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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3 (토)

    [2026 신춘문예] 떨어지며 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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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당선작

    장마 전선이 올라와.

    누나가 말했다. 접이식 욕조 안에서 몸을 더 바짝 웅크리며.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온 물이 수면과 부딪히는 소리에 무엽은 누나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욕조 물이 누나의 갈비뼈를 한 칸씩 올라갔다.

    장마 전선이 올라온대, 혹은 장마 전선이 올라와? 라고 물어본 거였을까. 어쩌면 장마 전선이 올라와서, 하고 다음에 할 말을 고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무엽은 어미만 고쳐서 스마트폰에 옮겨 적었다. 장마 전선이 올라옵니다. 화면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액정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수증기와 땀이 섞여 화면 속 키보드에 자국을 남겼다. 창문이 없는 화장실은 아침부터 덥고 습했다.

    변기 커버에 맞닿은 엉덩이뼈가 뾰족하게 느껴졌다. 누나가 다시 느린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무엽은 샤워기의 물을 잠그고 다시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두 엄지가 바쁘게 움직였다. 모든 어미를 –ㅂ니다, 로 고치면서도 누나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화면 속 스크롤은 짧아졌다.

    장마 전선이 올라옵니다.

    나는 천장과 맞닿은 창문을 올려다봅니다. 오랜 잠을 자는 할머니처럼 얕고 길쭉한 창문 밖으로 자동차 바퀴와 비좁은 하늘이 보입니다. 흐린 날의 바다처럼 푸르죽죽합니다. 이른 아침인 걸까요 늦은 저녁인 걸까요. 불 꺼진 집 안도 창밖처럼 푸르죽죽합니다. 빈 샴푸통과 엄마가 보내준 반찬통이 좌우로 흔들거리며 천장을 툭툭 치고 있습니다. 암초에 걸려 좌초된 배 같습니다. 나는 집 안이 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장마는 이미 와 있습니다.

    그런데도 숨은 쉬어집니다. ㅎㅏㅎㅏㅎㅏ 웃어보는데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보글보글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여과기 돌아가는 소리입니다. 이제 와서 더러운 물을 걸러내 봐야 코이는 이미 사라졌는데. 변기 속으로 도망쳐 버렸는데. 어항을 변기 위에 올려놓은 나를 다시 한번 탓합니다. 어쩌면 코이는 장맛비가 반지하부터 집어삼킬 것을 알고 있던 걸까요. 일본에서 코이들은 다가올 재해를 먼저 알아차린다고 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니 나를 두고 혼자 도망친 코이가 원망스럽습니다.

    귓가에서 한 갈래의 물결이 느껴집니다. 갓난아기의 혀처럼 붉고 연약한 지느러미가 눈앞에 나타납니다. 작은 물고기와 눈이 마주칩니다. 나는 그것을 코이라고 믿습니다. 코이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양쪽에 달린 가슴지느러미는 귀처럼 펄럭이고 뻐끔거리는 입은 나를 향하고 있습니다.

    내가 묻습니다. 언제 돌아온 거니? 왜 돌아온 거야? 내 입에서 소리가 나지 않아도 코이는 답합니다. 뻐끔뻐끔― 코이의 벌어진 입안은 어둡지만 아늑한 집 같습니다. 그 안에서 ?와 ? 같은 글자들이 호드득 튀어나옵니다. 나는 그것들을 읽을 줄 모릅니다.

    무엽은 코이의 입에서 무슨 글자가 튀어나왔다는 것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누나는 한 번씩 받아적을 수 없는 소리를 발음했다. 그때마다 무엽은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한글로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어. 가르치는 의도는 이해가 됐지만 책임질 수 없는 틀린 말이었다. 세상의 모든 문자를 이용한다면 누나의 말도 정확히 받아적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무엽은 물음표 자리에 ャ와 ッ를 입력했다.

    이 글에는 어떤 사진을 올려야 할까. 누나의 이야기라는 점이 중요했지만 사진은 때로 이야기를 완성했다. 사람들은 피드에 뜨는 사진으로 이야기를 읽을지 말지 결정했고, 무엇을 찍을지 고르는 것은 무엽의 몫이었다. 장애인의 하루가 선명하게 연상되는 사진을 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장애는 계정 이름에 쓰인 것으로 충분했다.

    화장실 구석에 놓인 어항이 무엽의 눈에 들어왔다. 변기 수조 위에 올려두던 것을 코이가 사라진 후 바닥으로 옮겨 놓았었다. 무엽이 혼자 샤워하거나 누나를 씻기면서 튄 물들이 복숭아뼈 높이만큼 차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면 물을 비워야 했다. 손이 더러워질 것 같았다. 손잡이를 비틀어 화장실 문을 열었다. 수증기가 무엽과 누나의 침구 위로 쏟아져 나갔다. 창문은 닫혀 있었다.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주차된 차량의 까만 바퀴가 흐릿하게 보였다.

    나가기 전에 창문을 좀 열어놔야겠어. 얕은 창문이라도 종일 열어두면 반지하의 습기를 어느 정도 내보낼 수 있었다. 무엽 혼자 살 때는 그렇게 창문을 계속 열어두었다. 하지만 누나가 무엽의 원룸에 들어온 뒤로는 그럴 수 없었다. 누나의 목소리를 들은 행인이 고개를 숙여 집 안을 들여다보다 무엽과 눈을 마주친 일이 있었다. 그 뒤로 누나가 집에 있을 때는 창문을 끝까지 닫고 잠금장치를 걸었다.

    장마가 오면 외출할 때도 창문을 열 수 없겠지. 누나의 이야기를 들은 뒤로 창문을 볼 때마다 거기서 빗물이 쏟아지는 상상을 했다. 코이가 사라진 일주일 전부터 누나는 씻을 때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했다. 여느 때처럼 무표정한 누나의 얼굴에서 무엽은 두려움과 미안함을 읽었다. 장마철이 되기 전에 물막이판을 설치해 준다던 집주인의 말을 떠올렸다. 집주인과의 문자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저 B02호 학생인데요, 저번에 말씀드린 물막이판 무상 설치 관련해서 연락드렸습니다. 구청에 건물주 동의서만 제출하면 되는데, 언제쯤 작성이 가능하실까요?

