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송치 성공방정식
'불송치 송부' 4년새 53% 급증
경찰단계에서 사건 향방 결정
경찰 업무 부하량 임계치 넘어
로펌 경찰팀, 24시간 대응 체제
수사 구조·흐름 꿰뚫는 경찰 출신
사안별 적절한 대응 전략 구축
중수청 출범시 역할 더 커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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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충분하여 혐의 없다."
김현수씨(33세·가명)가 지난해 10월 중순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불송치 결정문은 이 문장으로 끝났다. 2년 만에 받아든 결과였다. 김씨는 "무죄 판결문을 받은 것 같았다"고 했다.
사건은 2023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퇴근 무렵 경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른바 '제2의 n번방'으로 불린 '윤드로저(돈다발남) 사건' 관련 불법촬영물에 김씨의 IP 계정이 포착됐다는 내용이었다. 통신매체이용음란 혐의로 출석 통보까지 받았다. 숨이 턱 막혔다. 김씨는 해당 영상을 구입하거나 내려받은 적도, 소지하거나 시청한 적도 없었다.
"121.XXX.XXX.XXX. 이거, 본인 IP주소 맞죠." 보름 뒤 출석한 경찰서에서 수사관이 물었다. 경찰이 제시한 것은 불법촬영물 링크가 전송된 이메일 수신자의 IP 주소였다. 김씨 노트북 계정과 일치했다. 동행한 로펌 경찰팀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IP주소를 변경 불가능한 '지문'처럼 보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변호인은 김씨의 IP가 해킹되거나 위·변조됐을 가능성을 조목조목 짚었다. 해외 IP 변경 프로그램 업체의 회신 자료도 제시했다. 해당 IP가 위·변조됐을 개연성이 있다는 기록이었다. 또 김씨 퇴근 동선을 파악해 CCTV상 근무 중이었다는 알리바이도 입증했다. CCTV의 보존 기한이 통상 30일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해 수임 즉시 현장에 나가 증거를 선제적으로 확보한 덕이었다. 결국 사건은 불송치로 종결됐다.
김씨를 대리한 경찰 출신 변호사는 "사건이 내사 단계에서 종결되면 수사 이력이 남지 않지만, 입건되면 기록이 남는다"며 "입건 전 종결을 목표로 전략을 세운다"고 했다. 그는 "내사에서 입건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수사관의 심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알기 때문에 그에 맞는 대응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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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사례처럼 사건의 향방이 경찰 단계에서 사실상 결정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12일 대검찰청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경찰이 수사 후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사건을 종결하는 '불송치 송부 사건'은 2021년 38만9132건에서 지난해 59만6403건으로 4년 새 53.3% 급증했다. 형사 사건의 첫 관문이자 사건의 최종 방향을 좌우하는 권한이 경찰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경찰의 업무 부하량은 임계치를 넘어섰다. 지난해 8월 기준 경찰 수사관 1인당 보유 사건 수는 평균 27.6건에 달했다. 주요 로펌들이 경찰 전관을 전면에 내세운 '경찰 수사 대응팀'을 강화하는 이유다.
로펌 경찰팀은 24시간 대응 체제를 갖추고 있다. 형사 사건에서 핵심 증거로 꼽히는 블랙박스 영상 확보를 위해 차주를 설득하고, 엘리베이터 CCTV 각도를 확인하거나 관리사무소를 방문하는 일도 직접 한다. 서울청 출신 변호사는 "수사관은 1인당 50건 이상을 동시에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며 "민원이 남지 않도록 결론의 근거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지점에 맞춰 대응 전략을 세워나간다"고 했다.
수사관 앞에서 진술하기 전에도 여러 시나리오를 설정하기도 한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의뢰인의 경우 '당사자 진술 원칙'만을 고수하지 않는다. 보조진술이나 신뢰관계인 동석의 취지를 근거로 진술 구조를 재설계한다. 변호인이 쟁점을 재구성해 설명하고, 의뢰인이 이를 확인한 뒤 수사관이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진술도 전략을 짠다. 예상 질문을 사전에 정리해 대응 논리를 점검하는 일도 경찰팀의 역할이다.
반대로 송치 가능성이 낮은 사안에서 무리한 다툼을 고집하는 경우에는 고소를 취하하도록 유도하는 일도 한다. 수사관의 예상 질문을 뽑아 의뢰인에게 직접 추궁하는 시연을 하면서, 사건 송치가 쉽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수사 구조와 흐름을 꿰뚫는 경찰 출신이라 가능한 접근이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출범하면 이 같은 로펌 경찰팀의 수사 대응 전략은 한층 더 고도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교과서적 법리보다 실제 압수수색을 지휘하고 피의자를 신문해 본 경험 때문에 로펌이 경찰 전관을 선호하는 것"이라며 "중수청은 수사우선권을 포함해 종결권을 가질 텐데 앞으로 이에 대응하기 위한 경찰팀의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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