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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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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600년을 건너온 서사,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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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과 유럽,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대극장 창작 뮤지컬

    박은태·전동석·고은성·카이·신성록·이규형, 1인 2역 열연

    EMK의 열 번째 창작 도전...'K-뮤지컬' 저력 선봬

    메트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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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기록에서 사라진 한 인물의 이후를 무대 위에서 다시 호명한 창작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가 대극장 관객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충무아트센터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이 작품은 EMK뮤지컬컴퍼니의 열 번째 창작 뮤지컬로, 지난 12월 2일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 뒤 꾸준한 화제 속에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작품이 선택한 출발점은 조선사에서 가장 많은 의문을 남긴 인물 중 하나인 장영실이다. 자격루와 측우기, 신기전 등 혁신적인 발명으로 세종 시대 과학기술을 이끌었던 그는 노비 신분에서 종3품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지만, 1442년 임금이 타던 가마 사고 이후 태형을 받고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공식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복 입은 남자'는 이 공백을 단순한 상상이 아닌 하나의 서사적 질문으로 확장한다.

    뮤지컬은 장영실이 조선을 떠나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향했다는 가정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무대는 1막 조선, 2막 유럽으로 나뉘며, 시간적으로는 600년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 조선의 궁궐과 유럽의 르네상스 공간은 명확하게 대비되지만, 인물의 선택과 고민은 시대를 초월해 서로를 비춘다. 무대 전환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처럼 기능하는 구성이다.

    이야기의 현재 축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방송국 PD 진석에게서 시작된다. 그는 17세기 플랑드르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드로잉 '한복 입은 남자'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던 중, 정체불명의 비망록을 건네받는다. 역사학자 강배와 함께 기록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진석은 조선 시대 장영실의 흔적과 맞닿게 되고, 무대는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서양 회화 속 조선 복식이라는 미스터리한 단서는 극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으로 작용한다.

    작품은 장영실이 유럽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연결됐을 가능성까지 상상 속에 끌어들인다. 다만 이 설정은 '누가 누구의 스승이었는가'라는 단순한 우열 구도로 흐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태어난 천재성이 어떻게 교차하고, 그 만남이 개인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예술적 상상력이 허용하는 질문의 범위를 넓히는 방식이다.

    메트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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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 위에서는 여섯 명의 주연 배우가 모두 1인 2역을 맡는다. 과거의 영실은 현대에선 강배로, 과거의 세종은 현대에선 진석으로 이어진다. 동일 배우가 두 시대의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인물 간 관계와 감정의 반복과 변주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영실·강배 역에는 박은태, 전동석, 고은성이 번갈아 무대에 오르고, 세종·진석 역은 카이, 신성록, 이규형이 맡아 각기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캐스팅의 다양성은 회차별 관람의 결을 바꾸는 요소로 작용한다.

    음악은 작품의 정서를 이끄는 또 하나의 축이다. 전통적 리듬을 연상시키는 동양적 선율과 대극장 규모의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결합돼, 조선과 유럽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을 하나의 감정선으로 묶는다. 고국을 떠난 인물의 상실감, 새로운 세계 앞에 선 두려움과 기대가 넘버를 통해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서정성과 웅장함이 공존하는 음악은 장영실의 여정을 감정적으로 따라가게 만든다.

    무대 미술과 의상도 서사의 일부로 기능한다. 조선 장면에서는 절제된 색감과 여백이 강조되고, 유럽 장면에서는 조각과 회화를 연상시키는 입체적 이미지가 전면에 등장한다. 한복 특유의 선과 질감을 무대 조명 아래에서도 살리기 위해 원단과 색을 겹쳐 사용한 의상은, 작품 제목이 상징하는 '한복'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작품의 성과는 수상 후보 지명으로도 이어졌다. '한복 입은 남자'는 제10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과 작품상(400석 이상), 프로듀서상, 편곡·음악감독상, 무대예술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올해 창작 뮤지컬 가운데 주목받는 작품으로 자리했다. 대극장 창작물로서 서사 규모와 무대 완성도를 동시에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엄홍현 총괄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권은아 연출·극작, Brandon Lee(이성준) 작곡·음악감독 등 창작진은 이 작품을 '위인전'이나 '성공담'으로 귀결시키지 않는다. 기록되지 못한 삶, 선택 이후의 시간, 그리고 사회가 규정한 성공 바깥에서의 인간적 질문을 전면에 내세운다. 장영실의 여정은 누군가를 이기는 이야기라기보다,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다음 삶을 선택해 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는 2026년 3월 8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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