    삼사 주 간격으로 비슷한 내용의 문자들이 전송되었고 답장도 비슷했다.

    곧 다시 연락 줄게요.

    무엽이 처음 물막이판 얘기를 꺼낸 것은 작년 가을 전세임대주택 계약서를 쓸 때였다. 집주인은 굳이 필요하겠냐는 반응이었다. 애초에 강북은 침수가 잘 없는 데다, 요 앞 청계천부터 빗물이 쌓이는 덕에 여기까지 물이 범람하진 않을 거라고. 집주인들은 집값이 떨어질까 봐 물막이판 설치를 선호하지 않았다. 물막이판을 침수될 집의 상징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닌데 설치를 안 해주시면 저도 다른 집을 생각해봐야겠네요…… 집주인은 입주가 완료되고 나면 동의서를 작성해 주겠다고 말했고 무엽은 그 말을 믿었다. 서류에 서명부터 받고 믿어야 했는데.

    무엽은 빈 어항 대신 창문 사진을 찍었다. 인스타그램을 켜고 게시물 만들기에서 방금 찍은 사진을 선택했다. 받아적었던 글을 복사하고 붙여넣기했다. 업로드 전 글을 한 번 더 읽어내려갔다. 얕고 길쭉한 창문을 오랜 잠을 자는 할머니로 비유한 점이 걸렸다. 무엽은 할머니를 지우고 사람이라고 입력했다.

    너무 애쓰지 마, 무엽아.

    누나를 쳐다봤다. 누나의 입술이 벌어져 있었다.

    비를 어떻게 막을지는 중요하지 않아. 집을 언제 버릴지가 중요하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누나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입술을 움직이지도, 무엽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자신이 아니면 누나가 방금 말을 한 건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무엽은 생각했다. 누나의 얼굴에서 움직이는 것은 턱으로 흘러내리는 침뿐이었다. 무엽은 왼손 엄지로 그것을 훔친 뒤 욕조 물에 손을 한참 흔들었다.

    장마 전에 이 집을 버리진 못해. 오늘 서류를 부쳐도 새집 입주하는 데 서너 달은 걸릴 테니까.

    무엽은 책상 위에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거기에는 서류 봉투가 있었다. 나갈 때 잊지 않으려고 잘 보이는 곳에 놓았더니 계속 신경이 쓰였다. 누나는 소리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손쉽게 종이를 찢곤 했다.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알지 못해서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엄마와 셋이 살 때는 집안의 모든 책과 종이가 무엽의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와 누나가 자는 큰방의 반 남짓한 방이 엄마의 성경과 신앙서적, 그리고 무엽의 수험서와 소설책들로 채워졌다. 좁아진 방이 싫지만은 않았다. 두꺼워진 벽 안에서 무엽은 방의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저녁을 보냈다. 완성된 무엽의 방이었다.

    밀봉된 서류 봉투 안에는 누나와 자신의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 누나의 장애인등록증 사본, 공공임대주택 신청서 등이 들어 있었다. 서류들은 이 주 전에 준비가 됐지만 누나가 이 집으로 전입한 지 삼 개월이 차도록 기다려야 했다. 그래야 장애인에게 우선 공급되는 서울 내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었다. 어제가 정확히 삼 개월이 되는 날이었지만 일요일이라 서류를 부칠 수 없었다.

    여름이 지나면 무엽과 누나 각자의 방이 생길 것이다. 거실에서는 활동지원사가 앉아서 쉴 수 있게 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활동지원사가 방문하면 무엽이 원룸을 나가야 했다. 엄마뻘의 여성이 누나를 씻기느라 옷이 젖는 모습을 보기 민망했다. 원룸은 세 사람은커녕 두 사람의 거리도 만들어주지 못했다.

    삼 개월 전 엄마가 자기만의 집을 갖게 된 것도 무엽이 해낸 일이었다. 무엽은 엄마의 집으로부터 누나를 떼어내고 자신의 집을 누나에게 내주었다. 자신의 방을 허물어서 엄마의 집을 완성하다니.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이제 누나의 방을 완성해줄 차례다. 지금 무엽의 원룸에서 그 서류 봉투보다 넓은 것은 없었다.

    나 추워.

    누나는 어깨와 목을 부르르 떨었다. 욕조 물이 미지근했다. 무엽은 샤워기를 다시 틀었다.

    이러다 센터 늦겠다. 그만 씻고 나갈 준비 하자.

    물이 살짝 뜨거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누나의 뒷덜미에 뿌렸다. 목에 걸린 얇은 체인을 따라 양 갈래로 흘러내리던 물이 순식간에 누나의 가슴팍 위 금속판에서 만났다. 인식표에 음각으로 패인 누나의 이름과 무엽의 전화번호가 번져 보였다. 수증기가 누나의 몸을 빠르게 감쌌다.

    집 근처 골목은 차가 잘 다니지 않았다. 무엽은 누나의 손을 잡은 채 방금 올린 게시물을 확인했다. 사회복지학과 후배 한 명이 하트를 눌렀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다른 반응은 없었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이차선 도로가 나왔다. 여기서부터 청계천까지는 출근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누나의 손을 좀 더 단단히 쥐었다. 반대쪽 옆구리에 끼운 서류 봉투가 품에서 빠질까 봐 무엽은 신경이 쓰였다.

