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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1 (수)

    이슈 미술의 세계

    한국에 못 온다면 일본에 가서라도… '재일 한국인 미술' 찾아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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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요코하마미술관 특별전 '항상 옆에 있으니까'
    양국 미술 교류 80년사 소개하며 재일 한국인 작가 집중 조명


    한국일보

    관람객들이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항상 옆에 있으니까' 전시를 보고 있다. 1977년 도쿄 센트럴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과 1979년 제5회 대구현대미술제에 나왔던 한국 작가의 작품이 소개됐다. 가토 겐 촬영·요코하마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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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한일 수교 60년이라 양국 문화계에서 여러 교류 전시와 행사가 열렸다. 그 마침표 격으로 현대미술 분야 교류전이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요코하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 미술관이 한국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마련한 특별전 '항상 옆에 있으니까, 일본과 한국 미술 80년'은 1945년 해방 이후 양국 미술 교류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대형 행사다. 일본 미술계에서 한일 교류를 주제로 전시회를 여는 건 드문 일이다.

    지난 19일 방문한 전시장에는 한국인 관람객 눈에도 익숙한 백남준과 이우환 등 한국 작가들과 그에 필적할 야마구치 다케오, 도미야마 다에코 등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졌다. 다른 문화 영역의 교류가 단절된 역사 속에서도 미술계만큼은 수십 년에 걸쳐 두 나라 작가들이 서로에게 '자극'이 됐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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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코하마미술관 특별전 '항상 옆에 있으니까'에 전시된 이우환의 풍경(Ⅰ)·(Ⅱ)(왼쪽)와 곽인식의 샘(하늘). 두 작가는 1968년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회화전'에 참가했다. 해방 후 일본에서 열린 최초의 한국 작가 전시다. 가토 겐 촬영·요코하마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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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요코하마미술관 '항상 옆에 있으니까' 전시에 소개된 일본 작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작품들. '민중의 힘 Ⅰ'(오른쪽부터) '자유광주'처럼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과 '지쿠호 언더그라운드' '남태평양 해저로부터'처럼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을 묘사한 그림이 함께 나왔다. 가토 겐 촬영·요코하마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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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야마구치 다케오는 1902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김환기와도 긴밀하게 교류했다. 그는 조선의 대지에서 적토색, 중국 남부 땅에서 황토색을 따 화폭에 녹였다고 한다. 도미야마 다에코는 '동백림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던 이응노·박인경 부부의 작품을 1980년대 일본에 소개했을 뿐 아니라 '광주의 피에타' 같은 작품을 그려 한국 민주화운동과 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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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 한국인 1세대 작가인 조양규의 '밀폐된 창고'(왼쪽 사진)와 '맨홀 B'. 스스로도 창고지기로 일하며 재일 조선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 활동을 했던 그는 1960년 북한으로 향한 후 소식이 끊겼고, 현재 한국과 일본에 남은 작품이 거의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요코하마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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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전시장 상당 부분이 재일 한국인 작가들에게 할애됐다는 점이다. 곽인식 곽덕준 등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작가 외에도 비교적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재일 한국인 작가 작품이 다수 나왔다. 1960년을 끝으로 북한으로 이주한 조양규의 대표 작품 '밀폐된 창고' '맨홀 B'를 비롯해, 김희려 백령 성리식 전화황 한동휘 등의 작품은 남북한과 일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재일 한국인의 정체성을 사회비판적 리얼리즘으로 표현하고 있다.

    요코하마미술관 쪽에서 이번 전시를 기획한 히비노 민용 요코하마미술관 주임학예원은 "재일 한국인 미술은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아 미술사의 주류에 올라오지 못했다"면서 "오늘날 이들이 주목을 받는 것은 국가의 틀에서 벗어나 미술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히비노 주임은 재일 한국인 3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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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바라 지아키와 리정옥의 '벽을 넘는 다리의 드로잉'.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과 도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사이의 교류 전시를 위해 설치된 계단을 표현한 작품이다. 요코하마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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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는 재일 한국인과 일본 사회의 대화가 현재진행형임을 암시하며 마무리된다.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 교육기관 도쿄 조선대 미술대학과 무사시노미술대학은 벽 하나를 둔 이웃이다. 두 대학 학생들은 2015년 벽에 계단을 세워 양 건물에 길을 내고 교류 전시를 진행했다. 당시 이들은 "불안과 갈등을 야기하더라도 대화를 지속하고 성찰하는 시도가 없다면 역사적 원한과 정치적 마찰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며 "경계를 넘어 '어두운 계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외쳤다.

    젊은 작가들의 대화는 한국에도 화두를 던진다. 재일 한국인 2세 사업가 하정웅이 기증한 '하정웅 컬렉션' 등을 통해 재일 한국인 작품이 다수 한국에 소개됐지만 한일 관계와 남북 이념 대립의 현실 속에 집중 조명은 받지 못했다. 이 때문일까, 하정웅은 전시 소식을 듣고 "한국과 일본 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하는 이런 전시를 꿈꾸고 있었다"고 말했다는 게 히비노 주임의 전언이다.

    내년 5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요코하마미술관과 동일한 구성으로 전시를 이어받는다. 아쉽게도 재일 한국인 작품과 자료 중 일부는 정치적 제약 때문에 한국에 오지 못할 수 있다. 일본에서 내년 3월 22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를 한국인이 직접 찾아가 봐야 할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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