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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5 (수)

    [여명] AI 버블이 대한민국에 주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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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일범 경제부장

    ‘반도체 끝물’ 걱정보단 호황 기회 살려

    배터리 등 육성 수출품목 편중 개선

    팹 지방이전 기업에 인센티브도 제공

    민관 원팀으로 버블 활용법 고민해야

    서울경제


    요즘 경제 부처 관료들을 만나면 꼭 테이블 위에 오르는 화제가 있다. 바로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언제쯤 꺾일 것으로 보느냐”이다. 불과 2~3년 전 ‘삼성 걱정’이 국민 스포츠와 같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당시 외계어처럼 느껴졌던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이제 그 이름을 딴 과자가 편의점에 나올 정도로 일반명사화됐다.

    그동안 반도체 업황은 경기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게 상식처럼 여겨졌다. 삼성이 만들든 마이크론이 만들든 규격이 같으면 제품의 질에는 차이가 없는 반도체의 특성 때문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공장 수율이 기업의 영업이익률을 결정했다. 반도체를 상품(commodity)의 일종으로 봤던 이유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면서 게임의 법칙이 달라졌다. AI 칩을 얼마나 많이 확보해 얼마나 강력한 연산·추론 능력을 확보하느냐가 한 기업의 생사를 가를 기준점이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기업들이 구글·메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소위 빅테크들이다. 이들이 연간 수백조 원씩 쏟아부어 설비 증설에 나서면서 반도체가 귀한 몸이 됐고 이 과정에서 메모리 병목현상이 나타나 지금의 반도체 메가 사이클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현상을 비이성적 광기로 보는 AI 버블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①천하의 빅테크들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자본지출 규모가 너무나 늘어나고 있다. ②지출 규모에 비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너무나 초라하다. ③AI의 생산성 개선 효과는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반면 반대 측 주장은 이렇다. ①수익을 단 한 푼도 내지 못했던 기업들이 질주하던 닷컴 버블 때와는 다르다. 당시 몰락한 기업들의 주가수익비율(PER)과 엔비디아나 구글의 PER을 비교해 보라. ②다소 지연현상이 나타날지는 모르나 AI는 전력망이나 인터넷과 같은 인프라가 될 것이다. ③이미 기업들이 투자한 비용이 너무나 커서 이제는 누구도 멈출 수 없다(Too Big to Stop).

    워낙 롤러코스터처럼 변동성이 커진 세상이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향후 1~2년 동안은 AI 긍정론 측의 주장이 더 강한 추동력을 갖고 전 세계 경제를 끌고 나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연간 200조 원, SK하이닉스가 연 1000억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우리의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반도체 사이클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를 따질 일이 아니라 이 벼락 같은 축복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제대로 고민해야 할 때다.

    먼저 반도체 외발 성장 구조를 벗어날 수 있는 과감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 7097억 달러 중 반도체 수출은 1734억 달러로 그 비중이 24.4%에 달했다. 올해 2월 1~20일 누적치 기준으로는 그 비중이 35%에 이른다. 반도체가 기침을 하면 국가 경제는 몸살에 걸릴 판이다. 삼성과 SK가 수백조 원씩 벌어들이는 향후 1~2년 내에 배터리나 태양광과 같은 한계 산업에 대한 강력한 육성 대책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이 산업들은 이대로 내버려두면 모두 중국에 잡아먹히는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기업들의 발상도 원점에서 바꿔볼 필요가 있다. 가령 삼성 용인 반도체 산단의 경우 2040년 이후 생산 물량을 위한 팹은 지방으로 돌려 새롭게 짓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봐야 한다. 그것이 섬나라 신세인 대한민국의 에너지와 지방소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물론 이런 지방 이전이 ‘손목 비틀기’ 식 강압적 압박이 돼서는 곤란하다. 경제 주체를 움직이는 것은 벌칙이 아니라 인센티브이다. 가령 정부가 통합특별시에 주기로 약속한 20조 원을 전액 투자기업에만 지급하기로 특약을 걸면 어떨까. 제아무리 삼성이라도 20조 원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우리 경제가 이참에 민관 원팀을 만들어 버블 활용법을 제대로 만들어봤으면 한다.

    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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