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대학교 객원교수 |
최근 국내 언론에 우리나라가 '인공지능(AI) 3위 국가'라는 헤드라인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의 AI 벤치마크 기관 아티피셜 애널리시스(Artificial Analysis)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이 미국, 중국에 이어 AI 3위 국가"라고 언급한 내용이 국내에 보도된 것이다.
기사를 접하는 독자는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우리가 드디어 'AI 3대 강국'이라는 오랜 목표를 달성한 것일까. 그러나 기사의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선 '3위'라는 순위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아티피셜 애널리시스는 개별 AI 모델의 성능을 평가하는 벤치마크 기관이다. 이러한 발표에 Intelligence Index의 '프런티어 모델' 목록에 LG AI연구원의 엑사원(EXAONE), 업스테이지의 솔라 프로(SOLAR PRO), 네이버클라우드의 하이퍼클로바X(HyperCLOVA X) 등 한국 모델이 이름을 올리면서 '프론티어급 AI 모델을 보유한 세 번째 국가'라는 해석이 나온 것이다.
이것이 곧 '국가 AI 경쟁력 종합 3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많은 보도에서 이 맥락이 생략되거나 축소된 채 '3위'라는 숫자만 부각되고 있다.
글로벌 AI 평가 지표는 하나가 아니다. 토터스 글로벌 AI 인덱스에서 한국은 6위, AI 준비도 지수에서는 3위, 스탠퍼드의 AI 활동성 지수에서는 4위권이다. 어떤 지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3위가 될 수도, 6위가 될 수도 있다. '3위'라는 숫자 하나만 떼어내 보도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불완전한 그림을 제시하는 셈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설령 우리가 특정 지표에서 '3위'라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안심할 상황인가. AI 경쟁에서 1, 2위인 미국과 중국은 단순히 한두 계단 앞서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두 나라가 사실상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차이의 본질은 결국 모델 성능이다. GPT, 제미나이, 클로드, 그록, 딥시크, 쿼원 등 글로벌 시장에서 실제로 쓰이는 모델과 성능을 견줄 만한 국내 모델이 아직 없다. 물론 엑사원, 솔라 프로, 하이퍼클로바X 등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일상에서 AI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 작업은 국산 모델로 해야겠다'고 선택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이런 성능 간극은 투자 규모, 인재 풀, 데이터, 컴퓨팅 인프라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스탠퍼드대 AI Index 2025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의 AI 민간 투자액은 1천091억 달러로 중국(93억 달러)의 약 12배, 영국(45억 달러)의 약 24배에 달했다. 주목할 만한 AI 모델 개발 수에서도 미국이 40개, 중국이 15개를 기록했지만, 유럽 전체가 3개에 그쳤다.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으로 앞서 있고, 그 뒤를 영국, 프랑스, 독일, 인도, 캐나다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형국이다.
벨퍼센터 보고서는 냉정하게 지적한다. 미국, 중국, 유럽을 제외하면 어느 국가도 AI 전 영역(Full-Spectrum)에서 의미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여기서 '풀스펙트럼'이란 데이터 수집, 알고리즘 개발, 모델 학습, 컴퓨팅 인프라, 상용화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자국 내에서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뜻한다. 한국은 이 기준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
물론 긍정적인 신호는 있다. 국가대표 AI 프로젝트 1차 평가를 통과한 LG AI연구원, SK텔레콤, 업스테이지 3개 팀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LG AI연구원의 K-EXAONE은 1차 평가에서 13개 벤치마크 중 10개에서 1위를 차지하며, 평균 72점으로 5개 참가팀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아티피셜 애널리시스 Intelligence Index에서도 오픈웨이트 모델 기준 세계 7위에 올랐고, 상위 10위권에 든 비(非) 미국·중국 모델 중 유일했다. 업스테이지의 솔라 프로는 31억 개 파라미터라는 비교적 작은 규모로 프런티어 모델에 이름을 올리며 효율성을 입증했다. 적은 자원으로 선전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아티피셜 애널리시스의 최신 Intelligence Index v4.0 기준으로 1위는 오픈 AI의 GPT-5.2로 50점, 2위는 앤트로픽의 클로드 오퍼스 4.5가 49점, 3위는 구글의 제미나이 3 프로가 48점이다. v4.0은 이전 버전보다 난이도를 대폭 높이고 에이전트 성능, 할루시네이션 측정 등 실제 업무 활용도를 반영한 평가 기준이다.
