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매크로 분석 전문기관 씨트리니 리서치(Citrini Research)는 22일(현지시각) 뉴스레터 플랫폼 서브스택을 통해 '2028 글로벌 인텔리전스 크라이시스(The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 보고서를 공개했다. AI 도입이 극도로 성공적일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경제 시나리오를 5000단어 분량으로 담아낸 이 보고서는, 로터스 테크놀로지 매니지먼트 매니징 파트너로 있는 알랍 샤와 씨트리니 리서치 창립자 제임스 판 힐런이 공동 집필했다.
판 힐런이 X(구 트위터)에 보고서 링크를 올리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루 만에 조회수는 1800만 회를 돌파했고, 5400회 이상 공유됐으며 북마크는 1만 2000회에 달했다. 블룸버그 터미널에서도 판 힐런의 프로필이 시간당 최다 조회 2위에 오를 만큼 월가 전문가들의 이목이 한꺼번에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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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회고' 형식으로 그린 2028년의 악몽
보고서는 2028년 6월이라는 가상의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사후분석(postmortem)' 형식으로 쓰였다.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치밀하게 설계된 사고 실험이다.
씨트리니가 묘사한 2028년은 AI 낙관론자들이 그리는 장밋빛 미래와 정반대다. 핵심 주장은 명쾌하다. AI 기술이 더 잘 작동할수록 경제 전체는 오히려 더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2026년 10월, S&P 500 지수는 8000포인트를, 나스닥은 3만 포인트를 각각 돌파하며 AI 주도 생산성 혁명이 정점에 도달한다. 기업들은 AI 활용으로 비용 구조를 극적으로 개선하고 장부상 수익은 급증한다. 국내총생산(GDP) 통계도 역대급 성장세를 기록한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 시기를 '유령 GDP(Ghost GDP)'의 시대로 규정한다. 국가 통계와 기업 재무제표에는 성장이 찍히지만, 그 과실이 실제 소비 경제로는 흘러들어가지 않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AI 인프라를 장악한 극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동안, 일자리를 잃은 화이트칼라 중산층은 지갑을 닫기 시작한다.
제동장치 없는 악순환…'인간 지능 대체 소용돌이'
보고서가 가장 위험한 요소로 꼽는 것은 '인간지능 대체의 나선형(Human Intelligence Displacement Spiral)'이다. AI 성능이 좋아질수록 기업은 사람을 줄이고, 해고된 노동자는 소비를 줄이며, 매출이 쪼그라든 기업은 다시 AI에 더 투자해 추가 감원에 나선다. 보고서는 이 구조를 "자연적인 제동장치가 존재하지 않는 부정적 피드백 루프"라고 표현했다.
씨트리니는 이를 구체적인 사례로 시각화했다. 세일즈포스에서 연봉 18만 달러(약 2억 6000만 원)를 받던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가 세 차례 구조조정을 거쳐 결국 우버 드라이버로 전직하면서 연 소득이 4만 5000달러(약 6600만 원)로 급락하는 이야기다. 보고서는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이 한 사람이 아니다. 이 패턴이 주요 대도시 전역의 수십만 명에게 동시에 적용된다면 경제 시스템은 어떻게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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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업계도 이 악순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나리오는 서비스나우가 2026년 3분기 신규 연간계약금액(ACV) 성장률이 23%에서 14%로 급락하고, 인력의 15%를 해고하는 상황을 설정했다. 대기업 고객이 AI 도입으로 인력을 15% 줄이면 SaaS 라이선스도 기계적으로 15% 해지되는 연쇄 작용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를 "업무 자동화 솔루션을 팔던 회사가 더 강력한 자동화 기술에 의해 역으로 무너지는 아이러니"라고 묘사했다.
금융 시스템으로 번지는 연쇄 균열
충격은 금융시스템으로도 번진다. 미국의 13조 달러(약 1경 8900조 원) 규모 주택담보대출 시장은 화이트칼라 중산층의 안정적 소득을 전제로 설계됐다. 실질 임금이 무너지면 신용점수 780점의 우량 차주조차 상환 능력을 잃을 수 있다고 보고서는 경고한다. 아울러 AI 호황기에 소프트웨어 기업 인수에 집중 투자된 2조 5000억 달러(약 3650조 원) 규모의 사모 신용시장도 2027년부터 첫 연체·부도 사이클에 진입하는 것으로 설정됐다.
이 모든 충격이 누적된 결과, 시나리오 속 2028년 6월 실업률은 10.2%로 치솟고 S&P 500은 2026년 10월 고점 대비 38% 폭락한다.
마이클 버리, 한 문장으로 불안을 키웠다
파장을 키운 것은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의 실제 주인공인 헤지펀드 매니저 마이클 버리였다. 그는 X에 보고서를 공유하며 단 한 문장을 남겼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비관론자라고?"
시장 반응은 바로 나타났다. 보고서에서 위험 기업으로 지목된 종목들이 줄줄이 급락했다. 도어대시와 몽고DB가 각각 7%와 6% 폭락했고, 서비스나우와 세일즈포스는 4% 하락했다. 우버는 3% 밀렸고, 비자와 마스터카드도 각각 2% 이상 내렸다. 소프트웨어 섹터 상장지수펀드(ETF)인 아이세어 확장 기술-소프트웨어 ETF(IGV)는 당일 5% 급락하며 연초 대비 약 30%가 빠졌다. 2022년 11월 챗GPT 출시 이후 쌓아온 상승분을 사실상 전부 반납한 셈이다.
"과도한 우려" vs "지금 당장 논의해야"…전문가 반응 엇갈려
보고서를 둘러싼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AI 스타트업 프롬프트QL의 탄마이 고팔 CEO는 포춘에 "업무의 70%는 실시간으로 변하는 인간적 맥락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실상 자동화가 불가능하다"며 과도한 우려라고 반박했다. 도이체방크 리서치도 AI에게 일자리 변화를 직접 예측하게 한 결과, 2030년까지 920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1억 7000만 개의 새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반면 공동 저자 알랍 샤는 X를 통해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확률이 단 10%에 불과하다 해도, 그 충격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사회 전반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씨트리니 리서치도 금리 인하나 양적완화 같은 전통적 통화 정책은 기술에 의한 구조적 고용 대체 문제의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봤다.
씨트리니 리서치는 보고서 첫머리와 끝에 모두 "이것은 시나리오이지 예측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보고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독자 여러분은 지금 여전히 2026년 2월에 있습니다. S&P 지수는 사상 최고치 근방이고, 부정적 연쇄 작용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준비할 시간이 있습니다."
AI 투자 붐이 증시를 사상 최고치로 밀어 올리는 지금, 이 시나리오가 단순한 사고 실험으로 끝날지 아니면 현실에 대한 조기 경보가 될지는 AI 기술의 확산 속도와 사회·정책적 대응 역량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정재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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