    낮고 촘촘하게 이어진 건물들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에 넓고 트인 공간이 나왔다. 숯불갈비를 파는 대형식당의 전용 주차 공간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주차된 차는 한 대뿐이었다. 누나와 주간복지센터를 오갈 때마다 무엽은 주차구역 한 칸을 확인했다. 파란색으로 페인트칠 된 직사각형 바닥에 하얀 선으로 휠체어에 앉은 사람이 그려진 칸이었다. 그 앞 식당 벽면에는 장애우전용이라고 적힌 종이가 코팅된 채로 붙어 있었다. 장애인 주차표지판을 사용하지 않고 식당 사장이 임의로 만든 것이었다. 지난 학기에 무엽이 찍은 사진 속 문구에서 음운 하나 바뀌지 않았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유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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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복지실천론 수업의 리포트 대상을 복지시설로 정하지 않은 학생은 무엽뿐이었다. 무엽은 일상에서 사용되는 장애인 차별 표현과 그 대체 표현을 주제로 삼았다. 장애인의 형제로 이십 년 넘게 보고 들은 비장애인의 말만 모아도 리포트가 완성될 듯했다. 그중 하나가 장애우였다.

    장애우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친구가 되어주겠다는 선한 의도가 장애를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 믿는 사람. 친구라는 단어로 불특정한 장애인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힐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좋은 의도가 읽힐수록 무엽은 화가 났다. 숯불갈비집 주차장에 붙어 있던 종이를 촬영해 장애인식개선센터 홈페이지에 제보했다. 센터를 통해 수정이 이뤄진다면 리포트의 결말로 그 성과를 언급할 생각이었다.

    제보 글에는 센터 측의 답글이 달리지 않았고 주차구역의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 식당 사장이 권고를 받고 수정하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대신 무엽에게는 그런 것보다 훨씬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다. 진로 상담으로 교수실을 방문했을 때 교수님은 리포트 잘 읽었다는 말로 상담을 시작했다. 글의 완성도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일상적 경험에 근거한 점이 좋았다며. 그때 무엽은 자기 입으로 누나의 장애를 밝혔다. 대학에 입학하고는 처음이었다. 사회복지학과의 교수님이라면 장애 너머의 것들을 읽어줄 것 같았다. 교수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핸드폰을 켜서 몇 차례 터치하고 문지르다 대뜸 SNS를 하는지 물었다. 하반기에 장애인공단에서 소셜 미디어 콘텐츠 담당 인턴을 채용할 예정인데 자신이 추천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대신 공단에 보여줄 만한 개인 SNS가 있으면 좋겠다고, 장애와 관련 있는 내용이면 더 좋다고 했다.

    근데 무엽 학생은 사회복지사 쪽이 꿈이었던 건 아니에요? 혹시 현장 일을 더 원한다면 여기는 다른 학생한테 얘기할게요.

    교수가 말했다. 무엽의 속내를 다 읽었다는 투로.

    청계천 위를 건너가는 횡단보도에 다다랐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리며 무엽은 누나의 손을 다시 꽉 쥐었다. 청계천 너머로 수족관이 보였다. 네다섯 개의 작은 수족관이 천을 따라 줄을 지었다. 코이를 데려온 수족관은 그 뒷골목에 있었다.

    그 수족관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물고기를 키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무엽이 거기 들어간 것은 단지 누나를 주간보호센터로 데려다주는 길에 청계천 수족관 거리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멀티플렉스에 입점한 아쿠아리움도 아니고, 집이 가깝지 않았다면 이런 데가 있는지도 모를 만한 곳이었다. 무엽은 거기서 찍은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스물한 개의 게시물 중 유일한 릴스 영상이었다. 인스타그램 계정명이 발달장애인 누나와 비장애인 형제의 한집살이가 된 후로 누나의 말을 받아적지 않은 유일한 게시글이기도 했다.

    신호는 아직 빨간불이었다. 무엽은 인스타그램을 켰다. 알림이 뜨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게시물들에 찍힌 하트 수를 다시 세었다. 수족관에서 찍은 릴스에 하트가 가장 많았다. 자신에게만 특별한 장면이 아닌 것 같아 무엽은 낯익은 안도감을 느꼈다. 음소거된 채로 릴스를 재생했다. 영상은 십수 개의 정육면체 어항들이 세 개 층으로 빽빽하게 쌓여 있는 전경에서 시작했다. 각 층에는 먹이를 줄 수 있도록 윗부분이 얇게 뚫려 있어 한데 모아놓고 보면 커다란 원고지처럼 보였다. 파란 시트지를 배경으로 어항마다 설치된 LED 조명이 노랗거나 빨갛거나 하얀, 혹은 그 색들을 모두 가진 열대어들을 비췄다.

    화면이 옆으로 움직이자 커다란 수조 하나가 나타났다. 앞에서 본 어항 두 층을 합친 크기였다. 그 안에는 무엽의 허벅지만 한 회갈색 물고기 한 마리가 가만히 떠 있었다. 다른 어항과 달리 천장이 없이 위가 뚫려 있었다. 앞치마를 한 직원이 파란색 양동이를 든 채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커다란 수조 위에 양동이를 부었다. 손가락 한두 마디 길이의 물고기 이십여 마리가 빗방울처럼 큰 물고기 주변으로 쏟아졌다. 큰 물고기가 입을 한 번 벌릴 때마다 그것들은 두세 마리씩 그 넓고 어두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들의 이름은 코이였다.

    그날 수족관에서 느꼈던 후텁지근하고 축축한 기운이 무엽의 몸을 감쌌다. 누나와 맞잡은 손에서 땀기가 느껴졌다.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다. 무엽과 누나는 오른발을 횡단보도로 내디뎠다.

    청계천로는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이 차로씩 분리되어 있다. 북쪽 차로를 십 분가량 걸으면 누나의 주간보호센터가 나왔다. 누나의 걸음으로는 십오 분 정도 걸리겠지만 그렇게 도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나는 수시로 멈추거나 옆길로 새거나 왔던 길을 돌아가려 했기 때문에 적어도 이십 분은 잡아야 했다.

    비 온다, 무엽아.

