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독자적 성과 입증 책임은 원고에게”
하루헛개·플랫폼 등 소송 줄줄이 기각
부정경쟁행위 기준 엄격하게 법리 적용
법조계 “모방 허용 신호로 읽힐 가능성”
법원이 최근 식음료 용기와 포장 방식, 상품 이름이 자사의 상품과 유사하다며 경쟁사에 제기한 부정경쟁행위 청구를 잇달아 기각하고 있다. 유사성만으로는 위법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독자적 성과에 대한 입증 책임이 원고에게 있다는 법리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판례가 쌓일수록 “이 정도는 허용된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며 미투(Me-too) 상품에 대한 제어가 한층 어려워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5-1부(재판장 송혜정)는 지난해 11월 주식회사 하루헛개가 A씨 등 4명을 상대로 제기한 부정경쟁행위금지 등 청구의 소에서 항소를 기각했다. 하루헛개는 헛개수 용기와 포장, 홍보 문구 등을 A씨 등이 유사한 형태로 제작해 직접 판매했다며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둥근 원통형 병과 펌프형 디스펜서, 검정색 메인 컬러 등이 업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요소로 공공영역에 속한다고 판단해 원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티에이치케이컴퍼니가 다온테크를 상대로 제기한 부정경쟁행위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에서 항소기각 판결이 선고됐다. 복지용구 통합 플랫폼을 운영하던 티에이치케이컴퍼니는 유사 플랫폼을 개발·운영한 다온테크가 자신의 성과를 침해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플랫폼의 핵심 기능들이 공공영역을 벗어난 독자적 성과로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들 판결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된 것은 부정경쟁방지법상 부정경쟁행위를 규정한 파목 조항이다. 해당 조항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한다. 이는 단순한 모방이나 유사성을 넘어, 타인의 성과에 무임승차했는지 여부가 핵심 판단 기준이 된다는 의미다.
부정경쟁행위나 영업비밀은 상표나 특허처럼 등록을 통해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가 아니다. 이에 따라 법원 입장에서는 공공에 이미 존재하는 요소를 특정 기업에 독점시킬 수 있는지 여부를 엄격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중소기업처럼 비밀 관리나 식별력 축적을 통한 입증 자료를 사전에 준비하지 못한 경우에는 승소가 더욱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엄격한 법리 적용이 미투 상품을 제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이어진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식품 업계의 패키지·용기 분쟁에서 그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평가다. 실제로 서울우유와 남양유업 사이의 법적 분쟁에서도 1·2심 재판부는 ‘아침에’라는 제품명이 식음료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에 해당해 식별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업계에서도 이처럼 공공영역 판단의 문턱이 높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패키지의 색상이나 글씨체, 이미지 일부가 유사하더라도 몇 가지 요소만 달라지면 전혀 다른 제품으로 인식된다는 판단이 많다”며 “미투 상품임을 입증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하거나 보호하기 위한 소송이지만,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울러 대기업의 경우 소송 비용이 전체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지만, 중소·신생 업체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는 “국내에서는 패키지 보호 기준이 전반적으로 약한 편이고, 법원 역시 패키지를 공공영역에 속하는 요소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그는 또 “최근 빙그레와 서주의 ‘메로나’ 포장 분쟁처럼 많이 팔린 검증된 제품의 경우 성과로 평가해 이를 모용하는 행위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영역 판단이 ‘효율성’ 기준에 따라 달리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효율성과 직접적 관련성이 떨어지는 제품 패키지나 용기를 공공영역으로 일괄 처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대형 로펌 변호사는 “패키지처럼 효율성과 무관한 영역에서 제품이 많이 팔렸다면 이는 모방의 신호로 볼 수 있다”며 “이 경우에는 성과를 보호해 따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임종현 기자 s4our@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