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이영완의 딥 사이언스]
54년 만의 유인 달 탐사
달에 남겨진 인류 흔적들
1969년 7월 20일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동료인 버즈 올드린을 찍은 사진. 올드린의 헬멧 창에 암스트롱과 달 착륙선 이글호가 보인다. /NAS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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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거든 데려다가 작은 별들로 조각내어 주소서. 그러면 하늘의 얼굴을 너무나 아름답게 만들어 온 세상이 밤을 사랑하게 될지니, 번쩍거리는 태양을 숭배하지 않을 겁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3막 2장에서 줄리엣은 비밀 결혼식을 올린 날 어서 밤이 와서 로미오와 다시 만나기를 기다리며 이렇게 독백했다.
줄리엣의 노래는 달까지 갔다. 미국의 달 탐사선 루나 프로스펙터는 19개월 임무를 마치고 1999년 7월 31일 달의 남극 근처에 충돌했다. 그 안에 미국의 지질학자인 유진 슈메이커(1928~1997)의 유해가 담긴 캡슐이 있었다. 줄리엣의 독백이 바로 그 캡슐에 새겨졌다.
슈메이커는 지구의 운석 충돌구 연구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아내 캐롤린, 캐나다의 아마추어 천문학자인 데이비드 레비와 함께 슈메이커-레비 9 혜성도 발견했다. 그는 1960년대 미국의 유인(有人) 달 탐사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병이 생겨 도중에 우주비행사 후보에서 탈락했다. 달에 가는 첫 지질학자란 꿈을 죽어서 이룬 셈이다.
달 탐사 중 사망한 미국과 소련의 우주비행사 14명의 이름을 새긴 명판과 벨기에 작가 폴 반 호이돈크가 만든 알루미늄 조각상 ‘추락한 우주비행사’. /NAS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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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남긴 200t의 유물
슈메이커의 후예들이 달에서 줄리엣의 노래 구절을 직접 볼 날이 다가오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올해 우주비행사 4명을 달로 보내는 아르테미스 2호 임무를 진행한다. 10일간 진행될 이 비행은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54년 만에 이뤄지는 첫 유인 달 탐사 임무다. 아르테미스 2호는 지난 2월 발사될 예정이었지만 발사체 문제로 차일피일 연기됐다. 이르면 4월에 다시 도전한다.
앞서 2022년 아르테미스 1호 임무는 마네킹을 태운 오리온 우주선이 달 궤도를 도는 무인(無人) 시험 비행으로 진행됐다. 아르테미스 2호 우주비행사들은 달 궤도를 돌고 오고, 2028년 아르테미스 3호의 우주비행사 2명은 달 남극에 직접 착륙할 예정이다.
인류가 남긴 ‘달 쓰레기’는 이제 역사적 유물이 됐다. 달은 바람도, 비도, 침식 작용을 일으키는 대기층도 없어 일종의 타임캡슐이 된다. 모든 물체가 남겨진 순간 그대로 보존된다. 금속제 장비는 물론, 우주선 무게를 줄이기 위해 두고 온 우주비행사들의 배설물 봉지와 구토 흔적까지 그대로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72년 4월 20일 달에 착륙한 아폴로 16호의 우주비행사 찰스 듀크가 달 표면에 남긴 가족 사진. /NAS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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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기린 명단과 조각상
우주비행사들은 쓰레기만 남긴 게 아니다. 일부러 달에 가져간 기념품도 있다. 1972년 4월 20일 달에 착륙한 아폴로 16호 우주비행사 찰스 듀크는 달 표면에 가족사진을 남겼다. 듀크는 당시 36세로 달 표면을 걸은 최연소자 기록을 세웠다. 사진은 그대로이겠지만 태양에서 날아온 방사선 탓에 색은 하얗게 바랬을 것으로 보인다.
1971년 달에 간 아폴로 15호 우주비행사들은 미국은 물론 소련까지 달 탐사 프로그램에서 숨진 우주비행사 14명의 명단을 달에 남겼다.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우주로 나간 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도 그 명단에 들어갔다. 그는 1968년 비행 훈련 중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희생자 명단 앞에는 벨기에 작가 폴 반 호이돈크가 알루미늄으로 만든 8.5㎝ 크기의 우주비행사 조각상도 놓였다.
슈메이커보다 앞서 달에서 다시 주목받은 과학자도 있다. 바로 이탈리아의 과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1971년 달에 네 번째로 내린 아폴로 15호 우주비행사들은 전 세계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1.32㎏짜리 망치와 30g짜리 매의 깃털을 달 표면 위 1.6m 높이에서 동시에 떨어뜨렸다.