    누나가 말했다. 하늘도 보지 않고, 손바닥을 펼쳐 빗방울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황갈색 서류 봉투에 밤색으로 점 하나가 찍혀 있었다. 점 하나가 더 찍혔다. 출발 전 확인한 일기예보 어플에서 비구름은 보지 못했다. 창문을 닫고 나올걸. 무엽은 누나의 손을 놓고 누나가 맨 백팩을 열었다. 누나의 여벌 옷과 속옷, 수건과 물티슈, 약봉지가 있었고 우산은 보이지 않았다. 구름을 보니 소나기나 장맛비는 아닌 듯했다. 이 정도면 우산 없이도 괜찮겠지. 한두 방울씩만 내리다 그칠 거야. 무엽은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서류 봉투를 백팩에 집어넣었다.

    옛날에는 이 위에 고가도로가 있었대.

    누나가 말을 이었다.

    청계천은 아스팔트 아래로 흘러서 보이지도 않았고. 그때라면 비 한 방울 안 맞고 지나다녔을 텐데.

    무엽이 집을 구할 때 부동산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무엽과 누나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다. 누나에게 그 얘기를 해준 적이 있는지 떠올려 봤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누나가 말한 고가도로가 저 위에 보일 것 같았다. 어린 무엽이 까치발을 들고 닿으려 애썼던 엄마 집의 천장처럼, 닿지 않는 거리에서 빈틈없이 단단한 도로가 비를 막아주고 있었다. 무엽의 눈동자에 빗물이 떨어졌다.

    자음은 입안을 붙였다가 떨어뜨리며 내는 소리야. 입술끼리 붙이기도 하고 혀를 입천장에 붙이기도 해. 선생님 입술 보면서 한 번 따라 해볼까? 마 마 마―

    ㅏ ㅏ ㅏ―

    엄마는 선생님 뒤에 멀찍이 서서 내 입을 봅니다. 나도 선생님처럼 힘 있게 입술을 다물었다 벌리며 ㅁ을 뱉어내고 싶지만 내 입에서는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엄마는 난처한 표정을 짓습니다. 선생님은 발달장애 1급에선 흔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모음은 입이 벌어져 있기만 해도 발음되지만 자음은 꾸준한 언어 치료가 필요하다면서요. 그녀는 내게 소리를 계속 내고 있으라 하더니 자신의 손바닥을 내 입술에 두 번 대었다 뗍니다.

    ㅏ 브ㅏ 브ㅏ―

    선생님의 손이 내 입술에서 떨어질 때마다 ㅂ이 튀어나옵니다. ㅂ 하나가 내 침과 함께 선생님 손바닥에 엉겨 붙습니다.

    이게 비읍이야. 혼자 해볼래?

    나는 ㅂ과 비읍과 브ㅏ가 어떻게 같다는 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단지 손바닥과 뽀뽀하는 느낌이 좋아서 내 손으로 브ㅏ브ㅏ를 계속합니다. 혼자서는 아까보다 작은 ㅂ만이 튀어나옵니다. 내가 만든 ㅂ이 보기 싫은지 엄마는 차가운 손수건으로 내 손과 입술을 훔칩니다.

    엄마는 선생님에게 묻습니다. 언어 치료실을 얼마나 다녀야 마마 같은 자음을 발음할 수 있냐고요. 엄마는 다른 장애 아이들은 엄마, 라고 부르는 걸 봤다고 말합니다. 마마가 아니라 ㅁㅁ이 자음이라고 알려주고 싶지만 내 입에서는 침과 모음만 튀어나옵니다. 선생님이 말합니다. 매일 내 입술과 혀를 마사지하라고, 빨대 같은 것을 사용하게 하면 소근육을 발달시킬 수 있다고요. 내가 아니라 엄마를 향해 말합니다. 엄마와 선생님은 커다란 자음으로 발달의 ㅂ이나 보험의 ㅂ을 내뱉습니다. 손바닥으로 아무리 브ㅏ브ㅏ를 해도 그만한 ㅂ이 튀어나오지 않아서 나는 손을 탓하며 손바닥을 깨뭅니다.

    가로수 사이로 정신건강의학과 간판이 보였다. 엄마 집에서 가져온 누나의 약이 다 떨어지고 두 달 전쯤 방문한 병원이었다. 마음지음정신건강의학과의원. 무엽은 누나의 이야기에 병원 간판을 찍어서 올렸다. 그 이상 자음과 모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 사진이었다.

    이십 년 만에 병원이 바뀌자 누나는 출입구 손잡이를 잡고 들어가지 않으려 버텼다. 수납 직원과 간호사가 다가와 손잡이에서 누나의 손을 떼고 접수창구 앞으로 데리고 갔다. 진료는 금세 끝났다. 의사는 몇 가지 질문을 했고 무엽은 답을 했다. 약이 조금 바뀌었지만 무엽은 거기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누나를 제외하면 모두가 그곳에서 익숙해 보였다.

    언어치료를 다니던 시절에 대해 누나가 이야기한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누나는 창문 앞으로 갔다. 팔을 들어 올린 채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며 누나는 이야기했다. 누나의 말을 받아적는 중간중간 무엽은 누나를 올려다봤다. 누나가 ㅂ을 발음할 때마다 ㅂ이 창문 밖으로 튀어 나가는 듯 보였다. 무엽은 대홍수를 떠다니던 방주에서 노아가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장면을 떠올렸다. 비둘기야, 바깥은 이제 살 수 있니? 누나에게 약을 먹여야 하는데 자신도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나한테는 아무런 병도 없는데.

