 수준으로 완벽히 돌아갔다. 누구 말마따나 쌍팔년도 식으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삼성전자·현대차 등 7개 글로벌 기업을 소환해 군기를 잡고, 국민연금과 한국은행이 서학 개미를 아무리 윽박질러도 속절없이 추락해, 대통령이 애국가 화면 교체를 언급한 이 날은 전날보다 더 떨어진 1483.6원에 거래를 마쳤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기업은 물론 수입물가 급상승으로 당장 모든 가정의 살림살이가 눈에 띄게 팍팍해졌다. 좀 과장하자면 어딜 가나 곡소리다. 그런데 총리 등 이 정부와 여당 사람들은 "생방송으로 보여주기식 발언을 하기보다 이런 바닥 민심을 더 돌보라"고 조언하기는커녕 "넷플릭스보다 더 재밌는 잼플릭스"라고 대통령한테 아부하기 바쁘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6일 생방송 보고 후 "대통령은 큰 틀을 짜야지 실무자가 할 구체적 지침까지 챙기느냐"고 비판했다. 새겨들었으면 좋으련만 어제 회의는 더 퇴보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안혜리 논설위원 |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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