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분·제당 값 잇따라 하락하며 "완제품도 내려라" 요구 확산
전문가 "정부 물가 관리 기조 강해 가격 조정 피하기 힘들 것"
제분·제당 가격 인하 현황 [그래픽=아주경제 미술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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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분·제당 업체들이 밀가루와 설탕 가격을 잇따라 내리면서 가공식품 가격도 조정돼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그간 원재료 인상을 근거로 제품 가격을 올려온 만큼 하락 국면에서는 소비자 가격도 함께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식품업계는 가격 정책이 일부 원재료 가격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제재 이후 제분·제당업체들이 기업 간 거래(B2B)와 소비자용(B2C) 제품 가격을 최대 5~6% 인하 방침을 밝히자 그 여파가 라면·과자·제빵 등 가공식품 업체로 번지는 분위기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밀가루, 설탕 등 주요 원재료 가격 인상을 이유로 라면·과자·제빵 등 가공식품 가격을 올린 업체들은 이제 제조원가가 낮아진 만큼 자발적인 가격 조정에 나서야 한다”며 “단순히 원재료 가격 인하에 그치지 않고, 이를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최종 소비자 가격을 낮추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원재료 인하 효과가 최종 판매가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요구다.
하지만 가공식품 업계는 즉각적인 가격 인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한다. 익명을 요구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설탕 외에도 알루미늄 캔 등 다른 원부자재 가격이 올랐고, 인건비·물류비·공공요금 부담도 이어지고 있다”며 “일부 원재료 가격이 내렸다고 해서 바로 판매가격을 조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원재료 값이 올랐을 때도 제품 가격에 즉각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며 “여러 비용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성급한 인하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실제 원가 구조를 따져보면 가격 인하 여력이 크지 않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빵 제품의 경우 밀가루가 차지하는 비중은 5~10%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5000원짜리 제품을 기준으로 하면 밀가루 가격 인하에 따른 원가 절감 효과는 몇십원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설탕 역시 전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한 관계자는 “밀가루 인하 폭을 단순 적용해 소비자가를 곧바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은 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설탕, 밀가루 판매대 모습.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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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구조도 변수로 꼽힌다. 밀가루와 설탕은 통상 분기 단위, 길게는 연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진다. 최근 발표된 인하분이 즉각 원가에 반영되기 어려운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다음 분기 수급 계약 시점에야 반영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며 “이번 인하가 일시적인 조정인지, 추세적 하락의 시작인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내수 침체에 따른 수익성 둔화 역시 업체로서는 부담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CJ제일제당의 영업이익은 1조2336억원으로 전년 대비 20.57% 감소했다. 롯데웰푸드는 1095억원으로 30.29% 줄었고, 오뚜기는 1773억원으로 20.16% 감소했다. 하이트진로의 영업이익도 1721억원으로 17.33% 줄어드는 등 주요 식품기업들의 실적이 일제히 뒷걸음질쳤다. 해외 사업이 선전한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내수 중심 업체들은 원가 부담과 소비 위축이 겹치며 체력이 약해진 상황이다. 실적 악화가 이어지면서 가격 인하 여력도 사라졌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제분·제당 인하가 선행된 만큼 가공식품 제조사 역시 가격 조정 요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밸류체인 윗단에서 시작된 인하 흐름은 시차를 두고 완제품 가격으로 전이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공정위가 실태 점검 등 모든 카드를 동원해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한다면 기업들이 가격 인하 요구를 끝까지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격 조정 여부는 업계의 판단과 의지에 달려 있다”면서도 “정부가 물가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전방위적 압박이 가공식품 업계의 실질적인 가격 인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아주경제=김현아 기자 haha@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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