    무엽은 누나의 언어 치료를 항상 따라갔다. 엄마는 항상 누나에게 붙어 있어서 집에 가도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무엇보다 언어 치료실에서 무엽은 발음을 가장 정확하게 하는 아이였다. 선생님이 누나에게 가르친 것을 무엽이 해내면 선생님은 웃었다. 누나를 가르칠 땐 나오지 않는 표정이었다. 엄마는 누나의 치료에 방해된다며 무엽의 입을 막았지만, 언어치료가 계속 연장되면서는 어느샌가 무엽을 막지 않았다. 누나는 여전히 자음 하나 발음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엽은 자신을 보는 엄마의 눈빛에서 안도감을 읽었다. 넌, 누나랑 다르구나.

    집에 오면 엄마는 누나에게 배변 훈련, 양말 신기, 손 씻기 등의 자조 기술들을 가르쳤다. 무엽은 네 살이 되고부터 엄마와 함께 누나를 가르쳤다. 여섯 살이 되고는 혼자서도 누나를 가르칠 수 있었다. 어른들은 착한 아들 하나가 자식 둘보다 낫다며 누나가 있는 앞에서 무엽을 추켜세웠다. 그러다 중학생이 돼서는 누나를 챙길 수 있는 시간이 줄었고 칭찬을 들을 만한 일도 없어졌다. 꼼꼼한 성격 덕에 우수한 편이었던 학업도 조금씩 뒤처졌다. 국어 수업에서 자음의 조음 원리를 배울 때 무엽은 선생님이 설명하기도 전에 짝꿍에게 가르쳐줬다.

    ㄱ이랑 ㄴ이 혀가 구부러지는 모양인 거 알아? 그 상태로 혀를 떨어뜨리면서 소리가 나는 거야.

    누가 발음을 그렇게 배워서 해. 듣다 보면 저절로 되는 거지.

    짝꿍이 빈정대자 무엽은 선생님한테도 그렇게 말해보라고 받아쳤다. 이십 년을 듣고도 자음 하나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친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무엽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선생님은 무엽의 설명과 다른 사실을 가르쳤다. 자음이 받침에 들어갈 땐 혀나 입술을 붙인 상태로 발음이 끝난다는 것. 무엽― 두 입술이 떨어지며 시작했다가 닫히며 끝나는 자신의 이름이 좋았다. 입안이 하나의 완결된 방이 된 것 같았다.

    누나의 손은 조금씩 축축해졌다. 땀인지 빗물인지 그 둘이 섞였는지 알 수 없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찝찝함이 온몸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누나의 손을 잡고 있어도 외로웠고 동시에 더 외로워지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느라 무엽은 누나가 자신의 손을 뿌리친 것을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무엽이 놓아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누나는 청계천 난간 아래로 난 나무 계단을 쿵쿵 뛰어 내려갔다. 무엽도 나무 계단을 쿵쿵 내려갔다. 네 개의 발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계단 아래는 청계천 산책로였다. 평일 아침이라 가볍게 조깅하는 사람 몇이 보일 뿐 누나처럼 온몸에 힘을 주며 뛰는 사람은 없었다. 청계천은 푸르죽죽한 색으로 하늘을 비추며 느릿느릿 흘렀고 네모난 돌들이 제방으로 이어지며 빈틈없이 물을 막고 있었다. 누나는 그 돌 하나에 서서 뒤를 돌아봤다. 무엽의 손이 누나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풍덩― 이라기에는 물이 너무 얕았다. 첨벙― 누나의 두 발이 청계천에 들어갔다. 물방울이 무엽의 티셔츠까지 튀어 올랐다. 누나는 신발도 양말도 벗지 않은 채였다. 신발이 클로그인 게 다행이었다. 물기만 털고 신기면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양말 없이 맨발로 돌아다니는 것도 큰일은 아니었다. 누나가 멘 백팩에 물이 잔뜩 튄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누나가 물살을 가르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무엽은 재빨리 누나에게서 백팩을 벗겼다. 누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지퍼를 여니 바닥에 깔린 누나의 옷과 수건 덕분에 서류 봉투에는 물이 묻지 않았다. 무엽은 수건을 꺼내 자신의 옷에 튄 물자국들을 닦았다.

    누나의 목소리와 박수 소리가 들렸다. 둘이 섞이면서 받아적을 수 없는 소리가 되었다. 누나는 청계천 한가운데서 먼 곳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누나의 모음 사이로 ㅎ이 희미하게 들렸다. 누나의 시선을 따라 물이 흘러가는 방향을 봤다. 누나의 노란색 클로그 한 짝이 느리게 떠밀려가고 있었다.

    무엽이 물에 들어가서 조금만 쫓으면 집을 수 있을 속도였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엽은 왜 몸이 움직이지 않는지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놓치면 정말 멀어질 수 있는 쪽은 누나지, 다시 살 수 있는 신발 한 짝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차라리 신발을 쫓고 싶어졌다. 저 신발처럼 달아나고 싶어졌다. 청계천에서 중랑천으로, 중랑천에서 한강으로, 한강에서 서해로, 영영.

    사방이 조용해졌다. 무엽은 주변을 돌아봤다. 산책로를 걷거나 뛰던 사람 몇이 누나를, 노란 클로그 한 짝을, 무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엽의 옆을 지나던 중년 여성 한 명이 무엽을 힐끔거리며 빠르게 멀어져갔다. 누나 곁에서 수없이 겪어본 시선인데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생 때 여름성경학교를 가서 느꼈던 기분. 그땐 누나가 없었다.

