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에게 필요한 건 ‘백덤블링’이 아니라 ‘악수’라는 걸 깨닫는 데 20년이 걸렸다. 지난달 상하이 시연장에서 공개된 휴머노이드 ‘모야(Moya)’가 36.5도의 온기가 담긴 손을 내밀었을 때 현장에는 탄성과 비명이 동시에 터졌다고 한다. 공중제비를 도는 로봇이 기술의 정점이라 믿었던 기자에게 이 정교한 온기는 어떤 기계음보다 서늘한 경고장이었다.
현재 국내의 로봇 연구소들은 얼마나 안정적으로 걷는지에 사활을 걸고 있다. 덕분에 하드웨어의 강건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리를 연구할 때 중국은 로봇의 얼굴과 심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기술력 차이가 아니다. 관점의 차이다. 한국이 로봇을 노동 보조 기계로 정의할 때 중국은 인간의 공간을 공유하는 정서적 에이전트로 정의했다.
이 차이는 돈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모야는 약 2억 원의 고가임에도 호텔과 실버케어 시설의 예약 문의가 쏟아진다고 한다. 기술적 완결성보다 인간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원하는 거대 시장을 공략한 덕분이다. 반면 세계적 보행 기술을 가졌다는 국내 모델들은 여전히 연구실을 넘지 못한 채 “어디에 쓰냐”는 시장의 냉담한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국내 로봇 업계 관계자는 뼈아픈 고백을 털어놨다. 정부와 학계의 평가가 계단의 높이, 모터의 정밀도에만 집중된다는 것이다. 정작 사용자가 로봇과 눈을 맞췄을 때 느끼는 안정감이나 인터페이스는 사치 취급을 받기 일쑤라는 설명이다.
이런 공학적 강박은 과거 스마트폰 경쟁의 시행착오를 떠올리게 한다. 하드웨어 사양에 집착하다 아이폰이 던진 사용자 경험(UX)이라는 파도에 휩쓸렸던 그때와 닮아 보이면서다. 그러나 대중은 로봇의 백덤블링에 박수를 치지만 정작 지갑을 여는 것은 내 말을 알아듣고 따뜻한 손을 건네는 로봇 앞일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들도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기계적 완성도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정부 또한 계단 등반 횟수 대신 사용자와 상호작용 성공률을 평가지표에 넣어야 할 시점이다. 로봇의 궁극적 지향점은 인간을 복제한 기계가 아니라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되는 점이기 때문이다.
20년 전 기자가 처음 본 로봇은 차가운 철제 팔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로봇은 36.5도의 체온을 가진 이웃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제 우리 로봇 산업도 ‘어떻게 걷게 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 내일의 기자수첩 주인공은 제자리걸음 중인 강철 다리가 아니라 인간과 눈을 맞추는 로봇이기를 바란다.
[이투데이/임유진 기자 (newjea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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