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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6 (목)

    [K-VIBE] 이은준의 AI 톺아보기…슈퍼볼 광고판을 점령한 AI-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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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연합뉴스

    이은준 경일대 교수
    [본인 제공]



    지난 8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60회 슈퍼볼(Super Bowl LX)은 경기 결과보다 광고판이 더 오래 회자됐다. 전통적으로 슈퍼볼은 '가장 비싼 30초'로 불리는 광고 슬롯, 그리고 그 시간을 차지하기 위한 글로벌 브랜드의 각축장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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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NFL 슈퍼볼
    [유튜브 캡처]



    맥주, 자동차, 패스트푸드, 빅테크가 번갈아 가며 시대의 욕망을 대변해 왔다. 그런데 2026년, 이 상징적인 광고판을 점령한 것은 맥주도, 트럭도 아닌 인공지능(AI)이었다.

    NFL(National Football League, 미국 프로미식축구 협회) 챔피언십 경기 자체는 시애틀 시호크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맞대결로 펼쳐졌다. 킥오프는 동부 시간 기준 저녁 6시 30분, 경기장에는 7만~8만 명의 관중이 들어찼고, 미국 내에서만 1억 명이 넘는 시청자가 TV와 스트리밍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단일 스포츠 이벤트로는 세계 최대 규모, '미국의 비공식 명절'이라 불리는 그 무대에, 2026년에는 유난히 많은 AI 관련 광고가 몰렸다.

    시청자 입장에서 화면은 분명 이전과 달랐다. 경기 시작 전, TV 앞에 앉은 우리는 익숙한 흐름을 예상했다. 스타 쿼터백이 등장하는 맥주 광고, 험지와 고속도로를 달리는 픽업트럭, 히트 팝송에 맞춘 패스트푸드와 스낵 광고. 그러나 첫 번째 광고 블록에서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AI'라는 세 글자였다. 로고나 기술 소개가 아니었다.

    광고 속 AI는 제품 기능을 나열하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이 AI는 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누구의 편에 서 있을까?"

    "어디까지 너의 삶에 개입해도 괜찮을까?"

    광고는 대답보다 질문으로 시작했다. AI 스피커나 챗봇이 등장해 농담을 건네고 가족의 대화를 도와주는 장면이 이어지다가도, 곧바로 '얼마나 맡길 수 있는가?'는 불편한 물음을 던졌다. 웃음과 유머, 감동과 불안을 빠르게 오가며, AI를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존재'로 전면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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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슈퍼볼 맥주 광고
    [유튜브 캡처]



    이날 슈퍼볼 광고의 특징은 AI 기업이 몇 개 더 나왔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구글, 아마존, 메타 같은 빅테크는 물론, 챗GPT·클로드로 대표되는 생성형 AI 서비스, 그리고 이름조차 생소한 AI 스타트업과 플랫폼이 줄줄이 광고를 내보냈다. 30초에 수백억 원에 달하는 광고 단가에도 불구하고, 이 무대에 오른 AI 브랜드의 숫자는 전례 없이 많았다.

    "우리는 이제 실험실의 기술이 아니라, 이 무대에 설 자격이 있는 주류다"라는 집단 선언처럼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 광고들 대부분이 더 이상 연산 속도나 정확도, 파라미터 수 같은 기술 스펙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AI 관련 광고라 하면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는지,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는지'를 수치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26년 슈퍼볼에서 AI는 스스로를 전혀 다르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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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슈퍼볼 AI 광고 모음 화면
    [유튜브 캡처]



    어느 광고에서는 AI가 집 안의 가구 배치와 인테리어를 도와주는 파트너로 등장했다.

    사용자가 '이 집을 우리 가족에게 더 잘 맞게 바꾸고 싶다'고 말하면, AI는 그저 가구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방에서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를 먼저 묻는다. 다른 광고에서는 AI가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에게 여러 선택지를 보여주며,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함께 생각해 주는 조언자로 그려졌다. 또 다른 광고에서 AI는 감정이 복잡한 이용자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고, 언어를 정리해 주고, 필요한 때에는 전문가 상담을 연결해 주는 '감정 번역기' 역할을 맡았다.