    둘째 날 낮에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중이었다. 초등학생 치고도 키가 작았던 무엽은 계곡의 물살을 맨발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발바닥에서 울퉁불퉁한 돌이 느껴졌고 발가락 사이로 흙이 빠져나갔다. 수위가 분명 허리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 발바닥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더니 코와 입과 귀로 물이 마구 들어왔다. 맑았던 하늘이 푸르죽죽한 계곡물에 휩싸여 점차 흐려졌다. 죽기 살기로 손을 휘저었다. 미끈한 팔 하나가 잡혔다. 그걸 잡고 힘겹게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물을 토했다. 그 팔의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한 번도 얘기해 본 적 없는, 무섭기로 소문난 키 큰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그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얘가 내 팔을 왜 만지지? 주변에는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들도 있었는데 모두 비슷한 표정이었다. 쟤는 저기서 뭐하지? 집이 물에 잠기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물이 무서운 사람은 누나가 아니라 나였을까. 누나는 두 손을 청계천에 담갔다 건지길 반복했다. 무언가 잡으려는 듯. 무엽도 물속을 내려다봤다. 누나의 종아리만 한 코이 예닐곱 마리가 종횡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산란기가 지나서인지 조금 야위어 보였다. 수족관 주인은 코이의 산란기 직후인 오뉴월에만 그 새끼들을 대형어의 먹이로 지급한다고 했다. 무엽은 새끼 코이들을 왜 성체까지 기르지 않는지 물었다.

    얘네는 한 번 산란하면 십만 마리를 낳아요, 십만 마리를. 바다에 풀어줄 것도 아니고 걔네를 다 기를 공간이 있겠어요? 발색 좋은 놈만 골라내고 나머지는 폐기하거나 사료로 쓰는 거죠.

    치어 한 마리 값을 묻자 수족관 주인은 오십 마리에 만 원이라며 한 마리씩은 팔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엽이 플라스틱 어항과 여과기를 구매한다고 했고 주인은 코이 한 마리 값을 받지 않고 그냥 주었다.

    그 아저씨는 왜 값을 받지 않았을까. 나는 코이가 담긴 어항을 왜 변기 위에 올려놨을까. 거기 살기 싫으면 언제든 변기 물에 떨어져도 된다는 듯이. 청계천을 헤엄치던 코이 한 마리가 무엽을 향해 입을 뻐끔뻐끔 벌렸다. 살기 위해 벌리는 그 입술로부터 무엽은 기어코 대답을 들으려 했다. 나는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헤엄쳐 왔어. 그새 이렇게 다 커버렸어.

    한두 방울씩 내리던 비는 이제 내리지 않았다. 누나는 왼발에 아무것도 신지 않고도 잘 걸었다. 주간보호센터는 뛰어가도 지각이었다. 그보다 서류 봉투를 어서 부치고 싶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양말 두 짝을 손에 든 채로 우체국의 위치를 검색했다. 천변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청계천을 뒤로하고 오래된 두 건물 사이로 난 보행자 우선도로에 들어섰다.

    발이 무거웠다. 내가 물에 빠진 것도 아닌데. 나는 지금 어딘가와 멀어지고 어딘가와 가까워지고 있다. 어딘가가 나로부터 멀어지고 어딘가는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누나가 신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났다. 맨발 쪽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누나는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었다. 청계천에 발을 담그고 내뱉은 모음은 말이 아니었다. 누나의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손수건을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오른쪽 허벅다리가 만져졌다. 조금 얇아졌나. 그리고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다.

    여기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교회가 왼편에 서 있었다. 울긋불긋한 벽돌 사이로 줄눈이 번져 있는 작고 오래된 교회였다. 여러 나라의 자음과 모음을 합쳐서 지은 것처럼 보였다. 멜로디는 그 사이를 뚫고 흘러나왔다. 누군가 피아노를 치는 중인 듯했다. 월요일 아침에 누가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는 걸까. 분명 많이 들었던 찬양인데 가사가 기억나지 않아 답답했다. 왜 이런 걸로 이렇게까지 답답한 거지.

    몸이 움직인 쪽은 누나였다. 옆길로 샐 때면 언제나 손을 뿌리치던 누나가 내 손을 놓지 않고 교회 입구로 향했다. 누나가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는 것만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누나가 손잡이도 잡지 않고 유리문을 밀어버렸다. 문이 열렸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누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피아노 소리가 위에서 들렸다. 누나의 몸이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했다. 손을 놓아주었다. 누나는 일 층이 물에 잠기기라도 할 것처럼 층계를 두 칸씩 뛰어 올라갔다. 클로그 한 짝에서만 나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울려 퍼졌다. 누나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누나도 이 찬양을 기억하는 걸까? 하지만 누나와 함께 예배를 드린 기억은 없다. 나는 언제나 엄마와 단둘이 대예배실에서 예배를 드렸다. 같은 시간에 누나는 장애인 부서에서 예배를 드렸다. 장애―를 막을 장, 거리낄 애가 아니라 길 장, 사랑 애, 긴사랑―이라고 부르는 부서였다. 나는 그 호칭이 싫었다. 그 사랑은 누구에게 긴 것이냐고 묻고 싶었다. 일주일에 누나와 백 시간은 붙어 있는 엄마가 그 표현을 듣지 않길 바랐다. 장애―라는 말보다 긴사랑, 이라는 단어가 더 꽉 막힌 느낌이었다.

    누나의 손을 놓고도 발이 여전히 무거웠다. 계단 한 칸씩 발을 내디뎠다. 좁은 계단참에 이르러 잠시 멈춰섰다. 층고가 이 층 천장에 맞춰져 있어 그 좁고 높은 것이 마냥 사람 같았다. 벽에 걸린 게시판에는 성전건축헌금현황이나 성경으로돌아가자 같은 제목의 종이들이 압정에 꽂힌 채 매달려 있었다. 게시판 옆으로 테두리가 얇은 액자에 담긴 성화가 눈에 들어왔다.

    Rogier van der Weyden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중앙에서 눈을 감은 예수가 십자가로부터 느릿느릿 내려지고 있었다. 그것만 보였더라면 사진을 찍지 않고 지나쳤을지도 몰랐다. 예수가 내려지는 아래로 작고 푸른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한 여인이 입은 파란색 원피스였다. 옆에 있는 예수와 같은 표정 같은 자세를 한 그 여인은 실신한 것인지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예수는 그녀의 파란 원피스 속으로 풍덩 빠질 듯이 보였다.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십자가에 달릴 그리스도임을 깨달았던 순간처럼. 그는 지금 이 순간처럼 십자가에서 내려질 것도 알고 있었을까.

