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9일 1주기 행사 앞두고 분주한 무안공항
유가족들은 1년째 텐트생활하며 진상규명 요구
추모발길 뜸해진 공항···1월5일이면 폐쇄끝나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앞둔 26일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외곽 펜스에는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적힌 현수막과 파란색 추모 리본이 내걸려 있다. 고귀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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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사흘 앞둔 26일 오전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던 활주로 위로 새하얀 눈이 내렸다.
외곽 펜스에는 수 만개의 파란 리본이 바람에 흔들렸다. 1년의 시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파란 색을 잃은 리본에는 희미한 글씨만 남아 있었다.
오전 11시 15분쯤 두꺼운 점퍼를 입은 한 중년 남성이 펜스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주머니에서 소주 한 병과 종이컵을 꺼내 조심스레 펜스 밑동에 술을 따랐다. 그는 사고현장을 앞에 두고 한 동안 고개를 숙였다.
펜스 주변에는 누군가 먼저 다녀간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반쯤 채워진 소주잔, 껍질이 마르기 시작한 귤, 자동차 장난감 위로 눈이 내려앉았다. 남성은 붉어진 눈가를 손등으로 훔친 자리를 떠났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사흘 앞둔 26일 오전, 전남 무안공항 활주로 외곽 펜스 아래 누군가 두고 간 소주와 바나나우유, 귤 위로 하얀 눈이 쌓여 있다. 고귀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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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1층 로비는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내년 1월 5일까지 폐쇄된 무안국제공항에는 낮은 발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로비 한 쪽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국화가 놓여 있었지만 추모객의 발길은 이전보다 뜸했다.
향 냄새가 희미하게 맴도는 분향대 앞에는 방명록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나의 전부인 당신, 보고 싶다’ ‘사랑한 내 동생’ ‘그곳에선 행복하게 기다려줘’ 등 그리움을 적은 글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만난 한 30대 부부(광주 거주)는 계단에 빼곡히 적힌 추모 글귀를 한참 들여다 봤다. A씨는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서 아내와 함께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항공 관련 종사자라고 했다. 이어 “매일 같은 하늘을 오르내리는 사람이라 마음이 더 무겁다”고 했다.
휴가를 맞아 경기도 안산에서 왔다는 B씨(40대)는 “안산에 살다 보니 이런 사회적 참사가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온다”며 “아이들에게도 ‘우리가 기억해야 세상이 안전해진다’는 걸 알려주고 유가족들에 힘이 되고 싶어 찾게 됐다”고 말했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사흘 앞둔 26일, 무안국제공항 합동분향소에 희생자들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 있다. 고귀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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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대합실에서는 1주기 추모행사를 위한 무대 설치가 한창이었다. 추모 무대 바로 뒤편에는 참사 직후 유가족들이 꾸린 40여 동의 쉘터(텐트촌)가 있다. 오는 29일 1주기 추모행사를 앞두고 바삐 움직이는 직원들 뒤로 놓인 텐트는 하나의 고립된 섬 같이 보였다.
여전히 많은 유가족들이 이곳에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텐트 사이에는 빨래를 널 수 있는 건조대가 있었다. 건조대에는 젖은 수건과 양말이 걸려 있었다. 컵라면 상자, 전기포트, 접어 둔 담요도 천막 문 틈으로 보였다.
유가족들은 매일 떠난 가족을 추모한다. 텐트촌에서 나온 한 중년 여성이 항공권 모양의 종이를 받아들어 자식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펜 끝이 종이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는 몇 줄 꾹꾹 눌러 글을 써내려 갔다. ‘딸들아 너무 보고 싶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곁에 있던 또 다른 유가족은 “저분은 이번 참사로 딸 둘을 잃은 어머니”라고 전했다.
유가족 박귀숙씨는 이번 참사로 남편을 잃었다. 그는 한 달에 보름 이상을 공항 텐트에서 보낸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 1년을 “철저히 외면받은 시간”으로 기억했다.
그는 “언론에서도 예전만큼 다뤄주지 않았고, 대통령 선거와 산불 같은 이슈에 밀리면서 우리 가족들의 죽음이 빈 곳처럼 잊히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앞둔 26일, 유가족들이 머무는 무안국제공항 2층 쉘터 공간에 빨래가 널려 있다. 고귀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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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이 불편한 텐트 생활을 감수하며 공항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진상 규명’ 때문이다.
사고 1년이 다 돼가지만 책임을 둘러싼 판단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경찰이 사고와 관련해 44명을 입건했지만, 지금까지 기소되거나 처벌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가족은 “정부와 수사당국이 책임을 미루는 사이, 가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참사 당일인 1년 전 12월 29일에 멈춰 서 있다”며 “유가족을 보호하고 안아줘야 할 국가가 도대체 지난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울분을 토했다.
참사 1주기인 오는 29일 오전 9시3분, 광주와 전남 전역에는 그날의 비극을 기억하는 사이렌이 1분간 울려 퍼진다. 오전 10시부터는 무안국제공항에서 여객기 참사 1주기 추모식이 엄수된다. 헌화와 추모영상 상영, 추모사, 추모공연이 예정돼 있다.
26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내 이동 통로 난간에 12·29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쪽지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고귀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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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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