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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8 (토)

    스타 셰프의 파인 다이닝 한식과 엄마 밥상의 공통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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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주말]

    [정덕현의 컬처톡톡]

    세계적 주목받는 K푸드

    이젠 ‘한식 본질’ 고민해야

    도대체 뭘 넣길래 이런 맛이 나지? 명절에 고향집 식탁에서는 늘 이런 말이 나온다. 대단한 반찬들은 아니다. 김치에 나물 반찬, 연근조림, 구운 김, 멸치볶음 같은 것들이 갓 지은 따뜻한 밥과 함께 올라온다. 그런데 하나하나 맛이 남다르다. 김치는 톡 쏘고, 나물들은 저마다 향이 살아있다. 달큼한 연근과 고소하고 짭짤한 김, 감칠맛 나는 멸치볶음…. 반찬만 있어도 밥 두 공기가 뚝딱이다. 갈비에 생선회 같은 요리들이 아니어도 더할 나위 없는 엄마의 밥상. 도대체 그 비밀은 뭘까.

    명절 연휴에 방영된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그 비밀을 들여다보게 해줬다. SBS ‘더 코리안 셰프’와 KBS ‘철학자의 요리’가 그 작품들이다. ‘더 코리안 셰프’는 한식 파인 다이닝의 최전선에 서 있는 6명의 오너 셰프들을 통해, 그 우아함과 화려함의 이면에 존재하는 치열한 사투를 담았다. 반면 ‘철학자의 요리’는 백양사 천진암에서 요리하며 수행하는 정관스님의 요리 철학을 사계를 배경으로 풀어냈다. 뉴욕 한복판과 백양사 천진암. 도시와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그 거리만큼 결이 다른 작품들이지만, 이 다큐멘터리들의 지향점은 놀랍게도 하나로 귀결된다. 그건 바로 ‘음식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조선일보

    '더 코리안 셰프'에 출연한 강민구 셰프.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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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유일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뉴욕에서 한식 파인 다이닝으로 2025년 북미 최고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아토믹스’의 박정현·박정은 셰프, 뉴욕 진출 1년 2개월 만에 미쉐린 2스타를 또 차지한 ‘주옥’의 신창호 셰프…. 화려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더 코리안 셰프’가 조명한 파인 다이닝 셰프들은 치열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들은 레스토랑의 목표일 수도 있는 상업적 성공마저 과감히 버리고 맨땅에서 다시 시작하는 도전도 피하지 않았다. 거기엔 자신의 삶이 온전히 담긴 요리를 세상과 나누고 싶다는 꿈과 진심이 담겨 있었다.

    뉴욕 같은 미식의 도시에서는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지만 사실 한국인들에게 한식 파인 다이닝은 여전히 낯설다. ‘흑백요리사2’에서 ‘요리괴물’ 이하성 셰프가 어릴 적 아버지와 목욕탕을 간 날 늘 먹었다던 순댓국을 재해석한 요리처럼, 한식 파인 다이닝은 우리가 보던 한식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본질은 한식이지만 겉보기에는 서양인들에게도 익숙한 파인 다이닝의 형태를 띠고 있다. 장모님이 보내준 들기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 고소함을 파인 다이닝으로 재해석한 신창호 셰프의 메뉴 ‘들기름’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랍스터 같은 서양인들에게 익숙한 식재료에 한국의 된장·고추장을 베이스로 하는 소스를 더해 한식의 본질을 재현해낸다. 작품이라 해도 될 법한 접시를 화폭 삼는 요리들. 하지만 뉴요커들이 빠져든 건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맛만이 아니다. 만든 이와 먹는 이 사이를 연결하는 요리에 담긴 마음이 또 하나의 맛이다.

    조선일보

    '철학자의 요리'에 출연한 정관스님./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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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철학자의 요리’의 주인공 정관스님에게 요리는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의 과정이다. 스님의 음식 철학은 사찰음식의 근간인 ‘덜어냄’의 미학에 있다. 스님의 요리는 자연을 벗 삼고 그래서 제철에 나는 식재료는 ‘시절 인연’이 된다. 한겨울 눈발을 헤치고 마을에서 가져온 꽁꽁 언 배추도, 봄가을에 갈무리해 뒀던 말린 냉이며 시래기 같은 나물들도 스님에게는 소중한 인연이다. 그 인연에 오랜 시간을 기다려 자연이 만들어낸 장을 더하고, 먹는 이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요리를 한다. 김장철이면 해외에서도 절을 찾은 이들이 다 함께 김장을 담그고 나누는데, 그들 중에는 미쉐린 3스타 셰프 에릭 리퍼트나 강민구 같은 세계적인 요리사들도 있다. 요리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의 정점을 찍은 이들이 왜 이 작은 암자의 스님을 찾아온 걸까.

    “한국 음식의 기본부터 제철 재료를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음식 안에 담아내야 하는지, 그리고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재료를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 강민구 셰프는 스님을 통해 그 어떤 레스토랑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가 만든 ‘표고버섯 배추선’은 얇게 썰어 겹겹이 쌓은 배추 위에 역시 얇게 저민 표고버섯을 얹고 소스를 뿌린 요리로 정관스님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열일곱의 나이에 출가한 스님을 데리러 온 아버지가 고기도 없고 생선도 없는 데서 어떻게 살겠느냐며 집에 가자고 했을 때, 스님은 표고버섯을 간장에 졸인 요리로 서로의 감정을 풀어냈다고 했다. 음식은 그렇게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었다. 마음을 나누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음식을 먹고는 스님에게 삼배를 하고 집으로 간 후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함께한 그 음식이 스님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K푸드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신드롬으로 미국에 때아닌 김밥 열풍이 불면서 챌린지까지 생길 정도였고, 뉴욕에서는 한식 파인 다이닝에 투자하고 싶어 하는 요식업계 외국인 투자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같은 매체들이 한식과 정관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대서특필하는 일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호들갑과 으쓱함보다 이제 중요한 건 ‘한식의 본질’ 나아가 ‘음식의 본질’을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 아닐까. 겉만 화려한 허상보다는 그 진심을 나눌 수 있는 본질이 답이라고 이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말하고 있다. 이제 알겠다. 명절 때면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엄마들이 해주시는 소박한 된장찌개 하나, 김치 한 조각이 왜 그리 맛있는지를. 비밀은 본질에 있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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