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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7 (금)

    이슈 게임정책과 업계 현황

    "결정은 같이, 고생은 혼자?" 학운위 심의가 만든 교무실 '눈치게임' [에듀테크. 그리고 학운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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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홍 기자] "선생님, 이 앱 보안성 검토 자료가 어디 있죠? 정보 사이트에 있다고 하셨는데, 우리 학교 양식에 맞는 건 없는데요?"

    "그냥 있는 대로 다 긁어서 내세요. 어차피 예산도 안 나왔는데 일단 다 올려놓고 봐야죠. 나중에 못 쓰게 되면 그때 가서 욕먹더라도 지금은 방법이 없잖아요."

    2026년 2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무실. 새 학기 준비로 분주해야 할 시기지만 교사들의 대화는 수업 준비가 아닌 '서류'에 집중되어 있다. 실제로 책상 위에는 수업 지도안 대신 수십 개의 에듀테크 서비스 이용약관과 개인정보 처리방침이 출력된 종이 뭉치가 쌓여 있다.

    올해 1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학습지원 소프트웨어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 필수 심의 제도 쇼크다. 교육 당국은 학운위 필수 심의 제도가 안전한 디지털 교육 환경 조성을 위해 필수적인 절차라고 강조하지만 막상 이를 실행해야 하는 학교 내부에서는 관리자, 담당 부장, 일반 교사 간의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며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고 있다. 이 짧은 대화 속에는, 학운위 심의를 둘러싼 학교 현장의 '눈치게임'이 그대로 담겨 있다.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다. 단순한 업무량의 증가를 넘어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 구조적 모순이 학교 조직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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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는 넘치는데, 우리 학교용은 없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정보부장을 맡고 있는 15년 차 교사 A씨는 자신을 고독한 번역가라고 칭했다.

    무슨 사연일까? 그는 즉답 대신 모니터를 가리켰다. 교육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제공하는 에듀테크 정보 제공 사이트 '에듀집(eduzip)'과 학교 내부 기안문이 동시에 띄워져 있었다. 그는 "국가 차원에서 제공하는 정보 사이트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정보는 말 그대로 '원석'일 뿐 우리 학교 학운위 심의 안건으로 올릴 수 있는 '가공된 보석'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A씨의 말대로 문제의 핵심은 표준화된 도구의 부재다. 에듀집 등의 사이트에는 각 소프트웨어의 기능과 일반적인 보안 정보가 나열되어 있지만 막상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학교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이 소프트웨어가 우리 학교의 교육과정 성취 기준과 어떻게 매칭되는지' '우리 학교 학생들의 데이터를 제3자에게 제공할 때 어떤 안전장치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학교 맞춤형 보고서기 때문이다.

    A씨는 "예를 들어 특정 AI 코스웨어를 도입하려면 이 프로그램이 중학교 2학년 수학 성취 기준 중 어떤 부분을 보완해 주는지, 서버가 국내에 있는지 해외에 있는지는 물론 데이터 암호화는 어떤 방식인지 일일이 찾아서 학교 양식에 맞춰 다시 타이핑해야 한다"며 "사실상 정보부장은 각기 다른 형식의 에듀테크 기업 기술 명세서를 학운위용 행정 언어로 해독하고 다시 써주는, 일종의 '기술 검토자' 역할까지 떠안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전선으로 향하는 병사의 손에는 무기가 없다. 학교 현장에 기술 검토라는 새로운 역할이 부여되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실무 도구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보부장이나 교무부장 등 소수의 인원이 밤을 새워가며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적는 '고립된 사투'가 2월 내내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대전환을 위한 제도라면서 정작 준비 과정은 가장 아날로그적인 수기 행정으로 이루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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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과 실행의 시차가 만든 '가상 행정'
    행정 절차의 구조적 모순은 현장의 피로도를 가중시키는 또 다른 원인이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예산 확정'과 '심의 완료' 사이의 시차다.

