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쿠팡아이엔씨(Inc) 의장이 2021년 3월11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상장을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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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 사회정책부장
2020년 10월12일 새벽 2시께 쿠팡 칠곡물류센터. 폐회로텔레비전(CCTV)엔 밤샘 노동을 하던 고 장덕준(당시 27살)씨의 마지막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장씨는 몸에 뭔가 이상을 느꼈는지 왼손을 가슴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난간을 잡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뒷모습도 찍혔다. 새벽 4시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장씨는 아침 7시 반께 욕조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고, 태권도 유단자로 누구보다 건강했던 아들의 죽음에 부모는 망연자실했다.
장씨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에 일용직으로 1년4개월 동안 일했다. 상품 포장과 운반 등 업무 전반을 지원하는 고강도 노동 탓에 장씨의 몸무게는 75㎏에서 60㎏까지 빠졌다. 숨지기 전 12주 동안 주 58시간, 마지막 일주일은 주 62시간을 일했다. 밤샘 노동을 하면서 식사도 휴식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고된 노동으로 숨진 장씨는 2021년 2월 산재(과로사)를 인정받았다.
20대 청년의 비참한 죽음에 쿠팡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최근 제보자를 통해 세상에 낱낱이 공개됐다. 혁신가로 포장된 채, 장막 뒤에 숨어 있던 쿠팡 창업주인 김범석 쿠팡아이엔씨(Inc) 의장의 민낯을 볼 수 있다.
김 의장과 쿠팡 전 시피오(CPO·개인정보보호 최고책임자) ㄱ씨가 2020년 10월 장씨의 죽음 이후 나눈 메신저 내용을 보면, 김 의장은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산재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실상 은폐·조작을 지시한다. 김 의장은 장씨의 근무 영상을 분석한 자료와 관련해 “그(장씨)가 열심히 일한다는 메모를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해”라고 말한다. 또 장씨의 노동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듯 “물 마시기, 대기, 잡담·서성거림, 짐 없이 이동하기, 화장실” 등을 언급한다. 이를 위해 쿠팡은 시시티브이 8대를 초 단위로 분석했다.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김 의장의 태도는 쿠팡이 그동안 보여줬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2020년 5월27일 새벽 2시40분께 인천 물류센터에서 밤샘 노동을 하던 40대 계약직 ㅅ씨가 심장질환으로 숨졌다. 유족이 산재 신청을 위해 쿠팡 쪽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고강도 노동을 증명할 핵심 자료는 주지 않았다. “급여명세서의 경우 5월치 유피에이치(UPH·시간당 생산량) 수당이 많이 지급돼 노동 강도가 높았다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쿠팡에선 노동자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쿠팡과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택배),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물류) 등 3곳에서 사고가 아닌 심근경색 등으로 갑자기 숨진 노동자는 모두 23명(국회 자료)이다. 집에서 자다가, 택배 운송차량 화물칸에 앉아 쉬던 중에 장씨와 ㅅ씨처럼 느닷없이 죽음이 찾아왔다. 왜 죽음에 이르렀는지, 자신이 일했던 노동 환경과 관련이 없는지 따져 묻기 위해선 산재 신청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쿠팡에선 3명의 유족만이 산재 신청을 했다.
쿠팡이 만든 ‘산재 대응 매뉴얼’과 제보자가 공개한 내부 자료, 유가족 증언 등을 조각조각 연결하면,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유가족에게 합의금 지급이나 핵심 자료를 주지 않는 방법 등으로 산재 신청을 포기하게 한다. 산재를 신청해 인정받으면, 취소 소송으로 압박하는 사례도 있다. 2021년 4월 쿠팡 용인물류센터에서 근무하다 집에서 숨져 산재 승인을 받은 최성락(당시 65살)씨가 이런 경우다.
“덕준이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전국을 돌았습니다. 그 모든 순간이 김범석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고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제발 좀 김범석을 잡아주세요.”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는 지난 30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열린 국회 ‘쿠팡 청문회’에서 눈물로 호소했다.
김 의장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비즈니스 일정’ 때문에 출석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그는 단 한번도 한국에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산재 은폐에 대한 진상 규명과 처벌, 사과와 보상. 김 의장이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쿠팡이 변한다.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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