    찰칵― 날카로운 셔터음이 좁은 벽 사이에서 울렸다. 그리고 기억이 났다. 누나와 함께 예배를 드린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누나의 세례식 예배…… 아니 그때 누나는 없었다. 그 세례식 일주일 전 처음으로 셋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누나는 그날에 대해서도 내게 말해줬었다. 그 이야기는 어항 속에서 입을 벌린 코이 사진과 함께 업로드되었다. 코이를 집에 데려온 날이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유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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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이번이 하나님께 드리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왜 기도로 말하지 않고 나에게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세례식을 진행하는 건 우리 교회에서 내가 처음이라 합니다. 대답은 엄마가 다 할 테니까 너는 아무 말 말고 있어. 문답이 끝나고 목사님이 내 머리에 물을 뿌리면 예수님과 한 몸을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 장애가 없으신 예수님과 장애가 없는 몸을요. 엄마는 세례문답집에 나온 질문과 대답들을 정확히 외고 또 외웁니다. 예, 믿습니다. 나도 엄마가 하는 대답을 따라합니다. ㅖ, ㅣㅡㅣㅏ. 엄마가 내 입을 막습니다. 오 분만, 오 분만 가만히 있으면 돼.

    세례식 일주일 전 나는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세례식 예행연습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앞자리에 앉아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옆에 앉은 형제자매들은 이번에 같이 세례를 받는 열아홉 살 친구들이라고 합니다. 있는 힘껏 웃어 보이지만 형제자매들은 내 쪽을 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나이 든 엄마와 같이 앉아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나의 앞 순서로 세례를 받는 여자애가 홀로 단상에 오릅니다. 검은 중단발 머리에 교복을 단정히 입고 있습니다. 엄마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나는 중단발을 봅니다. 엄마도 그 중단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합니다. 혼자 나가서도 전도사님이 묻는 질문에 자음 하나, 모음 하나 틀리지 않고 발음해 냅니다.

    이번에는 엄마와 나 둘이서 단상에 오릅니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높은 천장에 부딪히며 자음과 모음으로 산산조각납니다. 나는 양쪽 귀를 막고 신음을 냅니다. 엄마가 내 손목을 아플 정도로 쥐며 말합니다. 오 분만 참아, 제발. 전도사님은 중단발에게 했던 질문을 나에게 건넵니다. 엄마가 마이크에 대고 답합니다. 예, 믿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이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나는 더 크게 대답해 버립니다. ㅖ, ㅣㅡㅣㅏ. 모음들이 마이크로 들어가 스피커에서 커다란 자음들로 튀어나옵니다. 앞에 앉은 중단발부터 저 뒤에 서 있는 어른들까지 모두가 양 손바닥으로 두 귀를 틀어막습니다. 그 모습이 나와 똑같습니다. 엄마는 내 입을 막습니다.

    일주일이 지나 나는 다시 엄마와 예배를 드립니다. 이번에는 예배실 구석 맨 뒷자리에 앉습니다. 지난주에 같이 앉아 있던 형제자매들은 저 멀리 앞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중단발이 단상 위에 올라 목사님의 질문을 받고 답합니다. 예, 믿습니다. 목사님은 손을 물동이에 깊이 담갔다가, 내가 성부와, 찰랑, 성자와, 찰랑, 성령의 이름으로, 찰랑, 세례를 주노라. 중단발의 머리카락에서 물이 흘러내립니다. 아멘, 중단발과 엄마가 동시에 입을 뻐끔거립니다.

    그때부터 엄마는 누나에게서 치유를 지워버렸던 것 같다. 엄마의 기도 소리에서 누나의 이름이 들리지 않았다. 서서히 교회에도 발길을 끊었다. 엄마는 누나에게서 장애마저 지운 듯이 보였다.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갈 곳이 없어 집에만 있던 누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주간보호센터로부터는 먼저 신청한 사람이 많아 얼마나 기다려야 자리가 날지 모르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나마 활동지원사가 한두 시간씩 누나를 씻겨주거나 누나의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갔다. 나는 여전히 서울로 대학을 가기 위해서, 그 집을 벗어나기 위해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수험서를 뒤적였다.

    전염병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모두의 거리가 벌어졌다. 그때 알았다. 이미 손닿지 않는 거리에 있던 사람에게는 더 먼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걸. 활동지원서비스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고 누나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누나의 도전 행동은 점점 심해졌다. 손을 깨물고 벽에 머리를 박고 바닥을 쿵쿵거렸다.

    몇 달간 누나를 봐줬던 활동지원사는 다음 주부터 방문이 힘들겠다며 엄마에게 서류를 건넸다. 장애인 거주시설 신청서였다. 사람들 인식과 달리 이런 곳도 다 나쁜 건 아니니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마저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그 대신 누나의 손에 약을 발라주고 벽과 바닥에 스펀지와 방음재를 덧댔다. 누나에게 머리카락을 뜯기면서.

    누나의 몸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그렇게 옅어지고 멀어졌다.

    스펀지에 머리를 박는 둔탁한 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기도를 계속했다. 응답을 바라는 기도 대신 원망이 입안을 맴돌았다. 실패한 세례식과 그런 결정을 내린 교회를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가 장애를 포기한 것은 누나가 하필 중단발과 함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니까. 세례식 예행 연습에서 처음 본 중단발의 얼굴은 깜짝 놀랄 정도로 누나와 닮아 있었다. 누나에게 장애가 없었더라면 저런 표정이겠구나, 저런 말투였겠구나, 저렇게 교복을 입고 저렇게 걸었겠구나. 중단발이 세례를 받을 때 나는 엄마의 표정을 읽었다. 신은 그날도 그 예배실에 함께 있었겠지. 누나와 중단발이 함께 세례를 받는 것을 최선이라 여겼겠지. 무소부재한 신은 부재하는 신보다 못했다.

