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비딕 주인공의 무모한 복수 집착
수사기관 난립과 불필요한 기관 간 경쟁
수사기관 충돌과 혼선, 시급히 정리해야
수사기관 난립과 불필요한 기관 간 경쟁
수사기관 충돌과 혼선, 시급히 정리해야
국가수사본부 전경. 경찰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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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1851년 작 '모비딕'은 단순한 모험 소설을 넘어, '인간의 맹목적 집착'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일등항해사 '스타벅(Starbuck)'은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고래에게 복수하려는 선장 에이해브(Ahab)에게 끊임없이 경고한다. 무모한 복수는 파국을 가져올 것이라는 그의 현실적인 조언에도 불구하고, 에이해브는 결국 복수의 여정에 나섰다가 파국을 맞는다.
인도네시아의 이른바 '악어와 도마뱀' 사건은 거대 권력 기관(경찰)과 신생 반부패 기구(KPK)의 갈등을 상징하는 대표 사례다. 이 용어는 2009년 인도네시아 경찰청 수사국장 수스노 두아지가 KPK의 감청 및 수사에 불만을 품고 "도마뱀(Cacak) 같은 작은 존재가 악어(Buaya)인 경찰과 싸우려 든다"고 비아냥거린 데서 유래했다.
이 사건은 KPK가 경찰 고위 간부의 뇌물 수수를 포착하고 감청하자, 경찰은 보복성 수사로 맞대응하면서 시작되었다. 경찰은 KPK 위원들을 허위 혐의(뇌물 수수 등)로 체포하거나 기소하여 조직 무력화를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승자는 없었고,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만 훼손되었다.
이같이 수사기관이 난립할 때 불필요한 경쟁이 촉발된다. 한국의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도 검찰과 경찰은 국민의 인권 보호나 범죄 척결보다는 자신들의 권한 확대 또는 방어에 몰두했다. 국민을 염두에 둔 개혁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수사기관을 제압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로 시작했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사건 처리가 하염없이 지연되는 것을 넘어서 처리 자체가 언제 될지 모르는 '사법 서비스 마비' 현상을 확인하고 있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탄생한 공수처는 독립기구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3대 특검까지 진행되면서 수사기관 간 경쟁이 가중된 양상이다. 채 상병 특검은 공수처장, 차장, 공수처 수사 검사를 기소하고, 김건희 특검은 전직 중앙지검장, 차장, 수사 검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수사를 개시하였다. 수사를 다 끝내지 못한 사건은 또 경찰 국가수사본부로 이첩되었다. 같은 사건이 여러 수사기관에서 다시 수사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수사를 덮거나 잘못하였으면 수사기관도 수사 대상이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인도네시아 사례처럼 타 수사기관보다 힘의 우위를 과시하는 용도나 정치적 목적 달성의 도구로 수사권을 이용하는 경우가 우려된다. 수사기관 간의 충돌과 혼선이 계속되면서 제대로 된 수사를 통해 피해가 제때 회복되지 않는다면 그 피해자는 선량한 국민이고, 수혜자는 그 틈에 숨은 범죄자일 뿐이다. 옥상옥 수사기관의 문제, 수사기관 간의 사건 떠넘기기(핑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 '검찰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넘어 ‘수사 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모비딕'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이 던지는 가장 강력한 교훈은 바로 '집착의 위험성'이다. 에이해브는 흰고래를 악의 화신으로 규정하고, 그를 향한 분노에 모든 의미를 덧씌운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의 분노와 의미 투사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 집착은 목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파괴에 가깝다.
2026년에는 부디 수사기관 간의 소모적인 다툼 대신 평화로운 뉴스가 가득하길 소망한다.
시각물_김후곤(김후곤 제공) |
김후곤 변호사·전 서울고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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