최고 점수가 50점인 이 척도에서, 한국 모델이 프런티어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과 정상급 성능을 보유한 것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ZDNet 코리아의 전문가 좌담회에서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AI 3위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얘기는 했지만 실제로 3위라고 평가받은 적은 없다. 현재 AI 기술 격차는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으로 기술을 이끌어가는 수준이며, 솔직히 3위 이후부터는 순위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청할 만한 지적이다.
한국이 AI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우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글로벌 수준의 기초 모델 개발 역량, 세계적인 AI 인재, 그리고 AI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다. AI 스타트업 벤처투자 규모에서도 미국, 중국과 큰 차이가 있다. 삼성·SK하이닉스의 반도체 기술과 HBM(고대역폭 메모리)에서의 세계적 경쟁력, 최고 수준의 5G 인프라는 분명한 강점이지만, 그것만으로 AI 종합 경쟁력을 담보할 수는 없다.
다행히 정책적 진전도 있다. 2026년 1월 AI 기본법이 시행되었고, 국가 AI 전략위원회가 출범해 범부처 차원의 지휘 본부 역할을 시작했다. 정부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이것이 아티피셜 애널리시스가 한국을 주목한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AI 경쟁은 마라톤이 아니라 점점 속도가 붙는 스프린트 경주다. 미국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5천억 달러를 투입해 AI 데이터센터를 대규모로 건설하고 있다. 중국은 475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트랜센던스' 프로젝트는 1천억 달러 규모다. 딥시크 같은 효율적인 모델의 등장으로 판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오늘의 순위가 내일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건 'AI 3위'라는 표현에서 거품을 걷어내고, 그 안에 담긴 구체적 의미를 다시 살펴보는 일이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강점을 보이는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 효율적인 LLM 개발, 특정 산업 도메인에 특화된 모델, 고난도 벤치마크에서의 선전 등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문제는 그 강점이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의 성공 사례에만 자원이 과도하게 쏠리고, 생태계 전체가 두텁게 성장하지 못한다면 '3위'는 일시적인 순위일 뿐 구조적인 위상은 되지 못한다.
규제와 거버넌스를 설계할 때도 '우리는 이미 상위권'이라는 자의식보다는 '상위권을 향해 올라가는 중'이라는 인식이 더 건강하다. 세계 최초 수준의 AI 포괄 규제법을 시행한 한국은 지금 전례 없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 실험이 혁신을 막는 족쇄가 될지, 신뢰와 품질을 높이는 안전망이 될지는 앞으로의 미세 조정과 집행에 달려 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자화자찬이 아니라, 시장과 기술 현실에 대한 차가운 피드백이다.
마지막으로, 숫자와 순위의 정치학에 휘둘리지 않는 시민적 감각도 필요하다. '세계 3위'라는 말은 듣기엔 좋지만, 그 안에 어떤 전제가 숨겨져 있는지 질문하는 습관이 있어야 한다.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한 것인지, 다른 지표에서는 우리가 어디쯤 서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숫자가 내 삶과 산업, 일자리, 교육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는지를 함께 묻는 태도 말이다.
'AI 3위 국가'라는 헤드라인은 독자의 시선을 끌 만하다. 하지만 언론의 역할은 단순히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현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맥락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기준에서 3위이고, 어떤 기준에서는 4위 혹은 6위인지, 그리고 1, 2위와의 간극이 어느 정도인지를 함께 전달해야 한다.
숫자 하나에 도취하기보다 우리가 정확히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냉철하게 진단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AI 강국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임기범 인공지능 전문가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대학교(aSSIST) 객원교수 ▲ 현 AI경영학회 상임이사 겸 학술분과 위원장 ▲ ㈜나루데이타 CTO 겸 연구소장 ▲ ㈜컴팩 CIO ▲ 신한 DS 디지털 전략연구소장 역임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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