    그런데 누나는, 어떻게 그날을 기억할 수 있었을까. 사진이나 영상이라도 본 것처럼, 내가 본 장면을 어떻게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거지. 그날도 예배실에는 엄마와 나뿐이었는데.

    계단 너머에서 종이를 찢는 소리가 났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숨이 가빠왔다. 이 층 예배실의 원목 출입문이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들어간 건지 나온 건지 알 수 없었다. 문을 발칵 열었다. 강대상 위에 걸린 좁고 높은 십자가와 네 개 열로 줄지은 장의자 외에 사람의 형상은 보이지 않았다. 문이 닫히면서 문 너머에 있던 헌금함이 나타났다. 위로는 헌금 봉투와 성경책이 잔뜩 꽂혀 있고 아래에 누나의 백팩이 있었다. 곧장 백팩 지퍼를 열어젖혔다. 서류 봉투를 꺼냈다. 봉투 입구가 열려 있었다. 분명 풀까지 발라서 밀봉했다고 생각했는데 풀을 바른 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다시 뛰었다. 계곡물에 빠졌을 때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십여 장의 종이를 전부 꺼내 찢어진 곳부터 확인했다. 깨끗했다. 그제야 숨이 터져 나왔다. 한두 장만 꺼내서 찢었을지도 몰라. 서류 목록은 이 주 동안 수차례 확인하며 외우고 있었다. 장애인등록증 사본,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등에서 누나의 이름과 내 이름을 확인하며 한 장씩 넘겼다. 내 글씨체로 누나의 이름이 적힌 공공임대주택 특별공급 신청서가 마지막 장이어야 했다.

    마지막 장 뒤에 종이 한 장이 더 있었다. 앞의 종이들보다 조금 더 구겨지고 누런빛을 띤.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 신청서 | 신청인 | 안무엽 | 대상자와의 관계 | 형제 | 엄마는 활동지원사에게 건네받은 신청서를 버리지 않았다. 찢어지지 않도록 내 방 책장에 꽂아두었다. 엄마가 그 종이를 내 방에 둔 순간부터 나는 줄곧 그것이 내게 주어진 숙제로 여겨졌다. 발송될 때까지 대물림되는 숙제. 삼 개월 전 엄마의 집에서 누나를 데리고 나올 때 나는 그 종이를 가방 안쪽 판판한 곳에 집어넣었다.

    공공임대주택 신청과 장애인 거주시설 신청은 준비할 서류가 거의 같았다. 삼 개월이 다 차도록 한곳으로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어느 쪽을 신청해도 나만의 방은 가질 수 있었다. 거실이 딸린 지상의 방인지 장마를 걱정해야 하는 반지하 원룸인지가 달랐다. 누나와 가까운 방인지 멀리 떨어진 방인지도 달랐다. 누나는 무엇을 더 원할까. 언어를 갖지 않은 사람도 무언가를 원하는 것은 할 수 있을까. 기도하는 시간에 눈을 뜨고 손뼉을 치는 사람도,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수군대는지 모르는 사람도, 자신의 형제가 자기 대신 분노해주는지 모르는 사람도.

    익숙했던 멜로디는 처음 듣는 멜로디로 바뀌었다. 신발 한 짝에서만 나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피아노 반주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누나는 어디로 간 걸까. 피아노 치는 사람을 찾아서 무슨 찬양인지 물어봤을까. 강대상 옆에 놓인 피아노의 건반 덮개는 닫혀 있었다. 천장에 달린 스피커가 피아노 반주를 뱉어냈다. 그 소리는 빈 장의자들과 스테인드글라스에 부딪혀 반사되고도 아무 가사를 만들지 않았다. 결국 누나는 멜로디가 돼버렸나.

    장의자 방석 위에 성경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엄마와 예배드릴 때마다 앉던 구석의 맨 뒷자리였다. 성경은 가운데 몇 장이 찢겨나가고 없었다. 누군가 누워 있던 것처럼 방석이 우묵하게 패여 있었다. 모든 장의자가 저 앞의 십자가를 향하고 있으면 맨 뒤에 앉은 사람은 누가 봐주는 걸까. 뒤로는 헌금함과 닫힌 출입문뿐이었다.

    이곳이 내가 준비할 방인 것 같았다. 멜로디가 가사 없이 흘러나오는 방. 빈 장의자들이 누운 채로 사람들을 기다리는 방. 유리 조각이 얽히고설킨 스테인드글라스의 빛깔은 햇살을 받고도 홍수에 잠긴 듯 푸르죽죽했다. 이 방에서 나는 재해를 예측하지 못한 채 남겨진 코이였다. 온 세상이 물로 덮여도 코이에게 그것은 재해가 아닙니다. 그런 문장을 떠올렸지만 핸드폰에 옮겨적지 않았다. 어차피 장마 전선은 매년 오는 중이었다가 매년 떠날 것이다.

    무엽은 손에 쥔 종이들을 내려놓고 한 장을 집어들었다. 거기 적힌 자신의 이름을 봤다. 조용히 이름을 읊조렸다. 발음하기가 불편했다. 기껏 떨어뜨린 입술을 다시 부딪쳐야 했다. 그래도 숨은 쉬어졌다. 종이를 찢어 헌금함에 넣었다. 눈을 뜨고 있었지만 무엽은 오랜만에 기도를 한 기분이었다.

    응답처럼 원목 출입문 밖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스피커가 뱉어내는 멜로디 사이로 무엽은 그 소리를 들었다. 바닥을 치는 불규칙한 소리였다. 숨소리를 죽이고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손잡이가 축축했다. 밖에서 문을 밀칠 수 있도록 몸을 비켜서서 경첩 쪽에 귀를 갖다 대었다. 입을 뻐끔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잘못 들었다 해도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무엽은 그저 손잡이에 손을 얹은 채로 문지방에서 문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김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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