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의 건강관리 '건(健)테크' (238) 암 환자의 수면
유소영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누우면 잠이 안 옵니다", "자다 깨면 다시 잠들 수가 없어요", "꿈만 계속 꾸다 아침을 맞는 느낌입니다"
진료실에서 암 환자에게 자주 듣는 호소가 바로 '잠'에 대한 이야기다. 암 환자 본인일 수도 있고, 곁에서 돌보는 가족일 수도 있다. 잠을 못 자는 문제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치료 과정과 회복의 질을 좌우한다.
암 환자에게 불면증이 흔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일반 성인의 약 20%, 65세 이상에서는 3명 중 1명이 불면을 겪는다. 하지만 암 환자의 경우 이 비율은 훨씬 높아져, 많게는 절반 이상이 수면 문제를 경험한다. 암의 종류, 병기, 치료 단계와 무관하게 '암을 진단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강력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치료에 대한 불안, 재발에 대한 걱정, 통증이나 오심 같은 신체 증상, 활동량 감소, 우울감과 무력감이 겹치며 수면 리듬을 쉽게 무너뜨린다.
중요한 건, 이게 암 환자의 의지·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예민해서', '마음이 약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암 치료 과정에서 매우 흔하고,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반응이다.
수면은 한 번에 깊게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라, 깊은 수면과 얕은 수면이 반복되는 파동 구조를 가진다. 꿈은 주로 얕은 수면 단계에서 생생하게 기억된다. 깊은 수면에서 깨어나면 오히려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즉 '꿈을 많이 기억한다'는 건 잠을 전혀 못 잤다는 뜻이 아니라, 얕은 수면 단계에서 깨어났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 이를 이해하면 '밤새 하나도 못 잤다'는 불안을 줄이는 데 도움 된다.
잠은 노력해서 억지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수면은 '자고 싶은 힘(수면 압력)'과 '깨어 있으려는 힘(각성 신호)'이 적절히 맞물릴 때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이 리듬을 조절하는 핵심 요소는 △빛 △체온 △호르몬 △활동량이다. 젊을 땐 이 네 가지 요소가 자동으로 잘 맞아떨어지지만, 나이가 들거나 질병을 겪으면 이 균형이 쉽게 흐트러진다. 그래서 불면증 치료의 핵심은 이 리듬을 다시 '정렬'해 주는 데 있다.
불면증 치료는 고혈압·당뇨병 관리와 비슷하다. 생활습관 조절이 기본이고, 필요할 경우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 침대는 '자는 곳'으로만 사용해야 한다. 잠이 안 온 채로 침대에 오래 누워 있는 습관은 불면을 고착화한다. 20분 이상 잠이 오지 않으면 잠시 침대를 벗어나는 게 도움 된다. 기상 시간은 매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전날 잠을 설쳤다고 늦잠으로 보충하려 하면 리듬은 더 깨진다.
낮잠은 15분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 길어진 낮잠은 밤잠을 방해한다. 잠자리에서 스마트폰은 멀리 둬야 한다. 빛과 정보 자극은 뇌를 깨우기 때문이다. 술은 수면을 돕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 잠드는 데는 도움 되는 것처럼 느껴져도, 수면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많은 분이 수면제에 대해 걱정한다. 중독, 내성, 평생 끊지 못할까 하는 불안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한 상황에서, 처방된 용법을 지켜 사용하는 수면제는 치료의 한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임의로 수면제 용량을 늘리거나, 갑자기 끊지 않는 것이다. 수면제는 필요할 때 '지팡이'처럼 사용하는 도구이지,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끊을 때도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해 서서히 조절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건강기능식품이나 해외 직구 수면 제품은 내용을 충분히 확인하고 사용해야 한다. 성분이 불명확하거나, 의약품 성분이 섞여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다.
잠을 못 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망가지는 건 아니다. 하루 이틀, 혹은 며칠 잠을 못 잔다고 해서 암이 재발하거나 면역력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잠에 대한 과도한 걱정은 오히려 불면을 악화한다. 수면의 목표는 '완벽한 숙면'이 아니라, 현재의 몸 상태에서 가능한 가장 안정적인 리듬을 만드는 것이다.
잠은 다시 배울 수 있고, 조정할 수 있다. 혼자서 버티지 말고, 필요할 때는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를 바란다. 불면은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문제다.
외부 기고자 - 유소영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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