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 배경을 ‘국가이익’ 차원에서 솔직하게 설명했다. 우선 비핵화 프레임의 원천 차단이다. 북한의 목표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전략적 지위 공고화, 위협 감소에 방점을 둔 북·미 핵군비통제, 그리고 이를 통한 대외관계의 근본적 개선이다.
‘북한 비핵화’를 기축으로 한 한국의 대북·대미 정책은 북한 국가이익과 대척점에 있다. 김 위원장은 보고에서 한국을 “조선반도 비핵화의 간판 밑에 우리의 무장해제를 획책하는 위해로운 존재”로 규정했다. 한국 개입을 철저히 차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둘째, 남·북·미 3자 구도의 해체다. 북한은 한국을 북·미 대화의 ‘훼방꾼’으로 규정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북 강압론, 남북·북미 선순환론, ‘페이스메이커’론 모두 본질은 동일한 궤적 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비핵화 프레임 안에서 미국을 부추겨 북한 변화를 압박해왔다는 인식이다. 한·미 관료들이 북한에 대한 체질적 혐오를 공유하고 있다고도 본다. 한국의 개입 명분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셋째, 핵억제력 행사의 윤리적·전술적 장애물 제거다. 기존 통일전선이나 ‘우리민족끼리’ 논리는 같은 민족에게 핵을 겨누는 상황에서 모순을 발생시킨다. 남북을 ‘적대국’으로 재정의함으로써 대남 전술핵 사용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핵무기 사용의 가시성을 높여 억제력을 극대화하려는 선택이다. 김 위원장이 이번 당대회에서 “억제력의 선제공격 사명을 포함하여 적대국에 해당되는 모든 물리력 사용은 이론기술적으로 완전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밝힌 부분은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넷째, 체제 경쟁과 흡수통일 공포로부터의 해방이다. 민족과 통일 논리가 있는 한 통일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체제 비교와 경쟁의 스트레스, 흡수통일과 정보 유입을 통한 체제 균열의 공포는 상존한다. 두 국가론은 한국의 대화·협력 공세를 원천 봉쇄하고 북한 주민들을 단일국가 논리 안에 묶어두려는 통치 기획일 수 있다.
이런 북한의 행보는 ‘북한식 종전선언’의 성격을 띤다. 현재의 정전협정 체제는 국가 간 조약이 아닌 전쟁 참여자들의 군사적 합의 성격을 갖는다. 영토의 확정이나 주권의 상호 승인은 포함돼 있지 않다. ‘정치적 해결’을 미래로 미룬 임시 체제다. 이미 70% 이상 사문화된 상태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와 국경 획정은 더 이상 통일을 매개로 한 전쟁이나 정치적 통합 논의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전쟁 상태에 대한 포기 선언에 가깝다.
‘적대’라는 표현은 서로 섞이지 말자는 단념을 종용하는 방어적 수사로 보인다. 관여하지 않을 테니 주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상호 불가침의 선언일 수 있다.
‘평화적 공존’과 상충돼 보이지만, 소모적인 대결을 피하고 정전협정의 모호성(특수관계)을 제거하고, 국경선에 기반한 ‘단절된 안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실용적 공존의 지향점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전략도 ‘비핵화·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단선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한반도를 둘러싼 핵질서와 기술 층위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확장된 전략적 안정성’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글로벌·지역·전구가 교차하는 ‘전략적 스케일’을 인식하고 이 사이의 긴장과 조정을 전략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핵억제와 재래식 전력은 물론 사이버·우주·정보·경제·공급망에 이르는 층위들 간의 교차 안정성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셋째, 전략적 내러티브의 재정립이다. ‘우리는 어떤 질서를 안정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비핵국가임에도 미·중·러·북의 핵전략 스케일 한가운데 위치하며 지정학적·경제적 연결 구조의 중심에 놓여 있다. 따라서 억제 강화가 오히려 선제타격 유인을 높이는 ‘안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위기·군비경쟁·연결·공존 구조라는 네 가지 지표를 중심으로 한국형 전략적 안정성을 정밀하게 평가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 핵심은 ‘위협 감소’와 ‘상호 안정’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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