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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1 (수)

    정동영 원맨쇼만 보인다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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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대북협의체 참여 거부한 통일부
    '정동영 효과' 강력, 동맹 공조는 흔들
    비핵화 미루고 홀로 치고 나갈 때인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업무보고를 마친 뒤 구내식당에서 정동영(왼쪽) 통일부 장관, 조현 외교부 장관과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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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부가 외교부를 뭉갰다. 한미정상회담 합의 이후 외교부 주도의 협의체 참여를 거부했다. 대북정책을 미국과 따로 논의하겠다고 어깃장을 놨다. 트럼프-김정은 회동이 점쳐지는 내년 한반도 정세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상 초유의 불협화음을 냈다. 한데 뭉쳐도 모자랄 판에 우리끼리 쪼개졌다. 대통령실이 말려도 막무가내다. “굉장히 긴 논의와 많은 토론을 거쳐 정리된 것인데 아쉬움이 있다.” 통일부의 마이웨이에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말을 아꼈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 보수정부에서 통일부는 외교부 위세에 눌려 한때 존폐위기에 몰렸다. 반면 이재명 정부 들어 목소리를 높이며 질주하고 있다. '정동영 효과'가 강력하다. 집권여당 거물 정치인이 20년 만에 다시 장관으로 복귀하면서 거침이 없다. 이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특사로 써 달라”며 존재감을 뽐내더니 다른 장관들과 달리 청산유수로 국무회의 분위기를 달궜다. “통일부 방침을 지지한다.” 부처 간 엇박자 우려에 아랑곳없이 여당 대표가 적극 엄호할 정도다.

    그간 국방부가 유탄을 맞았다. 정 장관은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늦추고 줄이자는 발언을 쏟아냈다. 심지어 훈련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고 했다. 군 본연의 임무와 장병들의 자긍심을 저버리는 처사다. 확고한 안보태세는 김정은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한 버팀목이다. 이 대통령이 강조하듯 싸울 필요가 없든, 싸우지 않고도 이기든, 싸울 준비가 먼저 돼 있어야 하는데 우리 군의 역량을 키울 기회를 날리려 했다. ‘원팀 정부’가 무색하게 홀로 속도를 내며 국방부를 뒤로 물렸다.

    정 장관이 밀고 있는 ‘평화적 두 국가론’도 마찬가지다. 정부 입장인지 아닌지를 놓고 말을 바꾸는 건 그렇다 치자. 자칫 비핵화 명분을 없애는 치명적인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교류와 협력으로 북한과 공존하자면서 평화의 최종 관문인 비핵화는 기약 없이 미뤘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도 괜찮다는 건지 의문이다. “두 국가 논리로 가면 비핵화고 뭐고 우리가 할 말이 없어진다. 어떻게 북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나.” 불쾌감을 드러내던 정부 고위관계자의 표정이 생생하다.

    촘촘히 맞물려야 할 외교부, 국방부와 삐걱대고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실마저 휘둘린다. 이 대통령은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하는데 정 장관은 대북제재를 완화하겠다며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흔들고 있다. 정 장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지낸 사령탑이었다. 팀워크를 깨는 원맨쇼가 얼마나 위험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북한을 움직이겠다며 선물 보따리만 챙기려는 건 무책임해 보인다. 2008년 박왕자씨 피살을 사과하지 않는데 어떻게 2019년 김정은 말대로 조건 없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나. 2010년 천안함 피격의 비극을 되짚어보지 않고 5·24 대북제재를 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 장관은 2005년 특사로 방북해 최고 권력 김정일과 독대한 경험이 있다. 당시 김정일은 군사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되면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핵화는 김일성의 뜻인 선대의 유훈이라고 털어놨다. 정 장관의 신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면서 본말이 전도됐다. 최대 위협인 핵개발로 인해 한반도 정세가 훨씬 불안해졌다. 핵보유를 아예 법으로 못 박은 김정은을 상대로 핵은 수단일 뿐이라고 설득할 단계가 한참 지났다. 비핵화를 맡은 외교부와 핵위협에 대응하는 국방부를 패싱할 때가 아니다. 정 장관은 남북관계의 소중한 자산이다. 혹여 스포트라이트 욕심에 균형감을 잃는다면 모두에 손해다.

    김광수 논설위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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