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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7 (화)

    [지금, 여기]치료도 되고, 사고도 되는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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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사선 조사는 표준 암 치료법 중 하나다. 내 경우에도 그랬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 며칠간 전신방사선 조사를 받았다. 오전과 오후 각각 20분, 움직이지 않도록 몸을 벨트로 동여맨 채였다. 새소년의 ‘파도’가 크게 흘러나왔다. 노랫말에 따라 어깨가 들썩이려 했다. 미동 없이 가만히 있기 위해 꽤나 애를 써야 했다.

    통상 조혈모세포 이식 전 처치 목적으로 조사되는 방사선량은 총 8~12Gy(그레이). 한 번에 피폭된다면 치명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이 방사선은 나를 살리기 위해 계산되고 통제된 위험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불가피하게 선택하게 된 것과 불가피하게 잃을 것을 신뢰했다. 칙칙하게 어두워진 몸과 뻑뻑한 눈, 대책 없는 피로와 구역감은 적어도 이 병원과 내 몸 안에서 관리되고 사라질 것이었다.

    1958년 미국 로스앨러모스의 핵 연구시설에서 화학 작업자 세실 켈리가 겪은 사고는 대표적인 임계사고로 기록된다. 플루토늄 용액이 담긴 혼합 탱크를 가동하기 시작하자, 핵분열이 일어나며 강한 중성자와 감마선이 방출됐다. 이때 세실 켈리가 받은 전신 피폭량의 추정치는 30~40Gy. 치료 목적으로 여러 차례 나누어 쓰인 선량의 몇배에 달하는 양이 불과 몇초 사이에 전달됐다. 방사능에 노출된 몸에서 혈구가 빠르게 무너졌다. 세실 켈리는 사고 35시간 후에 사망한다.

    나는 치료를 받았고, 세실 켈리는 사고를 당했다. 치료에 쓴 방사선은 ‘건강에 좋은 성분의’ 방사선이고, 임계사고로 방출된 방사선은 나쁜 방사선이었던 게 아니다. 똑같이 나쁘고 위험하다. 나는 그 위험을 특수한 목적에 따라 통제된 상황에서 사용했다. 그리고 그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 사람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기계는 오작동할 수 있으며 마른하늘에도 날벼락은 떨어진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공개한 지난해 방사선 피폭 사건은 2건. 비록 기준치 이하라고는 하지만, 사고는 의도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았기에 사고다. 누가,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누가 결정했는지, 그래서 누가 위험을 떠안았는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11일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지 15년째 되는 날이었다. 공공의 기억은 끈질기다. 핵오염수 최초 방류 당시 내 어머니와 지인들은 암 경험자인 내가 걱정되어 묵은 소금을 찾아다녔다. 기준치, 안전성, 그것을 뒷받침하는 숱한 정보들은 어쩌면 무의미하다. 속수무책은 감각이고, 감각은 지식으로 설득하지 못한다. 불안한 이유는 무지해서가 아니라 정보의 생산부터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전한 식재료를 찾으려 전전긍긍하는 건, 이 문제에 대해 시민들에게 주어진 권리가 상품을 선택할 소비자 권리뿐이라서다.

    15년 전 녹아내린 핵연료가 기약 없이 남아 있다. 아직 피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주민이 약 2만6000명을 헤아린다. 방사능 물질이 남은 숲에 버섯이 자랐고, 버섯을 먹으며 멧돼지가 자랐다. 이들은 후쿠시마에서 가장 높은 농도로 방사성 물질이 축적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감당하기를 회피한 위험은, 그것에 기여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그것의 의미를 알지도 못하는 존재에게 이동했다.

    나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선택했다. 세실 켈리는 몰랐다. 후쿠시마의 주민들은 알았지만 결정할 수 없었다. 멧돼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치료와 사고를 가른 것은 위험의 종류가 아니라 상황의 배치다. 나는 의료진에 의해 몸을 측정받았고, 부작용이 적힌 종이를 간호사와 함께 읽으며 설명을 들었다. 벨트로 몸을 동여맸고, 노래를 들으며 생존의 기회를 얻어갔다.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 운이기도 했지만 앎과 선택의 힘이기도 했다. 그건 모두에게 주어져야 했던 최소한의 것들이었다.

    경향신문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저자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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