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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1 (수)

    여름 25일 길어지고 겨울 22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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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상청, 113년치 기후 분석

    2020년대부터 온난화 가속

    조선일보

    극심한 기후 변화로 지난달 4일 충북 충주시 주덕읍 삼청리의 한 사과 농장에서 농장주가 열매 터짐(열과) 등 병해로 손상된 사과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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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기후변화에 가속이 붙고 있다. 온난화 여파로 191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100년 동안 1.9도가 상승했으나, 2020년대(2020~2024년) 들어 0.9도가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불과 5년 만에 50년 치가 오른 셈이다.

    기상청이 30일 발표한 ‘우리나라 113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12년부터 2024년까지 113년간 국내 연평균 기온은 2.8도가 올랐다. 1910년대(1912~1919년) 12도에서 2010년대(2010~2019년) 13.9도로 100년간 1.9도 오른 뒤, 2020년대 14.8도로 단기간에 0.9도가 상승했다.

    가파른 기온 상승으로 인해 계절 길이 변화와 폭염·열대야·강수 양상도 과거보다 더 빠르게 변해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여름이 극단적으로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는 양상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보고서는 정기적으로 발간하진 않고, 기후 위기 신호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판단할 때 각국 기상청이 내고 있다. 한국은 ‘100년 보고서’(2018년), ‘109년 보고서’(2021년)에 이어 4년 만에 발간했다. 기상청은 “과거에 ‘기상이변’으로 간주했던 극단적 호우나 장기간 열대야, 가뭄 등의 사태가 이제는 ‘뉴 노멀(새로운 기준)’이 되고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2020년대 들어 전 지구 기온이 해마다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온난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를 분석하기 위해 올해 보고서를 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진영


    ◇녹아내리는 한반도… 여름 25일 길어지고 겨울 22일 사라졌다

    ‘113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는 1912년부터 2024년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분석 지점은 1904∼1911년 근대적인 기상 관측을 시작한 6곳(인천·목포·부산·서울·대구·강릉) 관측 자료를 토대로 이뤄졌다. 기상청은 이 지점들이 공통적으로 관측 자료를 가지고 있는 1912년부터 1940년까지를 편의상 ‘과거 30년’(실제는 28년)으로, 1995년부터 2024년까지를 ‘최근 30년’으로 각각 정의해 날씨 지표들을 비교했다.

    우리나라 기후의 두드러진 변화는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졌다는 것이다. ‘과거 30년’ 평균 98일이었던 여름(일평균 기온이 20도 이상 올라간 뒤 다시 떨어지지 않은 첫날부터 끝날)은 ‘최근 30년’ 평균 123일로 25일 늘었다. 최근 10년(2015∼2024년)만 평균을 내면 130일로 더 길어졌다. 여기에 여름철 평균 기온도 크게 올라 작년(25.6도)에 세운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을 올해(25.7도) 갈아치웠다.

    반면 겨울(일평균 기온이 5도 미만으로 내려간 뒤 다시 올라가지 않은 첫날부터 끝날)은 과거 30년 평균 109일에서 최근 30년 평균 87일로 22일 감소했다. 최근 10년 평균은 86일이었다.

    봄(일평균 기온이 5도 이상으로 올라간 뒤 다시 떨어지지 않은 첫날부터 여름 시작 전)은 과거 30년 평균(85일)보다 5일 길어졌고, 가을(일평균 기온이 20도 미만으로 내려간 뒤 다시 오르지 않은 첫날부터 겨울 시작 전)은 과거(73일)보다 8일 짧아졌다. 봄이 일찍 시작하고, 여름이 길어지며, 가을·겨울이 짧아지는 전형적인 온난화 양상을 보인 것이다. 계절을 막론하고 전반적으로 기온 상승이 나타나며 연평균 기온도 재작년(14.8도)에 세운 최고 기록을 작년(15.4도)에 경신했고, 올해가 끝나면 다시 새 기록이 쓰일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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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대야로 대표되는 ‘밤 더위’가 심해지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 기후의 큰 변화 중 하나다. 113년간 최저기온(10년마다 0.25도 상승) 상승세가 최고기온(10년마다 0.14도 상승)보다 가팔랐다. 폭염보다 열대야가 심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폭염일(일 최고기온 33도 이상)은 113년간 10년마다 0.22일 늘어난 반면, 열대야일(밤 최저기온 25도 이상)은 10년에 1.1일씩 늘어났다. 특히 최근 30년 열대야일은 평균 17.4일로, 과거 30년(평균 8.4일)보다 9일이나 늘었다. 최근 10년으로만 좁히면 평균 열대야일은 23.8일에 달했다. 열대야는 1970~1980년대만 해도 제주와 남해안 일부를 중심으로 나타났으나 2010년대 서쪽 지역 전역으로 확대됐고, 2020년대 들어선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열대야는 도시 지역에서 더 뚜렷하게 증가했다. 기상청은 그 원인을 ‘도시 열섬’ 여파로 분석했다. 도시 열섬은 도시가 외곽 지역보다 기온이 높아지는 현상이다. 전국에 기상 관측망이 확충된 1973년 이후 관측 결과를 보면, 도시 지역의 열대야 증가세가 10년에 2.17일로 비도시 지역(10년에 0.85일)을 압도했다. 낮 동안 달궈진 도시의 아스팔트 도로가 밤에도 열기를 머금고, 미세먼지로 인한 온실효과 등이 밤 더위 상승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강수 측면에서는 비 오는 날은 줄어드는데 비 오는 양은 점점 많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13년간 연 강수량은 10년마다 17.83㎜씩 증가한 반면, 강수일(일강수량이 0.1㎜ 이상인 날)은 10년에 0.68일씩 오히려 줄었다. ‘집중호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과거 30년 연 강수량은 1178㎜였으나 최근 30년은 1335.5㎜로 157.5㎜ 더 내렸다. 반면 강수일은 과거 30년(111.5일)보다 최근 30년(106.2일)에 5.3일 줄었다.

    겨울은 강수량과 강수일이 모두 줄고 있다. 겨우내 눈이 쌓여야 봄까지 천천히 녹으면서 땅에 수분을 공급하는데 겨울 강수량이 줄며 봄 가뭄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30년 겨울 강수량은 100.3㎜였지만, 최근 30년에는 89.5㎜로 줄었고, 강수일도 22.3일에서 19일로 감소했다. 최근 10년간은 강수일이 18.5일로 더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기상청은 “이상 기후 현상이 점점 가속화됨에 따라, 여름에는 극한 호우, 겨울과 봄에는 가뭄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는 등 피부에 와 닿는 ‘기후 위기’의 양상이 앞으로 더 자주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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