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변화는 인력난이 구조화된 국내 정밀 금형 업계 전반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장비 확충이나 인력 충원만으로는 품질 편차와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지면서, 많은 기업이 공정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다.
대구의 정밀 금형 전문 업체 창영정밀㈜도 예외는 아니었다. 회사는 자동차 램프 금형 가공 과정에서 0.4mm 초소형 공구 사용 시 발생하는 잦은 품질 편차와 에러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방식의 한계를 실감했다. 단순히 장비를 교체하는 방식으로는 품질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었고, 공정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하는 시점이 찾아왔다.
창영정밀이 선택한 해법은 ‘디지털 트윈 기반 공정 검증’이었다. 실제 장비가 해석하는 G코드를 가상 환경에서 그대로 구동하고, 장비, 공구, 소재 등 생산 요소를 3D 데이터로 재현해 충돌, 간섭, 과부하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하는 방식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CNC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Vericut(베리컷)의 핵심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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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cut의 다양한 기능 가운데 공정 최적화를 담당하는 Force는 그동안 작업자의 경험에 의존해 보수적으로 설정되던 가공 조건을 물리 기반 데이터로 재정의하는 기술이다. Force는 공구와 소재가 만나는 전 구간의 절삭 부하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장비가 감당할 수 있는 최적의 이송 속도를 계산해 적용한다. NC 프로그램의 경로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과부하가 걸리는 영역에서는 속도를 낮춰 공구 파손을 방지하고, 반대로 부하가 거의 없는 에어컷 구간에서는 이송 속도를 과감히 높여 전체 가공 시간을 줄이는 방식이다. 이러한 정교한 제어를 통해 고정밀 가공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비효율을 제거하고, 생산성 향상, 공구비 같은 고정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Force 기능을 적용한 창영정밀은 하우징 상-하원판의 3축 가공 시간이 각각 약 19%, 20% 단축됐고, 일부 복잡한 공정에서는 30% 이상 단축되는 결과도 확인했다. 시간 절감보다 표면 품질이 더 중요한 5축 옵틱 코어 공정에서는 표면 조도와 코너 잔삭 품질이 뚜렷하게 개선되며 고객사가 요구해 온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보다 안정적으로 충족할 수 있게 됐다. 공구 마모가 줄고 충돌 위험이 감소한 점도 의미가 크다. 전체 공정의 안정성이 높아지면서 불필요한 재작업과 장비 셧다운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창영정밀 사례는 단일 기업의 성과를 넘어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정밀 제조의 경쟁력은 더 많은 장비나 인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정을 얼마나 ‘예측 가능한 시스템으로 전환할 의지가 있는가’에서 갈린다는 점이다. 디지털 트윈 기반 시뮬레이션은 품질 편차와 공정 변수를 사전에 통제해 기업이 안정적인 품질-납기-원가 구조를 스스로 구축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일 뿐, 변화를 선택하는 주체는 결국 기업 자신이다.
창영정밀은 Vericut Force(베리컷 포스)를 5축에서 3축 공정으로 확대 적용하고, 방전가공 시뮬레이션까지 통합하는 방향으로 전 공정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미래 경쟁력을 위해 공정 자체를 지능적으로 재설계하겠다는 명확한 전략적 선택이다.
정밀 금형 산업의 기술 기준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이다. 공정의 복잡성은 증가하고, 납기와 품질 요구는 더욱 엄격해질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요인은 장비 규모나 인력 투입이 아니라, 기술 혁신을 통해 공정의 변수를 체계적으로 제어하고 시스템이 위험 요인을 감지하는 구조를 갖추려는 주도적인 노력에 있다.
결국,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 주도하는 ‘예측 가능한 공정’을 확보하는 것이 고정밀 제조의 새로운 표준이다.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이 표준을 갖춘 기업만이 다가오는 미래를 주도할 수 있다.
김동호 기자 dong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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