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 2028학년도 대입제도, 고교학점제 취지와 완전히 어긋나"
"교육감직 점수 88점…12점은 정책이 변화 얼마나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재출마 여부, 종합적으로 조용히 판단할 것…선거는 우선순위 아냐"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 |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은 현행 상대평가 체제가 학생의 성장을 가로막고 과도한 사교육 의존, 공부 부담 가중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돼야 한다고 재차 역설했다.
정 교육감은 지난 26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상대평가 체제는 너무 오랫동안 대입과 결합해 초·중등교육 전반을 왜곡시켜 왔다고 생각한다. 시험에서 친구보다 몇 점, 몇 등 앞서느냐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진 '줄 세우기' 경쟁이 우선돼버렸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특히 지난 정부가 확정한 2028학년도 대입제도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어긋나는 지점이 분명하다"며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평가 체제도 함께 바뀌어야 하는데, 우선 진로·융합선택 과목의 상대평가 병기를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교육감과의 문답.
-- 2033학년도부터 수능·내신 절대평가, 2040년 수능 폐지 방안을 최근 제안했다. 절대평가 도입이 꼭 필요한 이유는.
▲ 상대평가 체제는 너무 오랫동안 대입과 결합해 초·중등교육 전반을 왜곡시켜 왔다. 친구보다 몇 점, 몇 등 앞서느냐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학생 개개인의 성장보다는 '줄 세우기' 경쟁이 우선돼 버렸다. 입시 부담과 사교육 의존도 함께 커졌다. 특히 지난 정부의 2028학년도 대입제도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어긋나는 지점이 분명하다.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선 평가 체제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학생이 어떤 과목을 얼마나 성실히 이수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역량을 길렀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고교학점제의 핵심이다. 우선 2028학년도 대입안에서 진로·융합선택 과목의 상대평가 병기를 과감히 폐기하고, 2033학년도 대입부터는 수능과 내신 전반을 절대평가 체제로 단계적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그 이후 2040년 수능 폐지안을 검토하면서, 고교학점제·학교 평가·대입제도를 하나의 큰 그림 속에서 함께 재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절대평가는 그 큰 그림의 출발점이다.
-- 절대평가로 나아가기 위해 교육계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면.
▲ 절대평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대입 변별력이 약해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들린다. '변별력'의 의미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객관식 시험에서 한 문제, 두 문제 더 맞힌 학생을 가려내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고교 3년 동안 무엇을 배우고, 어떤 역량을 갖추었는가를 드러내는 능력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절대평가는 수능이나 내신의 '채점 방식'만 살짝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평가 내용과 방식, 나아가 고교학점제와 대입제도 전체를 함께 바꾸는 과제다. 서울시교육청이 인공지능(AI) 서·논술형 평가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생 개개인의 사고 과정과 표현능력, 문제 해결력을 더 잘 볼 수 있는 평가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서울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하는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 |
-- 시행 1년을 맞는 고교학점제를 두고 학교 현장에선 비판이 많다. 고교학점제가 꼭 필요한 제도라고 보나.
▲ 고교학점제는 단순한 제도의 도입을 넘어선 고등학교 교육 패러다임의 전면적인 재구조화다. 학생 스스로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자기 주도성을 기르고, 학교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과 개별화된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고교학점제야말로 현시대 고등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제도라고 생각한다.
-- 서울 학교에서 이 제도가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해야 하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촘촘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이다. 서울은 그간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로 교원 감축이 지속돼 다양한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원 정원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왔고 그 결과 2026학년도 교원 감축폭을 줄이고, 고교학점제 운영을 위한 교원 확보를 할 수 있었다. 단순한 학생 수 기준에서 탈피해, 미래 교육 수요와 지역의 특수성 및 다양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교원 정원 산정 방식의 재설계'로 적정 규모의 교원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최근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가결한 것을 두고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왔다. 학생인권조례가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각에선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를 불러왔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 학생 인권과 교권은 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선생님의 교육활동 보호를 강화하는 것과 학생의 인권을 지키는 일은 동시에 가야 한다. 교권 침해의 원인을 학생인권조례 하나로 돌리는 것은 복합적인 구조적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해석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특정 진영의 정치적 상징이 아니라, 학생의 인권을 선언하고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양원숲초에서 아침 등교 맞이 |
-- 교육감직을 맡은 지 1년 2개월이 됐다. 스스로 점수를 준다면.
▲ 숫자로 평가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굳이 말하자면 100점 만점에 88점 정도다. 취임 직후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학교 안전과 일상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뒀다. 동시에 학생들이 현실 정치와 사회 변화를 스스로 이해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민주시민교육과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서울학습진단성장센터'의 전체 교육지원청 확대, '서울학생 마음건강 증진 종합계획' 마련과 추진, 교권 보호를 위한 서울교육앰뷸런스(SEM119), 선생님 동행 변호인단·마음닥터 운영, 미래형 대입제도 제안, 고교학점제 안착 지원 등을 추진했다. 남은 12점은, 정책이 문서에만 머무르지 않고 학생 한 명, 교실 하나의 변화를 얼마나 더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 재출마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데.
▲ 교육감 역할을 수행하면서 서울교육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는 점을 실감했다. 교육감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매 순간 느낀다. 지금 우선순위는 선거가 아니라 남은 임기 동안 맡겨진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여러 현안을 교육공동체와 함께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겠다. 재출마 여부는 이런 과정을 충분히 거친 뒤, 서울교육이 필요로 하는 방향과 서울 교육 가족, 서울 시민들의 의견을 종합해 조용히 판단하겠다.
-- 2026년 서울시교육청이 가장 역점을 둔 정책은 무엇인가.
▲ 미래형 대입제도 개선안과 초중고 AI교육 종합계획을 말로만이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 실천 계획으로 풀어내겠다. 고교학점제-평가-대입이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정합성을 높이고, AI가 일부만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열려 있는 공교육의 학습 도구가 되도록 하겠다. 교권 존중 문화를 확실히 정착시키는 일, 이미 높은 전문성을 갖춘 서울의 교사들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강화하는 일도 중요한 축이 될 것이다.
인사말하는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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