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 바흐를 찾는 이유
30개 변주·아리아의 정서적 평온
반복과 순환이 주는 강한 안정감
현대인들이 재발견한 예술의 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1741년, 바흐가 작곡한 건반 작품으로 아리아와 30개의 변주로 구성된 대작이다. 한 백작이 불면증으로 고통받아 바흐에게 잠을 부르는 음악을 의뢰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바흐가 교육적, 예술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작품 안에는 복잡한 기법, 정교한 구성 그리고 구조적 대칭성이 이어지며 단순한 수면 음악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치밀하고 화려하기 때문이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현대인이 이 음악을 잠들기 좋은 곡으로 느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핵심은 바로 반복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리아로 시작해 30개의 변주를 지나 다시 아리아로 되돌아오는, 일종의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각각 변주의 성격이 너무 달라 수면 음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선율은 듣는 사람에게 강한 안정감을 준다.
반복되는 음악은 예측 가능성을 만들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역할도 한다. 우리는 익숙한 패턴을 만나면 긴장을 풀고, 정신의 속도를 늦추는 경향이 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경우엔 처음 등장하는 아리아가 간직하고 있는 따뜻한 선율은 변주가 아무리 화려해도 그 바탕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추처럼 작용한다. 마음이 불안할수록 우리는 반복되는 안정된 리듬에 기대려 하는데, 이 작품은 그 감각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
특히 잠들기 직전의 마음은 작은 소리 하나에도 깜짝 놀랄 만큼 예민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정한 반복 안에서는 금방 편안해진다. 요즘 많은 사람이 잠들기 전에 백색소음이나 수면 음악을 틀어놓는 이유기도 하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여러 변주는 성격은 조금씩 달라도, 모두 처음의 아리아에서 뻗어 나온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음악을 듣다 보면 새로운 느낌과 익숙한 안정감이 번갈아 찾아오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너무 단순해 지루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복잡해서 집중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은근한 균형 덕분에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잠들 준비를 하듯 잔잔해지는 것이다.
또한 반복 구조 덕분에 청자는 음악을 의식적으로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같은 선율이 계속 돌아오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음악이 배경처럼 흐르며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루 동안 흩어진 감정들이 천천히 정돈되면서 졸음이 찾아온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돌아오는 아리아는 마치 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듯한 감정을 준다. 이런 순환적 흐름은 ‘오늘이 끝났다’라는 편안함을 제공하며 자연스럽게 잠에 들게 한다. 이는 바흐가 의도한 예술적 변주곡이라는 성격과는 별개로, 지금의 현대인들이 이 음악에서 발견한 새로운 기능이다.
이처럼 바흐가 이 음악을 만든 이유와 오늘 우리가 이 음악을 듣는 이유와는 다르다. 하지만 예술의 힘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하나의 작품은 작곡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더 이상 단일한 목적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를 지나며 새로운 의미가 덧붙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을 받아들이며, 같은 작품은 전혀 다른 경험으로 다시 태어난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역시 마찬가지다. 화려한 변주와 구조적 정교함이라는 본래의 가치와는 별개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조용히 마음을 정돈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게 하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지금도 많은 사람의 밤을 부드럽게 감싸며, 복잡한 하루의 마지막 페이지를 고요하고 따뜻하게 마무리해 주는 특별한 동반자가 되어 준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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