    이 장면이 말해 주는 것은 분명했다. AI 경쟁의 중심축이 기술 사양에서 신뢰, 태도, 세계관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광고 속 AI는 더 이상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를 자랑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태도로 곁에 있을 것인지', '인간의 삶과 감정에 어떻게 관여할 것인지'를 설명하려 든다.

    이는 광고라는 형식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슈퍼볼 광고는 오랫동안 시대의 욕망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창이었다. 1984년 애플의 매킨토시 광고가 '개인의 해방'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기억되듯, 2026년 슈퍼볼의 AI 광고들은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를 욕망의 대상으로 제시했다. 욕망의 대상이 더 이상 자동차의 출력이나 TV 해상도 같은 물건이 아니라, '나를 이해해 주는 기술, 나를 대신해 결정해 주는 존재, 그리고 그 존재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로 옮겨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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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슈퍼볼 빅테크 기업 광고 모음
    [유튜브 캡처]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광고 제작 과정 자체에도 AI가 깊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몇몇 브랜드는 '이 광고는 전부 AI로 제작했다'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웠다. 로봇 캐릭터가 파티에서 춤추는 영상, 초현실적인 도시 풍경과 변형되는 인물의 얼굴 등 기존에는 수주에 걸친 후반 작업과 막대한 제작비가 필요했던 장면들이 AI 기반 제작 툴로 빠르게 구현됐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역할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2026년 슈퍼볼은 AI와 인간의 역할 분담이 어떻게 재구성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광고의 콘셉트와 메시지, '이 브랜드가 어떤 AI를 지향하는가'라는 서사는 여전히 인간 크리에이터가 만든다.

    반면, 장면의 변주와 시각적 실험, 대본의 다양한 버전을 빠르게 생성해 보는 일에는 AI가 적극 활용됐다. AI는 제작비와 시간을 줄이는 도구이자, 더 많은 시도를 가능하게 해 주는 실험 파트너의 위치에 서 있었다.

    이 모든 흐름을 종합해 보면, 2026년 슈퍼볼은 AI 기술 기업이 '우리는 이제 당신의 일상, 감정, 선택의 파트너'라고 선언하는 자리였다. AI는 더 이상 기계음과 함께 등장하는 신기한 도구가 아니다. 광고 속에서 AI는 가족의 일원처럼 식탁에 앉아 있고, 작업실에서 함께 아이디어를 짜며, 밤늦게 혼자 있는 사람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로 그려졌다.

    그렇기에 '올해 슈퍼볼은 AI 광고가 많았다'는 말만으로는 이 장면을 설명하기 어렵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날은 AI가 대중문화의 중심 무대에서 스스로를 설명하려던 날이었다. 여러 AI 기업은 자기 기술을 자랑하는 대신,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겠다고 약속할 것인가, 어떤 미래를 '정상'이라고 부를 것인가를 제안했다.

    슈퍼볼이라는 무대의 특성상, 그 제안은 곧 '미국과 세계가 앞으로 익숙하게 보게 될 AI의 얼굴'을 미리 보여 주는 일이기도 하다. 광고는 언제나 현실보다 한발 앞선 상상과 욕망을 비춘다.

    2026년 슈퍼볼에서 AI가 보여준 얼굴은, 우리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기술과 함께 사는 일상의 표정'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미리 알려 주는 징후였다.

    이 경계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도 분명해진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이제 충분히 알고 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AI를 우리의 곁에 두고 싶은가, 어떤 태도를 가진 기술을 '정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2026년 슈퍼볼은, 그 질문이 더 이상 개발자와 연구자의 토론 주제가 아니라, 거실 소파에 앉은 시청자의 문제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순간이었다.

    이은준 미디어아티스트·인공지능 영상 전문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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