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일본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보도 이미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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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월4일. 17세 여고생 후루타 준코가 끔찍한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됐다. 하교 중 납치된 준코는 약 40일에 걸친 고문 폭행으로 인해 결국 숨을 거뒀다.
발견 당시 콘크리트 드럼통에 담겨 있던 그의 시신은 온몸에 구타를 당해 까맣게 변한 모습이었다. 수습을 맡은 형사들조차 구토하게 만들 정도로 훼손된 참혹한 상태였다.
일본에서 발생한 역대 최악의 청소년 범죄임에도 15세~18세의 남성 가해자 무리는 소년법 적용을 받아 사형을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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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납치해 집단 강간, 감금시킨 뒤 잔혹한 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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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40일 감금돼있던 미나토 신지의 집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
1988년 11월25일 저녁 8시30분쯤, 일본 사이타마현 미사토시에 있던 주범 미야노 히로시(당시 18세)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후루타 준코를 발견하고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함께 있던 자신의 부하 미나토 신지(17)를 시켜 준코를 넘어트리게 한 뒤 구해주는 척 유인해 호텔로 데려가 강간했다.
히로시는 불량소년 오구라 유즈루(17), 와타나베 야스시(16)를 불러 준코를 집단 성폭행했다. 히로시는 부하 신지의 집 2층에 준코를 감금시키고 다음 날 또 다른 소년 두 명을 데려와 준코를 성폭행할 것을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준코가 저항하며 지른 소리에 신지의 부모가 2층으로 올라왔지만, 아들의 평소 폭력적인 행실이 두려워 더 개입하지 못하고 방관했다. 현장에 있던 소년들은 화가 났다는 이유로 2시간 동안 준코를 폭행하고 음부에 불을 붙이는 등 만행을 벌였다.
준코는 가해자들의 협박으로 직접 집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가출한 상태이니 실종 신고를 취소하라는 거짓말도 해야 했다. 2주 뒤인 12월6일 신지의 어머니는 준코의 집에 전화를 걸고 준코를 귀가시키려 했지만, 아들에게 들통나 폭행을 당했다.
다음날 준코는 용기를 내 탈출을 시도했다. 몰래 경찰에 신고했으나 가해자 무리에게 들키고 말았다. 경찰이 다시 연락오자 "여동생의 장난전화"라고 얼버무린 소년들은 준코에게 이전보다 더 잔혹한 폭행을 시작했다.
이들은 준코를 나체로 매달아 두고 복부를 구타하거나 관절을 부러뜨리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소년들은 자신들이 준코를 폭행하는 모습을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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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2주 앞두고 주검이 된 여고생…콘크리트 드럼통에 담긴 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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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시신이 담긴 드럼통이 발견된 현장 /사진=산케이신문 홈페이지 캡처 |
이듬해인 1월4일. 주범 히로시는 전날 자신이 마작에서 큰돈을 잃었다는 이유로 탈진해있는 준코를 폭행했다. 이들은 20㎏에 육박하는 아령을 준코의 복부에 떨어뜨리고 반응이 없는 준코를 깨우기 위해 불로 피부를 지지기도 했다.
결국 다음날 준코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소년들은 시신을 보고 당황하기는커녕 깔깔 웃었다.
히로시는 공범들을 불러들인 뒤 이불로 싸 여행 가방에 담긴 준코의 시신을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를 부었다. 이들은 드럼통을 검정 쓰레기봉투에 넣고 테이프로 밀봉한 뒤 도쿄도 고토구 와카스 14호지 해변 공원 정비 현장의 공터에 버리고 달아났다.
이로부터 약 3개월 뒤인 1989년 3월29일, 히로시는 또 다른 19세 여성을 강간한 혐의 등으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우연히 자신의 범행을 실토했다.
담당 형사가 실수로 "너 사람을 죽이면 안 되잖아?"라고 말하자 부하들이 자신의 범행을 실토했다고 착각한 히로시는 사건의 전모를 몽땅 진술했다. 경찰은 현장에 출동해 콘크리트 범벅이 된 드럼통을 발견했다.
드럼통 안에서는 폭행으로 얼굴이 함몰되고 피부가 검게 변한 마른 시신이 나왔다. 수사관들조차 참혹한 모습에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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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범 히로시, 소년법 따라 최고 20년형…공범 2명, 출소 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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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주범과 공범들 /사진=tvN '프리한 19' 방송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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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도 가해자들은 "준코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죽는다는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다"고 말하는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다. 주범 히로시는 "준코는 단지 운이 없어서 바보같이 잡혔던 것뿐"이라며 반성조차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히로시는 일본 소년법 적용에 따라 최고형인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신지의 집에서 준코를 감시하며 만행을 함께한 공범 오구라 유즈루는 징역 10년, 범행에 가담한 미나토 신지와 와타나베 야스시는 징역 5년, 히로시의 지시에 범행에 가담한 나카무라 테츠오와 이하라 코이치는 3~4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밖에도 12명의 공범이 더 있었으나 이들은 살인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에 가담한 이들은 출소 후에도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보였다. 2008년 석방된 히로시는 출소 후 2013년 보이스피싱에 연루됐고 미나토 신지는 2018년 한 남성을 흉기로 수차례 찌르는 범행을 저질렀다.
유즈루는 1999년 출소한 뒤 2004년 6월 한 남성을 감금 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평소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에 대해 "내가 진짜 주범"이라고 떠들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유즈루는 출소 후 2022년 7월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현지 보도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유즈루는 자택에서 신경안정제를 복용 후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그는 변기와 물탱크 사이에 머리가 낀 채로 구토하다 질식사했고 이후 고독사로 발견됐다.
야스시는 다른 수감자들에게 폭행당해 눈과 다리에 장애가 생겼다. 그는 출소 후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마땅한 직장을 갖지 못하고 집에서만 지내다가 2021년 5월 뇌혈관질환으로 사망했다.
마아라 기자 aradazz@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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