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문화체험관서 시연·시식회
선재스님이 26일 서울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서 사찰음식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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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인거지. 너무 맛있었어요. 보통 사람이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단호하고 냉정하게 참가자들의 요리를 평가했던 안성재 셰프가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에서 이런 감탄을 쏟아냈던 음식이 있다. 선재 스님이 내놓았던 잣국수였다. 시중에서 사 먹을 수 없는, 속세를 떠나 구도의 길을 가는 수행자의 삶이 녹아 있는 이 잣국수에 수많은 시청자들의 관심과 호기심이 쏟아졌다. 이렇다할 조미료 없이 잣 본연의 맛을 살려 만든 잣국수.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선재 스님이 26일 서울 안국동 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서 20여명의 취재진을 대상으로 잣국수 시연 및 시식회를 가졌다. 말로만 듣던, 상상만 해보던 그 맛을 드디어 볼 기회라는 기대감에 체험관 내부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조리대 위에는 신선하고 고소한 향을 풍기는 잣, 국수를 뽑을 밀가루 반죽, 옹심이를 빚을 찹쌀가루와 전분, 고명으로 얹을 오이와 참외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밀가루 반죽은 연한 초록빛이다. 호박과 시금치를 데쳐서 갈아낸 즙으로 반죽했기 때문이다.
“잣과 밀가루는 많이 먹으면 소화가 안돼요. 이를 보완해 주는 게 호박입니다. 후루룩 마시듯 급하게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옹심이를 만들어 넣을 거예요. 잣국물을 최대한 잘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을 수 있도록 돕는 셈이지요.”
음식은 자연의 맛, 제철의 맛을 최대한 살리되 먹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약이 되어야 한다는 스님의 지론이 국수 한 그릇에도 꼭꼭 들어찬 셈이다. 물 대신 강판에 갈아 즙을 짜낸 오이를 넣고 빚은 옹심이는 민트 빛깔의 구슬처럼 먹음직스러웠다. 고명으로 올릴 참외는 껍질째 채를 썰어 소금에 절였더니 멜론보다 훨씬 진하고 화려한 향을 풍긴다. 굳이 소금에 절인 이유는 계절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방송 촬영 당시에는 여름이라 오이와 참외를 그대로 사용했지만 현재는 계절과 좀 맞지 않아 소금에 살짝 절이는 과정을 더 거쳤다.
선재스님이 만든 잣국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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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핵심인 잣국물. 사실 특별할 건 없다. 전체 분량의 4분의 3 정도를 마른 프라이팬에 넣어 노릇하게 볶는다. 여기에 볶지 않고 남긴 잣을 섞어 으깬 뒤 물과 함께 믹서에 넣고 재빨리 갈아내는 것이 전부다. 스님은 “잣을 볶으면 고소한 맛이 극대화되지만 신선하고 상큼한 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일정 분량은 볶지 않는 것이 향을 살리는데 좋다”고 설명했다.
뽀얀 잣국물에 잠긴 면, 오이와 참외 고명 옆에 앙증맞게 자리잡은 옹심이 위로 검은 깨가 솔솔 뿌려진 선재 스님표 잣국수. 먼저 대접을 들고 잣국물을 머금었다. 묵직한 질감의 잣국물이 입안에 퍼지면서 은은한 고소함이 감돈다. 부드러운 첫맛은 강한 뒷심을 발휘하며 오감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진하고 걸쭉한데도 텁텁함 없이 상큼한 풍미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옹심이에 섞어 넣은 오이의 질감 역시 씹는 재미를 더하며 재기 넘치는 감초 역할을 해냈다. 중후한 잣국물 때문에 느껴지는 포만감 위로 ‘삿된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시중에서 파는 가평 잣 500g이 8만원 정도 되고, 여기에 각종 재료와 인건비를 더하면 이 잣국수 한 그릇은 족히 10만원은 넘게 받아야…’
복잡한 머릿속은 이내 스님의 죽비같은 가르침에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요리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누가 이 음식을 드시는지 생각하는 겁니다. 모든 음식은 약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런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생명과 소통하는 것이 기본이고 원칙이지요. 제철 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 것을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도 그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긴 겨울을 지나 봄을 향해 달려가는 요즘이라면 어떤 음식을 통해 자연, 우주와 호흡할 수 있을까. 스님이 내놓은 답은 머위와 쑥이다.
“혹독한 시간을 이겨낸 땅에서 자란 머위와 쑥은 겨울동안 우리 몸에 쌓인 독을 빼줍니다. 머위는 나물, 쌈, 볶음 등 뭐든 만들 수 있고 쑥은 떡으로 만들면 더없이 좋지요. 봄에 쑥과 머위를 3번 이상 해주지 않는 상좌(제자)는 내쫓아도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잣국수를 만들고 있는 선재스님.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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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 선임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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