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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1 (목)

    대학 논술 '킬러 문항'에 시정명령, 교육도 규제 만능주의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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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가 이화여대 등 4곳에 대해 2025학년도 대학별고사에서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이른바 '킬러문항'을 출제했다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교육 정상화와 선행학습 방지라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교육 현장을 '규제 만능주의'로 몰아가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번에 적발된 킬러문항은 전체 문항 3297개 중 11개로, 위반 비율이 0.3%에 불과하다. 특히 이화여대의 경우 출제 후 현장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고교 교육과정 성취 기준을 충족한다"는 자체 보고서를 냈음에도 교육부는 이와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이라는 기준 자체가 모호해 해석이 갈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견해가 엇갈리는 사안을 교육부가 기계적인 잣대로 킬러문항으로 규정하고 시정명령까지 내리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적 접근이다.

    시정명령을 통보받은 대학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2년 연속 위반 시 '모집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는다. 이번에 모집 정지까지 이른 곳은 없으나, 카이스트는 2019학년도와 2020학년도 연속 위반으로 입학 정원의 10% 모집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전에도 연세대, 울산대, 광주과학기술원 등이 유사한 제재를 받았다. 이러한 강압적인 규제는 대학들로 하여금 혹시 모를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문항 수준을 대폭 낮추게 만드는 '학력 하향 평준화'를 부추길 뿐이다.

    논술·면접 등 대학별고사는 수능 위주의 일률적인 평가가 놓치기 쉬운 학생들의 논리적 사고력과 잠재력을 심층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시행된다. 특히 상위권 대학일수록 변별력 확보를 위해 문제 수준을 높이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사교육 심리를 자극한다는 이유로 어떤 문항이 왜 위반인지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깜깜이 규제다. 공교육 정상화와 선행학습 방지는 분명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그 과정이 대학의 선발 자율성을 옥죄고 교육의 질적 저하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교육부는 규제와 처벌 위주의 행정에서 벗어나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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