    통상적으로 학교 예산은 3월 학기가 시작된 후 확정된다. 그러나 수업에 당장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3월부터 사용하려면 2월 말에 열리는 학운위에서 심의를 마쳐야 한다. 돈이 얼마나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쇼핑 리스트부터 확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무부장 B씨는 이를 두고 "보이지 않는 돈으로 물건을 사는 '가상 행정'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예산이 넉넉하면 10개를 사고, 부족하면 3개만 사야 하는데, 지금 시스템에서는 일단 10개든 20개든 '혹시 모르니 다 넣고 보자'는 식으로 안건을 올릴 수밖에 없다"면서 "나중에 예산이 남아서 추가로 구매하려고 해도 그때 가서 다시 학운위를 소집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은 결국 안건 폭주로 이어진다. 실제로 취재 중 만난 다수의 교사들은 학교당 평균 30~50개에 달하는 소프트웨어를 한꺼번에 심의 안건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유료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무료 앱, 심지어 교사가 개인적으로 개발한 간단한 도구까지 '혹시 모르니'라는 명분 아래 심의 리스트에 포함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파국이다. 학운위 위원들이 검토해야 할 서류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게 되고 내실 있는 검증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다. B씨는 "수백 페이지짜리 기술 문서를 학부모 위원들이 1~2시간 만에 다 검토한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된다"며 "결국 '선생님들이 알아서 잘하셨겠죠'라며 도장만 찍는 요식행위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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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무실 내 '보이지 않는 벽'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학교 구성원 간의 심리적 거리감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관리자(교장·교감), 중간 관리자(부장 교사), 그리고 일반 교사 사이에는 이 제도를 바라보는 시각, 즉 '온도 차'가 뚜렷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먼저 관리자 그룹의 최우선 가치는 안전과 원칙이다. 당연한 일이다. 교장이나 교감 입장에서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나 민원 발생이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다. 따라서 그들은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쓰지 말라"거나 "확실하게 검증된 것만 올리라"는 보수적인 지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실무를 담당하는 교사들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온다.

    실무를 총괄하는 정보·교무부장은 시간과 싸운다. 3월 2일 개학일에 맞춰 교사들이 수업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하려면 당장 2월 안에 모든 행정 절차를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관리자의 엄격한 기준을 맞추면서 일반 교사들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하여 서류를 꾸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들은 관리자와 일반 교사 사이에서 '행정적 샌드위치'가 되어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반면 일반 교사들의 반응은 포기 혹은 회귀로 나타나고 있다. 복잡한 절차에 질려버린 교사들이 혁신적인 에듀테크 도입을 스스로 포기하는 현상이다. 6학년 담임을 맡은 C교사는 "작년까지 잘 쓰던 영어 단어 학습 앱이 있는데 올해부터는 개인정보 처리 방침을 분석해서 보고서를 내라기에 그냥 안 쓰기로 했다"며 "수업 준비하기도 바쁜데 내가 왜 앱 개발사의 약관까지 분석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옛날처럼 칠판 판서와 종이 학습지로 수업하는 게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모두가 원하지 않는 결과. 디지털 기반 교육 혁신을 외치는 교육 당국의 목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다. 행정의 복잡함이 오히려 교실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디지털 회귀'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나아가 교육 본연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매우 위험한 순간이다.

    설상가상으로 교사 집단 내부에서도 미묘한 갈등 기류가 감지된다. 제도 변화를 미리 숙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적극파'와, 관행대로 버티려는 '지켜보자파' 사이의 긴장감이다.

    우선 얼리어답터 성향의 젊은 교사들은 자신이 수업에 사용하고 싶은 다양한 도구를 리스트업해 정보부장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행정 업무에 지친 부장 교사가 "너무 많다. 꼭 필요한 것 2~3개만 추려라"라고 반려할 경우 갈등이 발생한다. 반대로 일부 교사들은 "설마 교육청이 진짜로 못 쓰게 하겠어?"라며 안일하게 대응하다가, 막상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야 "왜 내가 쓰려던 프로그램이 차단됐느냐"며 항의하는 경우도 예상된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회의 시간에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에듀테크 활용 능력이 교사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심의 통과 여부가 교사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교사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책임의 소재'다. 물론 학운위는 합의제 의결 기구다. 이론적으로는 학운위에서 통과된 사항에 대한 책임은 위원회가 공동으로 진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정서는 다르다. 만약 심의를 통과한 소프트웨어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거나, 부적절한 콘텐츠가 노출되는 사고가 터졌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학부모와 사회가 "학운위의 공동 책임"이라며 넘어갈까?

    현장의 교사들은 "결국 1차 자료를 조사하고 취합한 담당 교사에게 화살이 돌아올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심의 과정에서 해당 소프트웨어의 위험성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실무자의 과실'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함께 결정했지만, 책임은 혼자 져야 한다" 학교 현장에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도적으로는 시스템에 의한 검증을 표방하지만 실제 작동 방식은 여전히 개인의 희생과 무한 책임을 담보로 하고 있다.

    물론 학운위 심의 제도는 분명 필요한 절차다. 에듀테크가 공교육의 필수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방식은 그 관문의 문턱을 넘기도 전에 교사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정책은 마련되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도구와 가이드라인은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관리자는 불안하고 담당자는 과로하며, 교사는 체념하는 지금의 구조로는 디지털 교육 혁신의 안착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정은 함께하지만, 고생은 실무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책임 구조의 불균형을 해소할 시스템적 대안이 시급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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