16세기 갈릴레이는 진공에서는 질량에 상관없이 모든 물체가 동일한 속도로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망치와 깃털은 동시에 달 표면에 닿았다. 갈릴레이는 당시 피사의 사탑에서 이 실험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머리로만 한 사고 실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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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아폴로 11호의 버즈 올드린이 달 표면에 실험 장치를 설치하는 모습. 붉은 점선 안이 레이저 반사 거울 장치다(우측 아래가 확대한 사진). 지금도 지구에서 온 레이저 빛을 반사해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 단위 정확도로 알려주고 있다. 아래 사진은 미국 뉴멕시코주 아파치 포인트 천문대의 지름 3.5m 망원경에서 달에 남은 반사경으로 레이저를 쏘는 모습. /NASA·미 아파치 포인트 천문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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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작동하는 과학 장치
달에 남긴 물체 중에는 지금도 지구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있다.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남긴 발자국에서 수백m 떨어져 있는 거울 상자다. 옷 가방 크기의 이 장치엔 거울 100개가 촘촘히 박혀 있다. 미국 뉴멕시코의 아파치 관측소에서는 맑은 날 밤마다 달의 거울 상자에 레이저를 쏜다. 이 빛은 달의 거울에서 반사돼 지구로 온다.
거울 상자는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알려준다. 빛의 속도는 알고 있으니, 지구와 달을 왕복한 시간만 알면 약 38만5000㎞ 떨어진 지구와 달의 거리를 ㎜ 단위까지 알아낼 수 있다. 과학자들은 거울 상자를 통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했고, 달 내부에 액체 핵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현재 달에는 거울 상자가 5개 작동하고 있다. 3개는 미국, 2개는 소련이 보냈다. 그중 하나는 1970년 달에 간 소련의 달 탐사차 루노호트 1호에 있다. 40년 동안 행방불명 상태였던 루노호트 1호는 2010년 미국 과학자들이 나사의 달 정찰 궤도선(LRO)의 고해상도 카메라로 찾아냈다.
영국과 일본 과학자들은 LRO가 달 표면을 찍은 사진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루나 9호를 찾았다. 이어 지난달 러시아의 과학 저술가인 비탈리 예고로프도 루나 9호의 착륙지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AI 대신 인간의 끈기로 거둔 성과였다. 그는 루나 9호가 지구로 전송한 달 표면 사진 4장과 나사의 LRO가 만든 입체 달 표면 지형도를 일일이 대조했다. 사진을 보고 사진 촬영 위치를 찾아낸 것이다.
지구 최강의 동물로 불리는 물곰이 이끼를 붙잡고 있다. 물곰은 우주방사선도 견딘다. 유럽우주국(ESA)은 2007년 무인 우주선에 물곰을 실어 우주로 발사했다. 12일후 지구로 귀환한 물곰들에게 수분을 제공하자 일부가 살아났다. /Eye of Scie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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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곰, 달에서 살아 있을 수도
옛날 사람들은 달 표면의 무늬를 보고 방아를 찧는 토끼라고 생각했다. 중국이 달에 보낸 이동형 탐사 로봇의 이름이 위투(玉兎·옥토끼)인 것도 여기서 유래했다. 달에는 토끼 대신 다른 동물이 있다.
이스라엘의 무인 탐사선 베레시트는 2019년 4월 11일 달 착륙을 시도하다가 추락했는데 그 안에 ‘지구 최강의 동물’로 불리는 물곰 수천 마리가 실린 캡슐이 있었다. 물곰은 절지동물의 이웃으로 몸길이가 1.5㎜를 넘지 않는다. 다리 8개로 움직이며 이끼에서 플랑크톤을 잡아먹고 산다. 물속을 헤엄치는 곰처럼 생겼다고 이런 이름이 생겼다.
탐사선이 파괴됐지만 물곰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물곰은 30년 넘게 물과 먹이 없이도 살 수 있다. 섭씨 영하 273도의 극저온이나 물이 끓고도 남을 151도 고열에도 끄떡없다. 대부분 동물은 10~20Gy(그레이) 정도의 방사선량에 목숨을 잃는데, 물곰은 무려 5700그레이를 견딘다.
실제로 물곰은 우주에서도 살아남았다. 유럽우주국(ESA)은 2007년 무인 우주선에 물곰을 실어 우주로 발사했다. 12일 후 지구로 귀환한 물곰들에게 수분을 제공하자 일부가 살아났다고 한다. 진공 상태의 우주 공간에서 치명적 방사선에 견딘 생명체는 물곰 이전에 이끼와 박테리아밖에 없었다.
달에 지구 생물을 마음대로 보내도 될까. 나사는 화성 탐사선을 보낼 때 지구 생명체가 외계 생태계를 오염시킬 가능성에 대비해 우주선을 철저히 소독한다. 하지만 달은 예외다. 이미 생명체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아폴로 우주인들이 장내 세균이 있는 배설물을 봉지 96개에 담아 달에 두고 온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달 남극에 있는 얼음에 지구 생명체의 기원이 된 유기물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게다가 반세기 만에 재개된 달 탐사는 일회성 달 착륙이 아니라 장기 거주할 유인 기지도 추진하고 있다. 화성 식민지를 주장하던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 대표도 달 탐사를 1순위로 수정했다. 이제 달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려도 되는 황무지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지구에서 했던 실수를 달에서 반복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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